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를 시작하며

- 들어가며 -

이 글은 2016년 10월 1일부터 2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월드 메이커 페어(World Maker Faire)에 다녀온 이경선님이 쓴 자기 소개글입니다. 이경선 저자는 10월 6일부터 11월 25일까지 PUBLY와 메이커가 세상을 바꾼다-월드 메이커 페어 @뉴욕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월드 메이커 페어 소개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얼리 버드 상품' 구매는 프로젝트 오픈 일주일 후인 13일 오후 7시까지만 진행되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PUBLY.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을 나와 연구자가 되는 동안 우리의 꿈은 차츰 작아진다. 원대하던 꿈은 작은 실험실에 머물고, 연구 논문에 머물고, 인류의 미래보다는 나 자신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나날이 흐릿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소중한 꿈을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 적정기술과 지속가능한 세상」*, 143쪽, 이경선 저 

* 이경선님이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SEWB)에서 실무자로 활동하던 기간 만난 적정기술 연구자의 이야기와 우리나라 적정기술의 현주소를 정리한 책(2014년 환경부, 한국과학창의재단 우수도서로 선정)입니다. 적정기술이란 '현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하여,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개발ㆍ운용되는 기술'을 말합니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SEWB)는 지구촌 사회의 평화와 인류 공존을 위하여 빈곤국가의 삶의 질 개선,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경험 나눔에 대한 요청, 과학기술 전문가들 사이의 나눔가치 확산이라는 맥락에서 2009년에 창립된 적정기술 전문가 그룹입니다 - PUBLY.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다시 과학을 둘러싼 세계로

저는 과학을 둘러싼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 과학 연구자'입니다. 한때는 '과학의 발전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기여하겠다', 라는 꿈을 꿨습니다. 하지만 입시, 학점, 취직을 거치면서 그 꿈은 사라지고 전공을 살린 채 엔지니어 회사의 구성원으로 살았습니다.

 

'대기업'의 삶은 안정적이었습니다. 매달 월급이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서는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칭찬과 부러움이 가득한 이야기를 했고, 동기들의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사무실에서는 직급에 따라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4년 후에 대리님 자리에, 그리고 10년 후에는 과장님 자리에 앉게 될텐데, 그 자리가 그리고 그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생각했습니다. 상사 분들은 존경할만한 분들이셨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저에게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고등학교 시절 반 저는 다양한 직업 중에 '과학자'라는 장래희망을 매년 교실 뒷벽에 적어 넣는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슈퍼 옥수수를 만든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종자를 받아 심어보기도 하고, 학교 축제 때면 고장 난 선풍기에서 분리한 모터에 구멍을 낸 깡통을 달아 솜사탕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겠다며 여름방학을 내내 실험실에서 보내기도 하고,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내겠다며 온갖 황당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었고, 과학자의 꿈을 따라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습니다. 이 꿈이 얼마나 순진했던 일인지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과학자들은 수 많은 과학자들의 실패 사이에 소수의 성공한 사례였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전문화, 고도화, 세분화 된 과학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작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개인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있는 내 모습은 괜찮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 들었던 한 강의에서 연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마음 속에 뜨거운 불 같은 열정이 있고, 그 열정을 따라 살고 있다는 이야기. 대학 시절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열정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지, 라고 다짐했습니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슴이 뛰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뒀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과학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뉴욕주립대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과학이 있다면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회사에서의 시간,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새로운 공장을 만드는 것이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지만, 그 공장이 꼭 필요한 것일까.

 

이 공장이 만들어지면, 또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될까. 수질 오염이나 대기 오염은 괜찮을까.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화학 제품들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사용 후 쓰레기들은 또 어디로 갈까.이산화탄소 배출은 괜찮을까. 에너지 문제는 괜찮을까...'

고민했고 결론내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삶이 괜찮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을 찾아 헤맸습니다. 꼭 교과서에 나올 만한 대단한 발견은 아니더라도,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무조건 더 빠르게 더 크게 만드는 과학기술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삶을 그리고 사회를 만드는 과학기술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찾은 것 중의 하나가 '적정 기술'이었습니다. 적정 기술은 이름 그대로 그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환경에 적절한 기술을 말합니다. 꼭 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작은 아이디어로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그런 기술이지요.


적정 기술을 직접 개발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 마음을 뛰게 하는 일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직접 무언가를 개발하지 않더라도, 글로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적정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 기술자 분들을 만나 인터뷰하여 완성한 책이 「국경없는 과학기술자들: 적정기술과 지속가능한 세상」입니다. 책을 쓰면서 다양한,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을 만났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은퇴하신 명예교수님까지, 멀리 아프리카에 주재하는 NGO 활동가분에서 대기업의 적정기술 연구회까지, 나이, 지역, 분야, 직업 상관없는 많은 적정기술 연구자들을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 서울의 상하수도 시설에 대해 연구하셨던 교수님은 이제 안데스 산맥에서 그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하셨습니다. 정수기 안의 필터를 연구하는 연구소장님은 더욱 저렴한 가격에 전기가 없어도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휴대용 정수 필터를 만들고자 여러가지 실험을 거듭하고 계셨습니다.

메이커를 찾아서

적정기술에 대해 연구하면서 '메이커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메이커'이지요. 적정기술 연구자들도 메이커의 하나였습니다. 아니, 저 자신도 메이커였습니다.

 

과학 상자를 만지작거리던 어린 시절, 솜사탕 기계를 만들던 고등학교 시절, 창의적 공학 설계라는 수업에서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쓰레기통을 만들겠다고 설계를 하던 대학교 시절, 그리고 매일 아침 오늘은 뭘 만들어 먹을까 요리하는 오늘날까지.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메이커였습니다.

 

메이커 운동을 들여다보자 더 많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픈 소스로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저렴한 하드웨어로 이를 실제로 만들어 볼 수 있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와 형성되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서, 사회가 점점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일반인과 전문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허물어졌습니다. 메이커는 일반인인 동시에 전문가였고,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였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아직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살게 될 다음 세대를 위해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주듯 메이커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시대는 미래에 어떤 과학의 시대로 기억될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어쩌면 SNS의 시대일 수도 있고, AI의 시대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곧, 화성에 인간이 착륙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메이커 운동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가 '메이커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머리 속으로만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을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늘날이겠지요. 저는 이 메이커 운동을 더 알고 싶어 뉴욕에서 열리는 월드 메이커 페어를 찾았고, PUBLY를 통해 제가 보고 느끼고 배운 바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게 제가 메이커로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일이니까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과학을 하겠다는 어린 시절 저의 꿈은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거대 과학을 하기 보다는 작은 과학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안정적인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직접 과학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메이커가 세상을 바꾼다-월드 메이커 페어 @뉴욕]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메이커 축제 중 하나, 메이커 운동의 과거와 오늘, 내일이 펼쳐지는 월드 메이커 페어(World Maker Faire) 리포트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