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뉴스덕후'가 HCI를 공부하는 이유

Editor's Comment

'거의 모든 것의 연결, HCI의 최전선 - CHI 2017' 프로젝트는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HCI 분야 최대 학회, CHI를 다룹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통합, 커뮤니케이션, 과학기술과 교육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울대 HCCLAB에서 HCI를 연구하는 오창훈, 정현훈, 유재연 저자가 소개합니다. (본 콘텐츠 상단 이미지 ©Makeability Lab) 

본 리포트는
6월 27일 (화) 오후 6시까지 예약 판매 할인이 진행 중입니다. [바로 가기]

잘 나가는 언론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권태로움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퇴사자가 그렇듯 그만둔 이유는 수백 개지만, 그 이유가 가장 컸다. 기자 생활을 몇 년이나 했다고 이 무슨 괘씸한 소리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들어 보시라.

 

세상은 옴니아에서 갤럭시 S로,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휙휙 변하는데, 나는 매일 같은 형태의 기사만 찍어내고 있었다. 추울 때 추운 데 가서 춥다고 보도를 했다. 교육부가 자료를 냈다는 이야기를 구성만 조금 바꿔서 1분 30초짜리 영상물로 내보내느라 영상기자, 편집기자, CG 디자이너를 달달 볶아가며 반나절을 보내곤 했다. 이런 소소한 것이 나 자신을 권태롭게 했다.

 

간단한 단신쯤은 기계가 쓸 수 있도록 하고, 그즈음 유행하던 카드 뉴스도 일찌감치 컴퓨터에게 "당장 만들어!"라고 시키고 싶었다. 대신 나는 좀 더 진지하고 사려 깊은 글이나 특종, 멋진 기획기사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기계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차라리 내가 회사를 나와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퇴장이 기자의 복지에 보탬이 되기를!)

 

그 이후로 내가 속하게 된 연구실(HCC Lab)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소위 '로봇 저널리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기자의 복지 여건은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 임무가 막중하다.

'하, 컴퓨터를 맘껏 부리고 싶다'
뉴스에 몰두하려면
기계를 부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덕후'인 나는, 인간과 기계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뉴스라는 콘텐츠에 몰입했다. 뉴스는 인간사를 다루지만, 더 이상 구전 시대가 아닌 이상 그 소통 경로를 온전히 기계에 의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 하나하나를 데이터로 여겨서, 그것을 아주 큰 덩어리로 엮어보면 어떤 패턴이 나올 것 같았다. 나중을 예측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법했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관점이나 안목을 찾을 수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구자가 세계 곳곳에 제법 있었다.

 

나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중 뉴스 데이터, 그중에서도 뉴스에서 다루는 이미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많이 모아서 연구한다. 즉, '빅데이터'를 다루고 있다. 수천, 수만 장을 다루다 보니 매번 컴퓨터가 달아오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많은 데이터에서 무엇을 찾느냐'이다.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인문학적 아이디어가 절실한 순간이다.

 

예를 들어 얼핏 보기엔 비슷비슷한 정치인의 사진을 모아서 "당선자가 낙선자보다 표정 관리를 좀 더 하는 경향이 있던 걸?"이라는 식으로 감성을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선거 보도사진의 특성과 정치인의 홍보 행태, 나아가 감정에 대한 인간과 컴퓨터의 인식 차이를 다루는 철학적 연구까지 섭렵해야 한다.
* 관련 논문: 유재연, 서봉원, 「보도사진 속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의 감정과 당선의 관계」 (Proceedings of HCI Korea, 2017) p.146-149

 

이처럼 HCI는 융합의 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계에 대한 학습 없이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구현할 수 없다.

 

우리가 다녀온 CHI 2017*은 그래서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학회다. HCI의 모든 세부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학회로 HCI 학계에서 가장 귄위가 높다.
* The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 PUBLY

 

CHI 2017을 통해 그간 연구하면서 궁금했던 점과 활용 방안은 물론, 궁극적으로 과거 인문학도이자 언론인이었던 내가 HCI 분야에서 자리 잡을만한 곳을 짚고 돌아왔다. 그걸 리포트로 전하는 것이 나처럼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을 포함하여, 독자 모두에게 HCI의 유용성을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용 모듈 키트부터 기자를 위한 쉬운 코딩 프로그램까지

Editor's Comment

본 글은 리포트 중 '6. 미래의 저널리즘 그리고 과학기술과 교육: 유재연의 시선'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6월 27일 (화) 오후 6시까지 예약 구매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다섯 살 때 레고를 처음 선물 받았다. 부모님은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이 집안 그 누구도 이런 딱딱한 조각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서야 거금을 들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창의력을 키우는 데 좋다고 하니 한 박스를 사주셨다.

