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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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6년 6월 12일 일요일 오후 3시
• 장소: 서울 성수동 오늘살롱 (구 디웰 살롱)
• 참석자: 황준호 저자 그리고 15명의 독자

©황준호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워렌 버핏을 만나다' 프로젝트 클로징 파티 때, 황준호 저자가 독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습니다. 2016년 주주총회에서 버핏이 나눈 투자 철학을 알고 싶은 분들은 디지털 리포트 구매 후 바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PUBLY

(황준호, 이하 생략)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혹은 저자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모두가 어떤 물음을 갖고 이 자리에 참여했을 것이다. 부동산에 비유하자면, 아직 건물이 지어지지 않았음에도, 미분양 상태에서 다 청약을 해주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투자를 시작하면서부터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제다.

투자란 무엇인가

투자를 로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당첨될 로또 번호를 맞추듯 투자를 하는 사람은 어떤 종목이 오를지, 내가 산 종목이 어떻게 될 것인지 신경을 집중한다. 물론 투자를 로또에 비유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다만, 허점 있는 로또를 찾는 것이 투자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허점을 찾아낸 사람도 있다.

©황준호

예를 들어 보자. 복권 시스템을 연구하던 MIT 학생들이 허점이 있는 복권을 찾아냈다. 한 장당 2달러인 '캐시 윈폴(Cash WinFall)'이라는 복권이다. 이 복권을 60만 달러어치 사면, 15~20%는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복권 운영 당국은 이 복권의 매출이 엄청나게 늘어나니까, 허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복권 판매를 계속 유지했던 것이다. 자기 돈도 아니고, 산 사람의 돈을 재분배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복권은 2012년 초에 없어졌지만 복권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당첨금을 몇 년 동안 챙겨 온 MIT 학생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허점을 찾아내는 것은 투자에서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찾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것을 찾아서 다시 돌아오는 데에 배팅했다 해도 그 결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이하 LTCM)*다.
* 1994년, 살로몬 브라더스의 부사장이자 채권거래팀장이었던 존 메리웨더가 설립한 미국의 헤지펀드다. - PUBLY

 

LTCM은 현·선물, 장단기 채권 등 가격의 괴리를 발견해서 그것이 회복되는 데에 돈을 걸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차이에 엄청난 레버리지(Leverage)를 활용해서 자신이 가진 자본금의 몇십 배를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LTCM은 가격이 회복되지 않을 때를 버티지 못해 결국 1998년에 파산했다.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로 과연 버핏의 미래 투자는 어떤 모습일지 혹은 인공 지능의 발달로 투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사실 내가 답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은 아니지만 바둑과 연관 지어 이야기해보겠다. 참고로 바둑은 2,500년 전의 게임이고, 제대로 된 투자 시장이 만들어진 지는 150년 정도라고 본다. 그중 절반 정도를 버핏이 겪었다. 내 이야기와 버핏의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투자가 발전된 과정을 바둑이라는 게임의 패러다임과 연관 지어 보겠다. 패러다임이란 세계관이다. 그 세계관 아래에 돌을 둔다. 착상(着想), 즉 바둑돌을 두는 아이디어를 지배하는 것을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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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시초 모델은 전쟁이다. 상대방의 돌을 최대한 많이 잡아야 한다. 당시 바둑의 승패를 결정하는 기준은 바둑판 위에 남아 있는 돌의 숫자였다. 영토의 획득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투자에서도 이런 현상이 똑같이 일어났다. 바둑판 위에서 계속 전쟁을 하듯이 상대방을 잡아먹어야 내가 이기는 구조다. 투자에서 '단수 친다'는 용어를 많이 볼 수 있다. 네이버 게시판을 보면 '내가 어느 저점에 사서 어느 고점에 팔았다'는 식으로 자랑하는 글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이것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패러다임 아래에 있다.

 

한편 이 패러다임이 17세기 일본에서 바뀌게 된다. 일본의 바둑에서 승부의 기준은 상대방의 돌을 많이 잡는 것이 아니다. 집의 개수로 바둑의 승부를 결정짓는다. 더 많은 집이 이긴다. 이때부터 돌은 집을 얹기 위한 수단이 된다. 더 효율적인 수를 하나하나 고민하게 된다. 일본 막부 시대 바둑 기사 중 혼인보 도사쿠라는 이는 이걸 만들었고, 구조주의라고 볼 수 있다.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모양에 대해서 따지게 됐고, 상대방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승부의 핵심이다.

