홍콩과 일본 그리고 뉴욕에서

운이 좋아 증권시장에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 애널리스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른 남짓할 때 한국을 떠나 홍콩으로, 일본으로, 다시 홍콩, 그리고 이곳 뉴욕으로 쉼없이 흘러 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의 잠깐의 컨설팅 경력을 빼고는 평생 한 가지 직업밖에 없었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나에게 애널리스트란 일은 '관찰자' 내지는 '구경꾼'처럼 세상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마음껏 생각하며, 맞든 안 맞든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기에 참 좋은 직업이었다.

 

근사한 글로벌 회사의 이름을 단 투자자로서 환영받았고, 여기저기 열리는 여러 문을 통해 감사하게도 많은 것을 보았고, 들었으며, 행복했다.

 

애널리스트를 시작하면서 여자이고 초짜인 내가 처음 받은 섹터가 인터넷 버블이 막 생기기 시작한, 그 당시엔 별로 인기가 없었던 소매와 식음료.

 

한국에 있을 때는 농심∙롯데제과∙하이트 맥주∙동양제과∙신세계∙풀무원∙39쇼핑 같은 회사들과 수도 없이 만나고 시간을 보내며 리포트를 쓰고 또 썼다. 그동안 여기 나열한 회사 몇몇은 이름이 바뀌었고 자발적 상장폐지도 했다. 또 다른 몇몇은 합병과 분할을 겪었고, 해외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 회사들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지금의 그들을 생각하면 참 감격스럽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나도 자랐다.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살면서 새로운 언어도 배워야했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회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보는 내 눈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좁아졌다, 흐려졌다, 밝아졌다를 거듭하며 살고있다.

 

무엇보다 멋진 그동안의 하이라이트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이 더해지면서 세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또 달라져감을 느낀다.

치열한 음식 준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난 방학 때 아침마다 KBS·MBC 양사가 방영하는 '오늘의 요리'를 꼭 챙겨보고 매일매일 직접 만들어보는 초등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엌에서 이것저것 해보느라 손과 팔은 자잘한 덴 자국과 벤 자국 투성이이다.

 

해외에서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자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즐겼고,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집에서 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건강하고 날씬하게 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엄마가 되고보니 음식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물론 남의 시선이 의미가 있었을 때는 와인이나 치즈 같이 멋져보이는 것들을 별 의미없이 좋아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무엇이 의미가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면서 손과 눈이 가는 곳도 예전과 많이 다르다. 아삭하게 잘 삭힌 마늘종, 힘껏 부풀어준 피자 반죽, 마늘 없이 끓여도 잡내가 나지 않는 풀 먹고 자란 소꼬리가 더 소중하다.

 

이제 엄마인 나에게 음식 준비는 부수적인 생활 활동이 아닌 주요 생존 활동이다. 내 아이의 몸에 직접 들어가는 유일한 것이 음식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 많고 풍요롭다는 이 미국땅에 살면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의 눈으로 고르다 보니, 숨 막힐 정도로 빽빽이 물건이 들어찬 운동장 같이 넓은 수퍼마켓에서도 살 것이 점점 없어져갔다.

 

"어떻게 저런 것이 음식이 되었을까?"

"저 사람은 어떻게 애한테 저런 걸 먹일 수 있을까?"

"저건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걸려서 온 걸까?"

"이 우유는 유통기한이 어떻게 6주나 되지?"

 

끊임없는 질문에 답을 구하며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당신이 먹는 것

여기 살면서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What you eat is what you are"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약간 비약하면 '밥이 보약' 정도로 생각할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말이 있는 문화라고 하기엔 사람들은 아무 생각 않고 TV에서 광고하는 대로 먹고, 먹고 또 먹는듯 하다.

 

미국 사람들이 저렇게 음식으로 인해서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데, 왜 이 나라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걸까. 저 사람들이 갑자기 덜 먹으면 슈퍼마켓 동일점포매출이 급격히 떨어져 이 나라 경제가 엄청난 타격이 있겠으니, 그것이 두려워 저 사람들이 저렇게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혼자서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당연히 나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몇 년전만 해도 자기관리에 철저한, 말끔하게 차려입은 게이 커플들만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 였는데, 이젠 나 같은 아줌마도 목소리를 높이고 귀를 기울여 듣는다.

음식을 둘러싼 변화를 관찰하다

날이 갈수록 Facebook Newsfeed에는 소비자에게 외쳐 알려주고 싶은 이들의 목소리가 숨가쁘게 올라오고 있다.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다국적 농업 기업 Monsanto*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는지, 기존의 거대한 식음료 회사들이 어떤 끔찍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등등.

* 세계 최대의 유전자변형작물(GMO)과 제초제 등 농업상품을 연구∙개발하는 기업. 환경운동가들은 GMO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몬산토를 비판한다(출처: )

 

나는 이 움직임들에 시간을 투자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직업은 수많은 회사들을 들여다 보면서 이 회사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면 비약이든 처절한 실패든 그것이 배양되는 어떠한 시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을 둘러싼 움직임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우리 몸에 직접 들어가는 음식이란 것이 생산되어, 식탁에 올라, 우리 몸으로 들어가 소비되어 살아가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 이 과정은 지난 수십년 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듯 했다. 편리함과 장삿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그런 진화말고는.

 

하지만 최근에는 이전과는 다른,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범한 제안과 시도가 보일뿐 아니라,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나도 생각 끝에 작년에는 NOFA NJ(Northeast Organic Farming Association New Jersey)*에 멤버로 가입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그곳에서 교육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기로 했다.

* 뉴저지의 비영리단체. 설립 취지는 땅과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친환경 음식 공급 시스템을 연구하는 것

 

나의 이 여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해 볼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아직은 그냥 관찰할 대상을 발견하고 주위를 맴돌며 여기저기 점을 찍어보고 있는 단계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 과정에서 PUBLY를 통해  Food Loves Tech 이벤트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나누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다. 이를 통해 정리된 생각이 다음에 어떤 점으로 이끌어 줄지, 그 점들을 다 이으면 어떤 모양이 될지 기대가 된다.

 

[2016 Food Loves Tech in NY]
미국의 푸드테크 스타트업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하며 실행 중인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