 

레고 조각을 맞추는 것은 꽤 즐거운 작업이었다. 조금 큰 뒤에는 고무동력기를 조립했고, 그 후 파란 화면의 386 PC 속 'Q베이직(QBasic)'이라는 프로그램을 만지면서 자랐다. 그 누구도 발명가가 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 어린이든 부담 없이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를 적을 수 있던 시대였다.

 

아마 HCI 분야에도 비슷한 추억을 가진 연구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 역시 어린 시절에 무언가 집중해서 만들고, 완성하고 나면 아주 뿌듯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메이커웨어(MakerWear)'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모듈 모음집이다. CHI 2017에서 미국 메릴랜드 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아주 깜찍한 교육 아이디어다.
 


* 영상: < MakerWear: A Tangible Approach to Interactive Wearable Creation for Children > ©Majeed Kazemitabaar/Makeability Lab

 

연구진은 엄지 손가락보다 조금 큰 정육각형의 얇은 조각을 서른두 가지 종류로 만들었다. 실제로 보니 매우 작고 귀여운 레고 같았다. 아두이노(Arduino)*나 라즈베리파이**같은 칩이 주는 딱딱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 LED, LCD, 모터, 스위치, 온도 센서, 거리 센서, 가속도 센서 등의 전자 부품을 제어하는 데 뛰어난 마이크로 보드
** 쉽게 말하면 작은 CPU다. 어른 손바닥만한 기판으로, 여기에 메모리칩을 끼우고 모니터만 연결하면 컴퓨터처럼 구동된다. DIY 사물인터넷(IoT) 개발에 많이 쓰인다.

 

아이들은 알고리듬을 짜듯 얇은 조각을 그저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연구자가 이 키트를 열 살 안팎의 아이에게 줬더니 결과물이 화려했다. 미래의 운동복을 만들고, 슈퍼히어로의 암 밴드(arm band)도 발명했다. 학술적으로 풀자면, 아이들이 모듈을 가지고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든 것이다.

 

또한 알고리듬의 기본 개념인 입력(input) - 출력(output)은 물론, and 구문까지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코딩은 이렇게 놀면서 배우는 게 최고다. 이 아이들도 장래 희망으로 자연스럽게 과학자를 꿈꿀지 모른다.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처음 이 센서 키트를 접한 대여섯 살쯤 되는 아이는 주로 덜덜 떨리거나, 여러 색깔을 내거나 또는 모터가 돌아가는 동작을 시도했다. 여덟 살이 넘는 아이는 여기에 회전축까지 덧붙여 활용했다. 거리 측정 센서와 움직임 감지 센서는 물론, 각종 압력 센서와 버튼까지 쓰는 등 다양한 센서를 서로 조합해보았다. 이후 여러 차례 키트를 손으로 만지게 된 아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들어 냈다.

 

연구진은 아이의 연령대별로 아이디어, 기술 습득 시점에 차이가 있는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사용하는 모듈의 수와 알고리듬의 흐름(sequencing)을 활용하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발표자가 가슴에 붙인 것이 메이커웨어 모듈이다. &#169;유재연

같은 실험을 성인에게 하면 어땠을까? 아마 열두 살 어린이와 비슷한 양의 모듈을 쓰고도 덜 흥미로운 물건을 만들지 않았을까? 어린이의 상상력은 적어도 나보다는 풍부할 테니 말이다.

 

코딩 교육은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넓게는 모든 연령의 사람이) 컴퓨팅을 더 잘 이해할까에 대한 관심이 높다. HCI 분야에서는 인간의 인지 작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머신 타입과 교육 방법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물론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CHI 2017에서는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 아이에게 아두이노를 쥐어주는 사례에서부터 지구 반대편의 미국 기자에게 미래형 기사를 쓰게 만드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시도가 소개되었다. 본 리포트 중 '6. 미래의 저널리즘 그리고 과학기술과 교육: 유재연의 시선'에서는 미디어 업계에 추천하고 싶은 아이디어, 그리고 이들의 향후 독자이자 미래를 살아갈 아이를 위한 여러 과학기술 교육 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연결, HCI의 최전선 - CHI 2017]

기자 출신 '뉴스덕후'가 CHI 2017에 다녀와 미디어 업계에 추천하고 싶은 아이디어, 그리고 이들의 향후 독자이자 미래를 살아갈 아이를 위한 여러 과학기술 교육 시도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