 

투자도 그렇다.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높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한 결정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투자에서 헤징(Hedging)*이라는 포트폴리오로 연결된다. 부분적으로는 내가 지더라도 전체적으로 이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 현물에 있어서 가격 변동의 위험을 선물의 가격 변동에 의하여 상쇄하는 거래를 말한다. 선도거래, 선물거래, 선물환거래, 옵션거래 등이 대표적이다. - PUBLY

 

델타헤징(Delta Hedging)*이 등장한 것은 워런트(Warrant)** 가격이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워런트를 매도하고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델타헤징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되면 변동성 속에서 일부 손실을 볼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익을 올리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둑에서도 처음 귀에서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가령 아홉 집을 만들어야 할 때, 중앙보다는 변이나 귀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현물가격의 변동과 선물가격의 변동 간의 비율, 즉 델타를 이용하여 헤징을 하는 방법을 말한다.
** 일정수의 보통주를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한, 또는 같거나 비슷한 쿠폰금리를 가지는 채권을 살 수 있는 권한을 증권소유자에게 부여하는 증서다. - PUBLY

 

그런데 이걸 다시 바꾼 사람이 일본에서 공부한 대만 출신의 유명 바둑 기사 우칭위안이다. 그는 기존 바둑의 두 가지 패러다임 사이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냈다. 바로 중앙의 발견이다.

 

이번에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네 번째 대국에서 둔 78수 때문이다. 그 수가 거의 정중앙에서 나왔다. 우칭위안은 그것과 비슷한 일을 처음 한 사람이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두터움'이다. 두터움에 대해선 차후 다시 이야기하겠다.

 

일단 바둑을 두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상대방에 맞춰서 보통 1,2,3,4수를 가면서 자신의 집을 더욱 강화하는 모습인데, 이러한 착상은 바로 중앙으로 뛰어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남들이 효율적인 귀를 노릴 때, 혼자서 비효율적인 중앙과 변을 선점한다. 이걸 속도전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수가 나중에는 상대방의 집을 만드는데 초를 칠 수 있는 결정적 수가 된다.

 

투자에서의 두터움

 

이렇게 바둑에서의 패러다임이 세 번에 걸쳐 변해왔다.

 

처음은 전쟁이다. 힘 싸움이 중요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수익이 중요한 것이 초보자의 투자다. 다음에는 질이 중요해진다. 내가 부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만든다. 이것이 고수의 투자다.

이번에 버핏 주총에 가서
새롭게 느낀 점은 두터움

버핏이 중앙의 세력, 즉 두터움란 개념으로 투자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투자에서 내가 생각하는 중앙은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현금이다.

 

버핏의 경우 총 480조 원 정도의 시장 가치를 갖고 있다. 그중 150~180조 원이 투자 부문이고 기업 전체를 인수한 가치다. 150조 원 정도에서 그때그때 다르지만 약 30~50조 원을 단기성 자금으로 들고 간다. 개인 포트폴리오에서도 현금 및 당기성 자금의 비율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버핏은 위기 때마다 좋은 기업들을 싸게 살 수 있었다. 물론 이 현금은 평소에는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 마디로 돈을 놀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버핏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골드만삭스를 50억 달러에 샀다. 당시 환율로 치면 8조 원 정도 된다. 그때 그만큼의 현금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위기 때를 위해 현금을 가져가는 것, 나중에서야 알 수 있는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 두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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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처럼 마지막에 가서야 집이 되지만 먼저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을 속도전을 하듯 미리 가지는 것이 버핏의 투자다. 그래서 버핏의 방법은 이 세 단계의 투자 중 제일 단계가 높다고 생각한다.

 

또한 버핏이 말한 투자 원칙, '잃지 않는 것'의 의미는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돈을 벌었다. 버핏과는 조금 다르다.

 

만일 10번 투자를 하는데 거기에 배씩 넣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최소 5번은 이겨야 손실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2번만 벌어도 손실이 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지부터 따졌다. 가령 8번의 투자가 각각 5%씩 손실이고, 나머지 2번의 투자에서 2배를 번다고 계산해보자. 단순 셈으로 5%씩 8번 손실이면 -40%, 나머지 2번에서 100%씩 수익이 나면 +200%다. 이런 생각으로 계속 손절(손해를 감수하고 판다)만 했더니 나중에는 +200%이 더 커지고, 훨씬 많은 수익이 났다. 그래서 버핏 프로젝트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돈을 벌거나 잃는 것만 생각하지만,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안 하거나 혹은 번 것도 잃은 것도 아닌 고통스러운 시간이 존재한다. 심심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시기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가지고 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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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공한 투자자의 과거 투자수익률을 분석했더니 수익의 대부분이 모든 거래 기간 중 7% 기반에서만 나왔다. 나머지 93% 기간의 평균은 거의 제로였다. 그러니까 93%의 역할은 '잃지 않는 것'이고, 7%를 포함해서 심심한 부분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드느냐가 핵심이다.

