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Editor's Comment

 

PUBLY의 26번째 프로젝트, '회사가 싫어서 - 2016 코워킹 유럽 컨퍼런스' 디지털 콘텐츠의 서문 일부를 미리 공개합니다. 컨퍼런스 정보와 프로젝트 소개는 관련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저자 오지예님은 2017년 1월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암스테르담 대학 문화사회인류학 석사 과정을 이수 중입니다. 2016년 11월 벨기에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현장 스탭으로 참여했으며, 이때 접한 정보와 이야기를 코워킹 스페이스 매니저로서 일하며 가졌던 철학 및 문제의식과 연결해 한 편의 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은 2017년 1월 17일 18시까지 예약 구매 가능하며 이후에는 인상된 가격으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아래에 해당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보람은 됐고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입에 달고 사는 2030
  • 어렵게 뽑은 직원이 왜 자꾸 그만두는지 궁금한 HR 담당자
  • '코'워킹 스페이스에 몸담고 있으나 '워킹'만 할뿐인 스타트업 종사자
  • 공간의 힘을 믿는 코워킹 스페이스 관련 종사자
  • 어디론가 출근하고 싶은 프리랜서

당신이 이 글을 읽기 전 알아야 할 내 정체

 

나는 이 글에서 아주 솔직할 것이다. 코워킹 스페이스와의 만남을 미화하지 않을 것이다. 2016 코워킹 유럽(2016 Coworking Europe, 이하 컨퍼런스)에 스텝으로 참여하며 보고 느낀 것과 기업 문화에 대한 인터뷰이들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할 생각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밝히자면, 나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난 지 2년 차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 직급으로 보자면 아직 대리를 달기까지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사원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 이유는, 정확하게 내가 대리나 부장이 아닌 '사원'이기 때문이다. 

 

사원 역시 회사의 소중한 구성원이다. 그들도 회사의 미래에 관심을 갖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고민한다. 그들의 미래 역시 회사의 미래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xx 년 경영전략 수립 회의'와 같은 장에서 그들의 의견은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아직 '사원'이라는 이유로 들어설 자리를 잃고 만다. 

 

물론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장'들의 식견을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사원들은 언제쯤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걸까? 외부에서 주어지는 '이제 의견을 말해도 괜찮다'는 자격은 얼마나 견고하길래, 내 말에 힘을 실어주게 되는 걸까?

 

박사, 교수를 포함한 '전문가'라는 타이틀은 언제부터인가 무소불위의 권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권위를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연한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건강한 지식 생산일까? 과연 언제가 되면 충분히 쌓였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런 '초짜'들의 생각이 전달될 수 있을 때 그 조직과 사회는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 끝에 일단은 시작해보기로 했다.

취준생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내가 2014년 대학원 입학을 연기하고 공유공간 플랫폼 회사*에서 근무한 2년의 시간 동안, 대기업, 공기업, 언론고시, 임용고시, 행정고시 등에 합격하여 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여러 의미에서 신기함을 느꼈다. 오랜 준비 끝에 '으리으리'한 회사 및 조직에 취업한 친구들이 한턱낸다며 신나게 파티를 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점점 시들시들해져 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 단기간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활용(동아리, 모임, 워크숍 등)할 수 있도록 빈 공간을 찾아 그 위치와 가격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도 달라졌다. 초반에 '직장인'으로서 하루 일과, 입사 동기들과 상사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캐릭터 분석, 새로 맡게 된 업무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점차 회사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 야근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 "힘들어"X100, 상사에게 못다 한 이야기들이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안에 점차 축적되어 가면서 나는 업계나 직무와 무관하게 그들의 이야기 속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아가 자조적인 어조로 '결국엔 내가 적응해야지 뭐'라며 자기 탓으로 넘겨버리고 말을 삼키는 친구들을 보며 내 안에서는 몇몇 질문들이 연이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그 기쁨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회사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정말 내 친구들이 독특하기 때문일까? 내가 하는 일을 아무리 설명해도 다른 세계의 일로 생각하는,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내 친구들이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업무 공간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우리가 코워킹 스페이스와의 만남을 시작해볼 수 있는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으리으리한 회사에 취업해
축하파티를 열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자 자조했다.
'내가 적응해야지'

내가 친구들과 다른 특이한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약 2년 전, 한 친구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2014년 봄, 나는 갈림길에 서있었다. 학비가 아깝다는 마음에 미리 졸업 이수학점을 꾸역꾸역 채워 수강했고 덕분에 한 학기 빠르게 졸업할 수 있었다. 이 말은 곧, 내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없이 취업이냐, 학업이냐의 갈림길 앞에 서게 됐다는 뜻이다. 당시만 해도 2가지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대략 5가지 길로 나뉘어 달려가고 있었다.

