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해요?

 

Editor's comment

2016년 뉴욕 월드 메이커 페어의 기록, '메이커가 세상을 만든다' 프로젝트의 에필로그입니다.

이 글을 쓴 이경선님은 뉴욕주립대 환경정책 박사과정 4년차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과 그 안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연구 중인 젊은 저자입니다. 저자는 세계 최대 메이커 축제 중 하나에 참가하여 메이커 운동의 배경과 현재, 앞으로의 가능성을 분석해 디지털 리포트로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내용과 가격 정보는 '바로 읽을 수 있는 콘텐츠 페이지(메이커가 세상을 만든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왜 이걸 하냐'고 묻습니다. 제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2016년 가을 뉴욕에서 열린 월드 메이커 페어(이하 페어)에 참석하고 PUBLY와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 공부와 연구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왜 하냐는 의문의 시선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는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풍문으로만 듣던 페어에 가보고 싶었고, 이왕 간다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영감을 주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왜 시작했냐는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딴짓' 혹은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의 중요성을 저는 페어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거 왜 해요?", 저를 고민하게 만든 질문을 메이커들에게 물으면, "해 보고 싶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듯이 말이죠.

 

그 과정에서 그들이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들이 단순한 '재미'를 넘어, 메이커 자신과 사회에 중요한 '일'로 진화하는 중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낯선 이런 모습을 리포트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거 왜 해요?"
"해 보고 싶어서요."

성공적으로 보이는 메이커들의 프로젝트 과정은 들여다보면 도전과 고민,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프로젝트라는 일로 만나니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라왔습니다.

 

리포트를 쓰면서 어떤 분들이 독자인지, 그분들이 무엇을 궁금해하실지, 이 이야기들이 어떤 가치를 지닐지 늘 고민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PUBLY와 함께 일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면 함께 고민하고 좋은 방안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딴짓'이 환영받는 사회를 위하여

 

제가 외국에 있어 이번 오프라인 행사 '월드 메이커 페어 살롱'에 참여하지 못해, 독자 분들을 만나지 못해 무척 아쉬웠습니다. 송철환 메이커스* 대표님과 함께 국내의 메이커 운동의 현실, 한계와 대안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메이커들의 플랫폼'을 비전으로 설립된 스타트업. 메이커 교육 브랜드인 메이커버스와 3D 프린팅 플랫폼 메이커스앤을 운영하고 있다. - PUBLY. 

박소령 PUBLY 대표와 송철환 메이커스 대표의 '메이커 살롱' 대담 현장. 살롱 참석자들이 메이커 페어 관련 영상을 시청 중이다. ⓒ곽승희

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페어에서 느꼈던 국내 메이커 운동에 대한 아쉬움을 몇 자 적고자 합니다. 

 

뉴욕의 페어에서 만난 한국 분들을 통해서나 국내의 미디어 및 SNS에서 본 한국 메이커 운동의 성장세는 상당히 빠릅니다. 현 정부는 백만 메이커 양성을 목표로 여러 정책을 세우고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무한상상실'이라 불리는 메이커 스페이스가 공공기관에 만들어져 누구나 이용가능합니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유명한 세운상가는 내부 한 편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운영 중입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무한상상실 홍보 영상

 

서울 상상력발전소의 세운상가 메이커 스페이스 소개 영상 

 

하지만 의문이 듭니다. 메이커 운동의 양적인 성장이 국내 메이커 문화의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일까요?

 

제가 페어에서 본 메이커 운동의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닌, '철학'과 '가치관'이었습니다. 페어의 메이커들은 인간의 창의력과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참여와 공유 그리고 실패와 성공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정부의 지침을 쫓는 대신 스스로 지향점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 현상을 '운동'이라고 부르는 이유겠지요. 

 

국내의 메이커 운동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철학과 가치관에 대해 우리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짓', '딴짓'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나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과정 자체로 의미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적 분위기인가요? 

 

숫자로 나오는 경제적 가치 말고 삶의 질 향상에는 얼마나 관심이 있나요?

 

사고 쓰고 버리는 습관이 아닌 만들어 쓰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나요?

 

무엇보다, 일을 떠나 취미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나요?

 

우리 사회는 '실패'를 어디까지 용인하고 있나요? 

이 리포트를 통해 보신 메이커 운동의 모습이 단순히 "아, 이런 것도 있구나."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시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보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메이커입니다.

 

메이커 운동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프로젝트에 함께해주신 독자 분들과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PUBLY 팀, 특히 곽승희 에디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메이커가 세상을 만든다-월드 메이커 페어 @뉴욕]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메이커 축제 중 하나, 메이커 운동의 과거와 오늘, 내일이 펼쳐지는 월드 메이커 페어(World Maker Faire) 리포트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