Part of 'VJ Day a Times Square, New York, NY, 1945' ©Alfred Eisenstaedt

위 사진은 알프레드라는 사진작가가 1945년 전후 직후의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라이프 잡지 표지에도 실린 걸로 유명하다. 당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매우 신이 나서 아무나 잡고 서로 키스를 했다고 한다. 사진 속 해군 역시 그렇게 키스를 했을 것이다.

 

마침 알프레드는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10피트에서 무한대로 초점을 잡고 계속 기다렸다고 한다. 어느 순간 이 하얀 피사체가 잡혔고,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셔터를 5번 눌렀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지금도 가장 유명한 역대 최고의 사진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투자도 사실 정말 대박을 노리고 매번 한다면 쉽지 않다. 그런데 계속 견딜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대박이 터진다고 본다. 그리고 그 패턴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면 정말 제대로 된 구조일 것이다. 이게 오늘 발표의 요지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의 방법을 묻곤 하는데, 결국 정해진 방법이 없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자들

 

리포트에 필립 피셔의 아들 케네스 피셔의 대한 이야기를 조금 썼다. 케네스 피셔는 아버지 필립 피셔가 워낙 유명한 투자가이다보니, 어릴 때부터 버핏과 알고 지냈다고 한다. 한국의 배우에 비유하자면, 하정우라고도 할 수 있다. 하정우도 대배우의 아들이라는 압박감을 떨쳐내고 성공했다.

 

케네스 피셔 역시 성공한 투자가다. 아버지의 영향 아래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결국 자기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투자를 하고, 책으로 엮어서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장을 이겨라」, 「90개의 차트로 시장을 이겨라」 같은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다.

©황준호

그런데 사람들은 왜 생존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투자에 뛰어들까?

돈을 너무 벌고 싶어서다.
많이 벌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
돈을 벌게 해주지 않는다.

나는 원래 채권 투자 쪽으로 일을 시작했다. RP(Repurchase Agreement, 환매조건부 채권)팀이라고 CMA에 돈을 넣으면 이자를 주듯이 채권을 사서 이자를 주는 것이다. 당시 내가 속한 팀이 5명이었는데, 그 팀에서 4~5조 원을 굴렸다.

 

그때 기업은 대부분 5백억 원으로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액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 1조 원을 넣는다면 그 이자를 주기 위해 단기성 채권을 대량으로 사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5백억 원 이상을 한 은행에 넣기 어렵다. 은행에 미리 알려줘야 하고, 일이 잘 진행돼서 3천억 원 정도까지 넣을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그렇다면 10조, 20조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독일에서 2012년 7월,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나왔다. 과연 사람들이 마이너스 금리에 그 많은 돈을 넣을까?

 

그리고 3개월 뒤, 유로화가 달러화 대비 15% 상승했다. 사실 이득을 볼 생각 없이 리스크를 최대한 피해 도망쳐서 간 곳이 독일 부채였는데 그게 결국 돈을 불려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게 나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럼 도대체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10억, 20억 정도 보유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정말 돈이 많아서 그걸 보유하는 걸 비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금융 시장이다. 만약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1,000억을 현금으로 들고 왔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손으로 들고 올 수도 없겠지만 들고 온 사실이 알려진다면 나를 죽여서라도 가져갈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돈을 보유하는 비용이다.

 

그동안 나는 투자를 '낚시꾼'과 '선장', 이렇게 두 분류로 생각했다. 투자자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떠나야 하는 선장과 같다. 내가 돈을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 그렇게 떠나야 하니 살아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다. 항해에 비유하자면, 이제 나침반을 보고 GPS를 확인하고, 해류와 날씨를 보게 된다. 리스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투자가로서의 진짜 역할이다.

 

이전까지 내가 중고차 딜러만 봐왔다면, 이번에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가서 자동차 방주 현장을 본 느낌이었다. 다들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만 생각한다. 중고차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팔아야 돈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주식 투자를 하는데 만일에 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이 버핏이었다.

 

내가 보유하고 있을 때에도 주식의 가치가 점점 더 오르고, 그것을 모아 노아의 방주처럼 만들어서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비를 예측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 이번 버핏 프로젝트에 가서 느낀 소회다.

 

투자가의 일

 

결국 '투자가의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연결된다. 투자가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일에 담담하게 대응하는 사람이다. 2008년 10월에 나온 오바마와 맥케인의 대선 카툰을 보자.

