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도쿄에는 7천여개의 카페가 있습니다. 서울에 1만 7천여개의 카페가 있는 것에 비하면 적은 편입니다. 도쿄에 1400만여명, 서울에 1000만여명이 거주하는 것을 고려하면 인구당 카페 수는 더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카페들은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 고민합니다. 그래서 프랜차이즈형 카페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유형의 카페들이 보입니다. 도쿄 카페들의 차별화 포인트는 크게 5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습니다.

  • 팬덤형. 연예인이나 캐릭터를 앞세운 카페입니다. 팬들의 기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습니다. AKB48 카페, 건담 카페 등이 대표적입니다.
  • 복합형. 꽃집, 서점 등과 결합한 형태의 카페입니다. 고객 편의 제공 및 매출 증대의 효과가 있습니다. 아오야마 플라워 티하우스, 브루클린 팔러 카페 등이 대표적입니다.
  • 고급형. 커피의 품질로 승부하는 카페입니다. 커피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고가의 커피를 판매합니다. Nozy 커피 등이 대표적입니다.
  • 컨셉형. 일상적 혹은 현실적이지 않은 분위기의 카페입니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메이드 카페 등이 대표적입니다.
  • 동물형. 특이한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카페입니다. 동물 매니아들의 꾸준한 수요가 장점입니다. 부엉이 카페, 펭귄 카페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카페들이 차별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건 '시루 카페' 입니다. 시루 카페는 커피의 품질, 매장의 형태, 카페의 컨셉 등을 변형한 것이 아니라 '고객'을 차별화했기 때문입니다. 카페의 커피는 개인에게 판매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기업에게로 눈을 돌린 것입니다.

세상에 없던 카페의 탄생

시루카페 와세다 대학점 입구입니다. '알다'라는 뜻의 시루를 활용해 로고를 디자인했습니다. ⓒ트래블코드

시루카페에서는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습니다. 이용시간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학생증을 가진 30세 미만의 대학생, 대학원생만 출입 가능합니다. 또한 시루카페의 서비스를 모든 대학생, 대학원생이 누릴 수는 없습니다.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도시샤대 등 일본 상위권 대학 앞에만 매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카페에 방문하는 고객군을 선별하는 대가로 고객들이 마시는 커피값을 기업들에게 청구합니다.

 

시루카페는 일본 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요 기업들로부터 연간 스폰서료를 받고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회원사는 시루카페에 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사를 홍보하고, 채용 설명회나 제품 출시 등의 이벤트가 있을 경우 대관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카페와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루카페는 어떻게 세상에 없던 카페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시루'가 '알다'를 뜻하듯, 시루카페가 카페 사업, 기업 상황, 학생 니즈를 알았기에 가능했습니다.

#1. 카페 사업을 안다

ⓒ트래블코드

카페 사업은 목이 중요합니다. 매장의 위치에 따라 매출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목 좋은 곳에 카페를 오픈하려면 임대료가 비싸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임대료를 감당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경쟁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매장 근처에 또다른 카페가 들어서면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경쟁 업체의 오픈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경쟁에서 견딘다해도 문제가 또 있습니다. 전염병, 사건사고 등의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매출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신제품 개발, 운영 인력 관리 등을 고려하면 난이도는 더 높아집니다.

 

카페 사업은 언뜻 보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은 사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루카페의 접근은 단순히 고객을 기업으로 바꾼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커피가 공짜라 여러 문제가 풀립니다. 우선 학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매장의 위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집니다. 그래서 시루카페는 캠퍼스에서 가까운 곳의 2~3층에 위치하거나, 1층에 위치할 경우 캠퍼스와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무료 커피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커피 품질,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습니다. 품질 개선이나 신제품 개발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없고 운영 인력 관리 부담도 적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기업과의 스폰서십을 연단위로 갱신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이슈에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커피를 개인이 아니라 기업에게 판매한 덕분입니다.

#2. 기업 상황을 안다

ⓒ트래블코드

학생들이 마시는 커피값에 대해 기업들은 연간 140만엔(약 1500만원)을 지불합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내는 스폰서십 비용은 합리적인 것일까요? 광고비로 보면 비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지점에 일평균 250명 학생이 방문합니다. 연단위로 환산하면 약 9만명 수준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1인당 167원의 광고비가 드는 셈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집행하는 광고비 대비 비쌉니다.


하지만 광고비가 아니라 인재채용비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한국의 대기업이 1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200만원 정도. 채용 규모에 따라 연간 수억에서 수십억원을 지출합니다.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아닌 상위권 대학의 인재 약 9만명에게 평소에 인당 167원의 비용으로 기업을 노출하며, 리쿠르팅 시즌에 시루카페를 대관해 채용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비싼 비용이 아닐 수 있습니다.

 

후원사는 시루카페에서 채용을 위한 회사 설명회를 진행합니다. ⓒ시루카페

특히, 학교에 따라 서열이 갈리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 대학교들은 학교의 전체적 순위와는 별개로 간판 학과 또는 특성화 학과가 인정 받습니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은 기업 입장에서는 시루카페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대가 대표적입니다. 시루카페는 공대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은 기업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나고야대학 앞에도 시루카페를 운영합니다.


