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의 등장

프로젝트를 위해 미팅을 참 많이 다니는데, 늘 겪는 상황이 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자마자, 자리에 앉기도 전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잠깐 정적이 흐르는 바로 그 순간! 바로 아래와 같은 상황이다.

 

ⓒ임수민

 

그렇다. 나에게는 명함이 없다. 몇 가지 이유를 떠올려봤다.

  •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가 명함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서
  • 누군가 나와 정말 연락하고 싶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명함 없이도 어떻게든 연락이 닿을 것이라는 생각에
  • 최근에는 명함보다 더 명함 역할을 해내는 인스타그램으로 먼저 미팅 요청이 오기 때문에
  • 명함에 나의 '직업'을 뭐라고 적어야 할까 늘 고민이라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크다. 흑백 필름으로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전시도 하고, 강연도 하고, 그러다 항해까지 하게 되었다. 포토그래퍼이자 강연자이자 세일러이기도 한 내 직업을 딱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쓸 수 있을까?

 

ⓒ임수민

내 주변에는 이렇게 다양한 일을 많이 하지만, 명함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 지방의 청년들을 위해 여러 청춘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기획자, 바다 쓰레기를 주워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까지. 이들 역시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수도 없이 많지만, 본인을 설명할 직업의 명칭은 물론 '부장', '팀장', '매니저' 등등의 또렷한 직책이 없기 때문에 명함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직업군에도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나면서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도 새로운 명칭이 생겼다.

바로 '크리에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