The Kal's Cartoon (2008.10.4) ©The Economist

그해 9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고 11월 말, 12월 초 대선을 앞둔 시기였다. 두 대선 주자가 막판에 힘들게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이 코너만 돌면 끝이라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서 은행들이 무너지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때 미국 친구에게 어느 누구도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열심히 달리냐고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누가 당선이 되어도 이후에 금융 위기를 올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와 이 시기를 함께 달릴지 결정하는 것이 이번 대선이다."

이제까지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도 대통령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 누가 조금 더 나은 대통령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게는 투자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되었다. 만일 투자로 매우 큰돈을 번다면, 인생이 조금은 편해지겠지만 엄청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투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그 돈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돈이 내 손안에 있다면 어떨까. 사람에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을까. 투자는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에 함께 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종목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종목을 고를까. 이것이 버핏이 종목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애널리스트와 투자가

 

이제는 관중의 투자과 유권자의 투자로 나뉜다.

 

관중은 화려한 플레이를 원한다. 누군가 10배로 불릴 수 있는 종목을 추천해 준다고 광고를 하지만, 실제로 추천이 맞다면 그중 1명은 버핏보다 부자여야 한다. 왜냐하면 버핏의 연간 수익률은 23%를 거의 넘지 않기 때문이다. 51년 동안 평균적으로 19% 대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걸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주식을 사면 그것의 좋은 정보를 취하고 자기 좋은 대로 해석을 한다. 반면 결과가 그렇지 못하면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무언가 호재가 터지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마치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듯이. 그런데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니까 욕을 한다. 폭락하는 주식을 원망한다.

©황준호

미국 사람들은 사업가의 투자를 하는 것 같다. 2015년에 제작된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에는 투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두 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거품(Bubble)이 끼어 있는가
그리고 CDS*가 위험한가

이걸로 투자를 할지 말지 정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어서 나를 포함해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다.
* 신용부도 스와프 [Credit Default Swap): 부도가 발생하여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이다. - PUBLY

 

사업가의 투자는 다르다. 안 되는 것을 어떻게 되게 만들까 고민하고, 되게 만드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기에 맞는 정보를 구하고 돈을 넣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공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애널리스트와 투자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애널리스트는 10개에서 최소한 6-7개는 상승할 종목을 찍어야 한다. 하지만 투자가가 그럴 필요는 없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한 번 오를 때 전 재산을 넣으면 된다. 한 번 오를 수 있는 종목에 많은 비중을 투자하고, 그 비중을 나누는 것이 투자가의 가장 큰 역할이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가장 잘한 사람이 버핏이다. 버핏은 기존의 관점과 달랐고, 세계관이 달라서 지금까지 성공을 이뤘다. 이게 내가 전하는 모든 메시지이다. 이제부터 질문을 받겠다.

[2016 버크셔 해서웨이 - 워렌 버핏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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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7개의 질문과 대답들


매크로와 마이크로

Q1: 버핏처럼 큰 자산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글로벌 통화량이라든지 어떤 유동성을 고려하여 투자를 하는지 궁금하다. 기업 가치만 보고 다른 외부 요소를 무시하기에는 개인 투자자의 경우 그 흐름을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기업 가치 외의 거시적인 지표도 고려하나?

황준호(이하 황): 이번 주총에서 똑같은 질문이 나왔다. 매크로를 신경 안 쓰고 개개의 기업에만 주목하느냐는 내용이었다. 버핏은 자신이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기업 가치에 대한 정보를 얻고 판단을 한다고 대답했다. 대신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놓아 버린다고 했다. 물론 그가 매크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달러 숏 포지션(Short Position, 매도)으로 수입을 올린 적도, 은을 매수한 적도 있다.

 

버핏이 필립스 66(Phillips 66)이라는 미국 정유 회사를 산 것에 대해서도 누군가 비슷하게 물었다. 석유 가격이 오를 거라는 예측이 있었냐는 질문이었는데, 버핏의 대답은 "당시 필립스 66이 저렴해서 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수한 뒤 석유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그의 의사 결정에는 그 기업이 괜찮은지가 더 중요했다.

 

반대의 포지션도 있다. 가령 철도 회사는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 주유비가 하락해서 더 좋다. 결국 거시지표에 상관없이 살 때 사면된다고 판단하는 것이 버핏의 생각이다.

