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전환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스무 개가 넘는 기업의 사례를 만나면서 저는 이를 세 가지 전환으로 종합해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는 불특정 다수의 청중을 쌓는 것에서 개별 창작자-소비자를 커뮤니티로 연결해내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두 번째는 독자를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것에서 직접적인 데이터를 통해 독자를 '아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세 번째는 상품 혁신에서 프로세스 혁신으로의 관점 전환입니다.

디지털 전환의 2막 ©제현주

이런 세 가지 전환은 그 경계가 새롭게 그어지고 있는 책 산업 내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생존을 뛰어넘어 제 자리를 넓혀가려는 시도로부터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을 위한 시도는 동시에 산업 내 플레이어의 역할을 새로 규정하며 하나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냅니다. 시장의 경계가 이동하며 역할이 새롭게 규정되고, 역할의 경계가 움직임으로써 시장의 경계가 또다시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독자와 직접 만나고 데이터를 통해 독자를 확인해야 한다면, 출판업은 책을 만드는 일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독자를 커뮤니티로 엮어내거나, 혹은 이미 커뮤니티로 엮여있는 독자에게 접속하려면, 독자와의 관계 맺기가 책 한 권의 라이프사이클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질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경계가 새로 그어질 때 변화하는 것은 출판업자의 역할만은 아닙니다. 저자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도 새로이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와 출판업자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지금은 이 모든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안정된 모델은 잘 보이지 않고, 어딘가 어긋난 지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리포트에서 소개했던 Wattpad도, Eburry의 컬래버레이션 사례도 새로운 역할과 관계의 모델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완성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시도해야 할 실험은 남아 있습니다. 동시에 모델은 비슷해 보일지언정 다른 디테일로, 다른 타깃을 향해 더 다양한 버전의 실험을 시도해가는 주체들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업에서 일어나는 전환은 그 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일상 업무에도 변화를 요구합니다. 에디터의 역할은, 또 마케터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둘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그을 수 있을까요? 유튜브 스타 Dan and Phil과의 컬래버레이션이 출판사의 구성원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Ebury의 매니징 디렉터 Rebecca Smart의 이야기가 특히 와 닿았던 이유입니다.

유튜브 스타 Dan and Phil과의 컬래버레이션 (발표자료 중 Ebury 사례) ©제현주

그리고 새로운 질문

 

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를 일 삼아 살며, 책 산업에 발 걸쳐 온 지 이제 5년째 접어드는 저에게 이 모든 전환의 문제는 제 삶의 전환에 대한 문제로 바로 직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일에서
어떤 전환을
시도하고
실험해야 할까?

이렇게 확인한 전환의 사례를 지침 삼아 리포트를 정리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아마도 저만의 것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두 차례의 프라이빗 살롱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어떤 전환을 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발표 자료 및 오디오 듣기, 리포트 구매 고객 전용)

 

십몇 년, 이십몇 년 출판사를 꾸려온 두 분이 입을 모아 "이 일을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수 년째 고심 중이라고 농반진반처럼 던진 이야기가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두 세션 모두 흥미롭게도 방송계 분들이 많이 참석해 방송업계에서도 출판업계와 비슷한 지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방송업계 종사자 역시 업의 전환을 도모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을 느끼는 듯했고, 책 산업의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고 싶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른바 '인생 이모작'의 두 번째 농사를 출판업에서 꾸려볼까 고려 중이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와는 대비되는 모습의, 20대 초등학교 교사도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 같았다면 이제 막 커리어의 첫발을 내디뎠을 시점일 텐데, 이미 교직을 떠나 사업가로 전환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과연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리포트를 읽으며 어떤 실마리를 찾고 싶었을까요?

 

'콘텐츠 전략가를 위한 리포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행한 프로젝트였지만, 프로젝트를 마감한 지금, 업의 전환, 일의 전환을 모색하는 분을 위한 리포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게 아마 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면서, 저의 지난 5년을 변화하는 책 산업의 지도 위에 놓고 정리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 정리가 깔끔한 답으로 끝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이렇게 더 큰 질문과 함께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그 어떤 답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찬찬히 그 답을 모색해볼 계획입니다. (끝)

미국의 10대 청소년들에게는 하드커버 종이책 구입이 유행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e북도, 저렴한 페이퍼백도 아닌, 두툼하고 비싼 하드커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새로 낼 책이 독자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궁금한가. 가령 얼마나 몰입해서 읽을지, 책장은 얼마나 빨리 넘어가는지, 끝까지 읽는 사람들은 몇 %나 될지. 제현주와 김안나의 '2016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답이 있다.

출판사 사장이 아니라, 전략가의 시선으로 본 110분짜리 리포트.

-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아래의 링크에서 지금 바로 리포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