 

1. 대기업
2. 공기업
3. 행정고시
4. 언론고시
5. 임용고시 

 

외국계 회사가 빠져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외국계 회사를 바로 준비하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대기업을 준비하면서 외국계 회사도 준비하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 속에 나는 마치 대학 입시를 치르던 고등학생 때처럼 돌아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수능 성적표를 손에 들고, 마치 얼마 안 되는 예산을 들고 장을 보듯 대학교와 과를 고르고 있었다. '경제? 경영? 신문방송? 흠… 이 전공들은 나랑 안 맞을 것 같아. 인문학이 좋고 아시아 관련 뭔가를 하고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역사나 철학을 4년 내내 하자니 지루해할 것 같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라는 생각 끝에 나름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 중국에 관련된 각 전공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중국문화학이 그 답이었다. 

 

놀랍게도 5년 후 나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5가지 회사 선택지는 나와 맞지 않는데…'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싫어하는 것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선택을 하자는 이전의 내 방식을 그대로 이어간 것이다. 그 결과 '공부는 재미있고 좋아'라는 마음에 대학원을 선택했다. 물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나? 대학원 공부는 머리 좋은, 특출난 애들이 하지 않나라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재촉하며 선택을 부추겼고 2014년 여름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약 4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대학원 입학을 위한 영어 시험을 준비하고 지원서를 작성하며 바쁘게 시간과 마음을 채워갔다. 그러던 중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다. 나처럼 대학을 조기 졸업한 그 친구는 앤스페이스라는 공유공간 플랫폼 운영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몇 달 후 친구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다. 앤스페이스가 '코워킹 스페이스 운영진'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너에게 잘 맞을 것 같아." 친구의 이 한 마디와 8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계약 기간, '대체 그게 뭘까'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코워킹 스페이스의 매니저 자리에 지원했다.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만난 사람들

 

8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연하게 찾아온 기회는 정말 평생 잊지 못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공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앤스페이스는 공간 운영 규칙을 일부 결정한 상태였다. 따라서 내가 속한 팀의 역할은 기존 규칙대로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공간 세팅, 행정 업무)하면서 코워커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것(시설 및 규칙 안내, 코워커 모임 및 전체 멤버 네트워킹 진행)이었다.

 

2015년 1월, 우리 팀은 한 달 간 인수인계 후 비영리 단체인 동그라미재단의 코워킹 스페이스 오픈콘텐츠랩*의 위탁운영자로 업무를 본격 시작했다. 

* 2017년 1월 현재 오픈커뮤니티랩이란 이름으로 변경돼 재단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2015년 평일 오후 당시 오픈콘텐츠랩 모습 ©오지예

처음에는 그곳에 온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죄송한데- 그게 뭐예요?'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퍼실리테이션?"
"소셜벤처?"
"코칭?"
"창업?"
"앱 개발?"
"청소년 대상 흡연 예방 교육?"

 

생전 처음 들어보는, 또는 들어는 봤지만 만날 일이 없던 직업을 가진 분들을 직접 대면했다. 이 경험을 통해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공간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코워킹 스페이스와 이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손발이 잘 맞는 팀워크의 시너지를 어렴풋이 경험해볼 수 있었다. 우리 팀의 특징은 직장 동료이기전에 '친구 관계'로 맺어진 이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각자가 맡은 부분을 명확하게 나누었고, 그 연결 고리를 잘 다듬어주는 소통 방식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생각 날 때마다 의견을 교류하고 업무 방식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가령 풀타임과 파트타임 업무 교대 시에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이전에 있던 상황을 잘 전달해 줄 수 있을까, 당일 일정이 바뀌게 된다면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까 등등) 

 

특히 3개월 마다 한 번, 행사가 있는 날이면 팀워크는 더욱 잘 발휘됐다. 아직도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을 있다. 80명 정도가 모이는 멤버십 이벤트를 앞두고 나는 정신이 없었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을 때, 음향을 준비하느라 미처 분리수거함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히 쓰레기통을 향해 달려가는데 팀원이 이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플라스틱, 종이, 음식물로 나뉜 박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지금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를 보며, 우리가 함께 이 행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조직에서 일을 하고 팀워크를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8개월의 코워킹 스페이스 운영 업무가 끝나고 약 1년 동안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대신 앤스페이스에서 계속 근무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유공간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폭 넓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그동안 품은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3개월 후 벨기에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현장진행 스태프로 참여했다. 컨퍼런스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업계 관계자 4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이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돌고 돌아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리포트에서는 그 흐름 안에서 새로운 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회사가 싫어서 - 2016 코워킹 유럽 컨퍼런스]

일이 아니라 회사가 싫어서 탈출을 꿈꾼다면? 일하는 방식과 장소, 관계의 변화를 바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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