버핏의 투자 스타일

Q2: 버핏의 연간 수익률이 대략 20%라고 들었다. 이 정도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기 위한 버핏의 투자 스타일이 궁금하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조금씩 가져가는 스타일인지, 대충 분산시켜놓고 그중 몇 개가 대박 나면 전체 수익을 높이는 구조인지 알고 싶다.

황: 전체 종목의 개수를 묻는 것인가? 아니면 올인(All In)을 했는지 묻는 건가?

Q2: 가령 10년 동안 투자한다고 할 때, 조금씩 꾸준히 오를 종목에 투자하는 것인지 아니면 버핏도 애초에 10배 수익을 기대하고 들어갔지만 결과적으로 그중 몇 개만 수익이 많이 나서 전체가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지의 이야기다.

황: 버핏의 투자 초기 목표 수익률을 예로 들겠다. 1956년 당시 다우지수 상승률은 연간 5%였다. 버핏은 자신의 파트너와 계약할 때 수익률이 6%를 넘으면 초과 분의 수수료를 챙기는 식으로 설계했지만, 마음속 목표는 그보다 10%를 더 올리는 것이었다. 즉, 연간 목표 수익률이 16%였다.

 

그는 자신이 투자하는 기업의 현금 흐름이 11% 정도만 올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기업주를 샀는데, 결과적으로 그중 10배 이상 더 오르는 기업이 있었다.

 

그렇다면 투자 비중은 어떻게 관리했을까? 버핏이 초반에 보유한 기업은 5개 정도였다. 기업 인수와 매각이 몇 번 있었지만, 투자 부문의 12개 기업에는 돈을 잘 넣지 않았고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만 관심 종목으로 봤다.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때도 투자 자금은 전체의 40%를 넘지 않았다. 버핏의 파트너십이 가지고 있는 전체 투자 자금의 40%까지 한 종목에 넣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가이코(GEICO)* 주식을 살 때 버핏은 전 재산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 재산의 반 정도를 넣어 1976년 가이코 주식의 3분의 1을 매입했다.
* 미국 메릴랜드 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동차 전문 보험 회사이다. - PUBLY

필요한 변화를
읽어내는 노하우

Q3: 버핏의 경우 60년이 지난 지금도 가치투자를 하고 있다. 보통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스마트폰 사용도 익숙지 않을 텐데, 점점 빨리 변하는 세상과 시장 환경에서 버핏이 어떻게 주식 투자를 유지하는지 노하우가 궁금하다.

황: 주총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버핏은 변화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심심하고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실제로 버핏을 보니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버핏은 노동조합과 분쟁했을 때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와 싸울 때가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한다. 처음에는 동업자 찰리 멍거와 함께 힘겹게 싸웠다. 그런데 살로몬 브라더스와 싸울 때는 가차 없이 싸웠다. 결국 돈 한 푼도 안 주고 당시 살로몬 회장 존 굿프렌드(John Gutfreund) 회장을 내쫓았다. 정말 씨를 말려 버렸다.

 

버핏은 굉장히 잘 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빌 게이츠를 만났을 때와 찰리 멍거를 만났을 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냉정하게 다 내쳤다. 투자가 필립 피셔가 A(계속 볼 사람) 또는 F(다시 못 볼 사람)로 사람을 분류하는 법과 똑같다. 자신에게 필요한 변화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닌 것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령 스마트폰을 제대로 못 쓰는데 어떻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느냐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클럽에서 만나는 남자에 비유하겠다.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좋은 남자는 아니다.

 

버핏은 젊었을 때 글을 무척 많이 읽었다. 버크셔의 자료를 보면 이 회사가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숫자와 글자만 있다. 반면 모 화장품 기업의 IR 자료를 보자. 완전 꽃밭이다. 수많은 사진과 화려한 그래픽만 가득하다. 버핏은 숫자와 글자만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에 500 페이지 이상씩 읽음으로써 필요한 변화를 알아내는 능력을 갖춘 것 같다.

버크셔의 플롯과 현금

Q4: 두 가지 짧게 질문하겠다. 하나는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한 플롯(Float, 수입과 지출의 시차에서 생기는 여유 자금)을 띄우고 운용한 버크셔의 투자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투자의 큰 원동력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 플롯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다. 버핏도 주총에서 짧게 언급했다고 들었다. 그러면 결국 어느 정도의 현금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대량의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강점인 버크셔나 다른 가치 투자자 입장에서 시장이 점점 안 좋은 상황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두 번째는 저자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이다. 주총에 다녀오기 전과 후로 저자의 포트폴리오에 큰 변화가 있어 보인다. 누구에게나 실제 투자와는 무관한 심리적인 포트폴리오는 있지 않나? 포트폴리오에 대한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다.