또한 시루카페는 1개 매장 당 60개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후원사의 수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JP모건, BCG 등의 글로벌 강호들 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 라쿠텐, 노무라, 니케이 등 일본의 대표 기업 등이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후원사가 된다면 일류 기업 이미지를 강화하고 가고 싶은 회사로 포지셔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1인당 167원으로 단정짓기엔 숨어있는 의미가 큽니다.

#3. 학생 니즈를 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음료, 무료 와이파이, 콘센트 등의 편의를 제공하며, 단순한 메뉴 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음식과 음료를 허용합니다. ⓒ트래블코드

 

시루카페는 기업 스폰서십으로 운영하지만, 카페 내부에 기업 홍보물이나 채용 공고가 빼곡하게 붙어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보통의 카페보다 여백의 미가 넘칩니다. 공짜로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학생들이 광고로 도배된 카페를 선호할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루카페 내부에 있는 모니터와 테이크아웃용 컵을 통해서 후원사 기업 로고를 노출시킵니다. 학생들이 카페의 쾌적함을 즐길 수 있도록 적절한 홍보 수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학생들이 커피만 마시기 위해 카페를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과제도 하고, 공부도 하며, 모임도 합니다. 그래서 시루카페에서는 자유롭게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콘센트도 충분하게 설치해 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짜로 제공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에 차지 않는 메뉴 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음식물도 반입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시루카페는 커피가 무료라고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학생들의 니즈를 반영해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해야 기업들에게 커피값을 청구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없던 카페의 성과

글로벌 기업 및 일본 대표 기업들이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시루카페

학생들에게 커피를 공짜로 팔면서 시루카페가 버는 돈은 어느정도 될까요? 기업당 140만엔(약 1500만원)을 스폰서십 비용으로 받지만, 여러 지점 중복 후원 등의 할인을 감안해서 평균 90만엔(약 1000만원)이라고 가정을 하면, 지점당 평균 50여개 정도의 후원사 수를 고려했을 때 연매출 5억원이 발생합니다.

 

매출에서 비용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재료비, 임대료,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대략적인 수익을 알 수 있습니다. 원재료비는 인당 1000원이라 가정했을 때 9만명이 방문하므로 연간 약 9천만원, 임대료는 30평 남짓 하는 매장 크기를 고려했을 때 평당 20만원으로 계산하면 연간 7200만원, 인건비도 인당 100만원씩 15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면 연 1억 8천만원입니다. 기타 비용을 월평균 100만원씩 잡으면 연 1200만원의 비용이 나갑니다. 보수적으로 봐도 매장당 1억원 넘는 수익이 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일본 전역에 11개의 매장이 있으니 10억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 앞에만 매장을 낸다는 시루카페의 전략을 보면 매장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주수익원인 후원사의 수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루카페는 성장 가능한 모델일까요?

세상에 없던 카페의 미래

시루카페는 인도공과대학 앞에 해외 1호점을 오픈했습니다. ⓒ시루카페

성장은 두가지 축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는 스폰서십 비용을 높이는 것입니다. 후원사의 개수를 제한해두었기 때문에 기업의 수요가 늘어날 경우 후원비용을 상향조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에 도시샤 대학 1호점 오픈 당시 스폰서 비용은 90만엔이었는데 현재는 140만엔으로 3년 사이에 50% 이상 올랐습니다. 제한된 자리를 두고 후원사간 경쟁을 한다면 스폰서십을 통한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해외 진출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 상위권 대학이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전세계에서 우수 인재를 스카웃하고 싶어합니다. 시루카페의 글로벌 진출이 당위성을 갖는 이유입니다. 이미 시루카페는 인도공과대학 앞에 해외 1호점을 오픈했고, 2개 지점을 준비 중입니다. 인도에 있는 인재가 필요한데, 리쿠르팅만을 위해 해외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본 기업의 요청을 등에 업고 카페를 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폰서비도 더 높습니다. 시루카페는 지역 확장 및 객단가 상승의 효과가, 해외 우수 인재를 필요로 하는 일본 기업들에게는 해외 직접 채용보다 적은 비용이 드는 장점이 있어 모두에게 득입니다.

 

시루카페를 보면 비즈니스 모델이 간단하고 수익성이 높아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벤치마킹을 하려면 성과와 미래 등의 숫자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탄생의 철학적인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루카페는 온라인 리쿠르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창업자 유스케 카키모토는 채용의 온라인화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채용의 과정에서는 신속도보다 정확도가 더 중요한데 온라인 채용 과정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채용의 부작용과 기업의 수요와 인재의 공급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시루카페를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알다'라는 뜻을 가진 '시루'카페의 가장 중요한 숨은 의미는 기업과 인재가 서로를 알아보는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주소: 일본 〒169-0051 Tokyo, Shinjuku, 西早稲田2丁目18-20

 

 

[퇴사준비생의 도쿄- 진짜 출장은 지금부터다]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도쿄에서, 누구도 본 적 없는 도쿄를 발견했습니다. '트래블코드'팀이 발견한 '퇴사준비생의 도쿄'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