황: 첫 번째 질문은 함께 주주총회에 다녀온 이기원님에게 도움을 청하겠다. 가차 없이 말해달라.

 

이기원(이하 이): 플롯을 이용한 투자가 이제 적자니까 버크셔도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으로 이해했다. 나도 똑같은 의문을 가졌다. 주총장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뮤니크리(Munich Re)와 스위스 리(Swiss Re)라는 재보험회사의 지분을 작년에 팔았다고 한다. 왜 팔았냐는 질문에 버핏이 대답하기를, "유럽 소재의 재보험회사뿐 아니라 스위스 유로도 팔았다. 마이너스 적립 때문에 유럽 재보험회사들의 수익이 좋지 않았고, 향후 10년 동안 재보험 비즈니스의 전망을 어둡게 본다."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버크셔 해서웨이는 사실 보험회사다. 이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낸 보험금 덕분이다. 소위 남의 꿀단지를 이용해서 투자를 하고 자기가 이익을 취하는 레버리지(Leverage) 투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방식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현재 자산운용사에서 채권 운영을 맡고 있고, 그중 보험 회사 자금을 주로 운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보험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즘 보험사들이 매우 고민이 많다는 걸 안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좀 더 엄격하게 바뀌면서 앞으로는 유동 자금을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 위험 자본에 대한 리스크 가중치가 더 높아지기 때문에 주식 투자가 힘들어졌다. 앞으로 재보험회사 자금을 이용한 주식 투자가 더 힘들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버크셔가 갖고 있는 제너럴리(General Re)라는 가장 큰 재보험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이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성장하기는 힘들겠다는 결론을 분명히 내렸다.

Q4: 더 이상 기존 전략으로는 자체 레버리지를 못하니까 뭔가 성장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는 애플 같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 아닌가? 버핏의 투자 스타일이 너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2016년 1월, 버크셔가 프리시젼캐스트파츠(PCC, Precision Castparts Corp.)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항공기 부품과 엔진 등을 만드는 회사인데 설비 투자 비용(CAPEX, Capital Expenditure)이 매우 많이 투입돼서 현금을 부어야 하는 회사다.

 

버핏이 원래 좋아하는 걸로 알려진 스타일은 설비 투자가 많이 필요 없으면서 현금만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그야말로 꿀단지 같은 회사다. 때문에 예전이라면 사지 않았을 회사를 왜 인수했냐고 어느 주주가 물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회사들은 더 이상 싸지 않다고 답했다. 이제는 버핏의 투자 방식을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고, 세상에 다 알려져서 정말 싸던 회사들이 제 값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핏 역시 똑똑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아서 이제는 기존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나. 그는 비싸더라도 이런 회사를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앞으로는 매우 월등한 수익을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장의 수준을 상회하는 수익을 분명히 내겠지만, 전처럼 시장 대비 +10%씩 수익을 내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주총에 다녀와서 든 생각이다.

 

황: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가보니 공식 자리뿐 아니라 바깥에 공개하지 않는 자리도 있었다. 그때 나온 의견 중 하나가 기후 변화 때문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보험료를 미리 올리라는 것이었다.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요구를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이전처럼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버크셔 해서웨이의 평균 수익률은 시장 수준을 능가(outperform)할 것 같다. 버크셔는 남들이 안 하거나 기피하는 보험에 뛰어들면서도 자신들이 받는 보험료가 지출되는 보험금보다 크면 결국에는 통할 수 있다고 해석해 왔다. 이 점이 기존 보험사와 달랐다. 그러면서 이들은 100만 불 이상의 보험금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네 보험사로 오라고 광고도 했다. 보험 비즈니스의 미래가 밝지는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버핏은 시장 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기업들을 좋아했다. 인플레이션을 강화할 수 있는 회사를 특히 좋아하는데 보험사 역시 위험을 인수하면서 그것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지속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저자의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있는가

두 번째 질문은 나의 심리적인 포트폴리오가 바뀐 것이 있냐는 내용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 마지막을 보면 일본 천주교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막부가 서양 과학의 힘을 깨닫고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것을 좋아했는데, 평등사상도 같이 들여오니까 천주교를 탄압했다. 2백 년이 넘는 탄압 아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교황이 마리아 상을 갖고 올 것이라며 천주교에 대한 믿음을 지켜갔다. 1800년대 후반에 어느 신부가 일본에 도착했더니 꾀죄죄한 사람 10명이 와서 마리아 상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 물음을 받은 신부는 이들이 매우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음을 느꼈다. 실제로 나중에 교황 바오로 2세가 정말 마리아 상을 들고 왔다고 한다. 이 과정의 믿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황준호

투자를 하면서 느낀 '성공적인 투자'의 기준은 성공적인 수익률과 짧은 시간이다. 시간이 짧을수록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에 내 평생에 걸쳐 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혹은 몇 세대 후에나 수익을 낼 것 같은 기업에 투자할 수 있을까? 버핏도 수명이 거의 다 했다. 물론 더 살다가 죽을 것이다, 아직 건강해 보였다.

 

버핏은 몇 세대를 보고 투자를 할까? 최소 1세대, 그 이상의 세대를 보고 투자를 할 것이다. 버핏은 팔 기업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음 세대 후에도 괜찮은 기업을 고르는 것이 요즘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 금요일,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부잣집 딸을 낳고 싶다. 세상이 너무 험해서 만일 딸을 낳는다면 부잣집 딸이어야 할 것 같다.

 

부자 또는 성공한 투자가가 되면 좋은 점이 많겠지만, 무엇보다 함께 갈 수 있는 길동무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쓴 사람이 세콰이어펀드(Sequoia Fund)에 가입하면서, "세콰이어펀드를 운용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버크셔에 처음 투자한 사람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결국 평생 함께 갈 사람을 가까이 두기 위해서.

 

그렇다면 내 세대가 아니라 그 다음다음 세대까지도 곁에 두고 싶은 기업이 있을까? 그때까지 살아남을 기업이 있을까?

 

1997년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을 때, 한국의 10대 기업 중 5개가 은행이었다. 코스피 상위에 있는 기업들도 은행이 대부분이었다. 20년 후인 지금에도 살아남은 기업을 그때 골랐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대박 투자가 될 수 있었다.

 

정말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기업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 이번 주총을 통해 바뀐 나의 패러다임이다. 그런 기업들을 내 박물관에 채워 넣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당장은 벌지 못하더라도 내 손녀는 부잣집 손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수주산업 전망

Q5: 나는 주로 건설사나 건설 관련 산업에서 딜(deal)을 많이 했다. 현실적인 질문을 하자면, 지금 건설업이나 해운업 등 수주 산업이 하향세다. 산업은행에서도 갖고 있는 지분을 매각하려고 하는데 그 산업들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황: 이번 주총에 가서 이야기했다. 다 구조 조정해야 한다. 과하게 해야 된다. 사실 투자가가 약삭빠르다. (웃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정치 논리대로 투자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자신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내린 결정도 결국은 좋지 않다.

 

사실 나는 세월호 사건을 보고 회사를 나오게 됐다. 사람들은 모두 세월호 선장이 나쁜 놈이라고 했다. 반면 투자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이 왜 못 뛰어내렸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면 좋을 것이다. 어떤 기업을 샀는데 10배 오르면 정말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를 수없이 가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투자라고 생각한다.

 

다시 세월호 사건으로 돌아가서, 왜 못 뛰어내렸을까? 선적이랑 비슷하다. 배가 기울고 있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나는데 그럴수록 희망적인 이야기에 부풀게 된다. 그 안에서 정보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심지어 밖에서 봐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느 쪽이 되든 결국 좋은 상황을 바랄 수 없다.

 

나는 결과적으로 취약 업종을 모두 구조 조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모두 죽이지 않는 것이 다수에게는 좋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욕을 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미국의 경우, 2001년 9.11 테러가 터지고 난 뒤, 모든 사람들이 비행기를 탈 때마다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몸수색받는 것을 동의했다. 엄청난 비용이 들고, 불편한데 더 큰 리스크를 막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동의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메르스를 막지 못했는가? 만일 한국으로 입국할 때 모든 사람이 시간을 들여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대부분 건설업이나 해운업의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좋다고 하면서도 불편을 감수하지는 못할 것이다. 수주 산업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이중적인 성향을 고려하여 베팅해야 할 것이다.

투자의 최우선 기준

Q6: 추가로 질문하겠다. 황준호님의 투자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예를 자신이 투자한 10개 중 8개가 -5%가 되어 손절하더라도 나머지 2개가 100% 수익이 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보자.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된 경우 손절은 어떻게 하는가?

황: 맞다. 그걸 견디기가 어렵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선적을 계속하라고 하니까 어렵다. 그런데 그걸 계속할 수 있는 사람만이 부자가 되는 것 같다. 나도 버티는 것이 어려워서 잘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5%씩 계속 잘랐을 때, 반토막 되려면 몇 번을 잘라야 될까. 0.95 곱하기 몇 승하면 0.5 이하가 될까를 보면 14번이다. 그러니까 14번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도 좋은 종목을 못 찾으면 차라리 투자를 접는 게 낫다. 그런데 14번을 선점했는데 그걸 만회할 종목을 찾는다면? 나는 그걸 찾았다. 그전에 터질 수도 있다. 그러면 투자에 남아도 될 것이다.

 

디즈니랜드에서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최우선 기준이 안전이다. 고객이 아무리 신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도 해당 놀이기구의 안전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직원이 그걸 멈출 수 있다. 아무런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것이 딱 하나 있는 진짜 기준이다.

 

잃지 않는 투자라고 하지 않는가? 기준이 하나만 있는 걸 의미한다. 잃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에 내가 벌 기회를 놓친다고 해서 스스로를 책망하면 안 된다. 그럴 수 있을 때, 역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왜 기준이 하나밖에 없냐고 많이 묻는다. 기준이 2개면 불가능하다. 매력적이면서 마음까지 착한 사람은 만날 수 없다. 하나만 정해야 한다. 나머지가 따라올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기준이 여러 가지면 판단할 수 없다. 대신 그 기준에 따른 결정을 책망하지 않아야 성공적인 결과를 볼 수 있다.

젊은이가 성공하려면
무엇을 좇아야 하는가

Q7: 버핏이 투자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투자 결정을 발표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후광 효과랄까? 결국 메커니즘으로 봤을 때, 버핏이 자신이 이걸 샀고, 주변에 추천하고 그 논리에 대해 사람들의 돈이 더 모여들어서 점점 돈을 잃을 수 없는 구조로 형성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핏의 투자 방법에 대해 개인이 배울 점은 많지만 정작 따라 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두 번째 질문은 만약 PUBLY에서 워렌 버핏과의 점심을 후원해준다고 한다면 가고 싶은지? 버핏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누구를 만나 무엇을 질문할지 궁금하다.

황: 두 번째 질문이 충격적이어서 첫 번째 질문을 잊어버렸다. 버핏의 투자를 개인들이 따라갈 수 있을까. 작년 주총 때 이런 질문이 있었단다. 젊은이가 성공하려면 무엇을 좇아야 하는가. 대답은 명성이었다.

 

사실 버핏은 평생 명성을 좇았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엄청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말을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된 결과를 매우 좋아한다. 명성을 따랐기 때문에 그는 백기사 역할을 잘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좋은 회사들을 싸게 샀다.

 

살로몬 브라더스도 그에게 백기사 요청을 하고 회장으로 추대할 때, 버핏의 명성을 샀다고 말한다. 명성을 무시할 수 없다. '버핏이 샀으니까 살로몬은 살아날 거야', '가이코는 살아날 거야' 등의 믿음은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그렇다면 개인이 따라 할 수 있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도 명성을 좇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더 갖고 싶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그걸 좇다 보면 성공도 따라오지 않을까가 결론이다.

만약 PUBLY에서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후원해준다면

올해 버핏과의 점심 식사 경매에 낙찰된 금액이 340만 달러가 넘었다. 40억 원 정도라고 된다.

 

만약 PUBLY가 내게 40억 원을 지원해준다면, 혹은 내가 그만큼 펀딩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버핏을 만나기 위해 그 돈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사회를 위해 좋게 쓰고 싶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1,000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그만큼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다른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중에는 불우 이웃을 돕는 취지라든지 기타 후원을 위한 것들도 많은데, 왜 내가 버핏을 만나러 가는 것에 참여했을까? 내가 정말 남의 돈을 받고 주총에 가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내게 돈을 준 사람들, 이번 프로젝트의 주주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그동안 나 혼자 읽어온 좋은 글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쓰려고 했다.

 

버핏도 처음에는 돈이 많았다. 아니, 자기 혼자 사업을 해도 될 정도로 충분한 돈이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하지만 그는 남들의 돈을 받아서 진짜 사냥개에게 쫓기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돈은 100달러만 넣었다. 100달러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핵심이다. 내가 10억에서 시작해 5억이 된다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수 있지만, 만일 1억에서 시작해서 10억까지 올랐다가 다시 5억이 된다면 견딜만할 것이다. 버핏은 스스로를 위해 그런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떤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기대했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아직 분양되지 않은 내 프로젝트에 청약해준 분들이다. 투자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내가 버핏에 대해서 조금 더 열심히 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셨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아는 것에 큰 만족감을 얻었다.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앞으로도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고 한다. 물론 유료이다. (웃음) 보다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한번 더 자리를 만들어보겠다. (끝)
* Banner Image ©Matt Haney / The World-Hera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