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소개합니다 - 롤링다이스 제현주 디렉터

'경계의 확장, 전략가의 시선 - 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 오픈을 앞두고, 롤링다이스 제현주 디렉터와 PUBLY 김안나 CCO가 지난 9월 10일부터 서너 차례에 걸쳐 나눈 필담(筆談)을 소개합니다. 각자가 지나온 업의 여정을 통해 왜 프랑크푸르트에 가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얻어올 것인지 살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먼저 현재 롤링다이스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제현주 님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 PUBLY

 

 

 

본인을 소개하신다면?

 

저는 설립한 지 5년째 접어든 롤링다이스(RollingDice; '주사위를 굴린다'라는 의미)라는 협동조합에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롤링다이스의 시작이 된 사업이자, 여전히 가장 핵심인 사업은 전자책 출판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다양한 포맷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체이고, 다만 전자책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또 주로 사용하는 포맷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올해 롤링다이스의 사업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 축은 전자책을 중심으로 하는 출판사업이고, 다른 한 축은 서울혁신파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비:파크 사업이에요.

 

비:파크 사업은 "책의 99가지 쓰임새를 전하는 곳"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습니다. 책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발신하는 일종의 플랫폼 사업인데요, 이 사업을 통해 다양한 포맷의 콘텐츠를 실험해보고 있어요.

 

오프라인의 강연이나 대담, 세미나 등에서부터 이메일을 통해 전달하는 책 소개 서비스, 일상 속 기술에 대한 대화로 시작해 책 이야기로 진입하는 팟캐스트 방송 '일상기술연구소'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제작하면서, 서로 다른 포맷을 동시에 다루는 감각을 익히는 중입니다.

롤링다이스가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의 야외 도서관 © 임영준

롤링다이스는 12명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인데, 조합원 모두가 전업으로 일을 하지 않아요. 직원처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조합원들도 있고, 다른 일을 병행하며 그때그때 유연하게 결합해 일하는 조합원들도 있습니다.

 

롤링다이스가 다양한 포맷의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것도 다양한 경험이나 이력, 활동 기반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롤링다이스의 일 외에도 다른 일들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출판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최근에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총 8권의 역서를 펴냈습니다.)

롤링다이스가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의 야외 도서관 © 임영준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간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저는 출판업과 다양한 역할로 만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저자로 또 번역가로 일하고, 롤링다이스의 일원으로서는 기획자이자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비:파크 일을 하면서는 책의 마케팅에 대해 조금은 다른 각도로 경험을 해본 셈이고요. 그러니까 아주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출판의 여러 기능을 이래저래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독특한 상황에 있습니다.

 

이른바 '본진'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출판인들을 만나면 늘 배우는 게 많지만, 어쩌다 보니 저는 '야매'로 출판업 언저리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출판업의 일을 하게 된 것이 특별한 계획에 의한 것은 아니었어요.

 

대학 졸업 후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요. 4년 가까이 맥킨지(McKinsey)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잠깐 크레딧스위스(Credit Suisse)라는 투자은행에서 일한 뒤에 칼라일(Carlyle)에서 바이아웃* 분야 투자자로 7년을 일했어요.
* 바이아웃(Buyout):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업가치를 높여 차익을 얻고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의 투자를 말한다. - PUBLY


모두 어떤 산업을 외부자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가늠하는 종류의 일이죠. 그렇게 10년이 좀 넘게 일을 했으니 '큰 그림(Big Picture)'이 일단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는 훈련을 오래 받아온 셈입니다.

 

산업에 대해서든 개별 기업에 대해서든 실사(Due Diligence)에 들어가려면, 일단 큰 그림을 잡고 그다음에 시장과 사업 운영의 세부적 국면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는 식이죠.

그런데 출판업에 대해서는
정확히 정반대의 지점에서
출발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애초에 구체적 계획을 갖고 시작했던 게 아니라서, '어쩌다 보니' - 이게 요즘 제 모토가 되어 버린 말 같기도 한데 - 그때그때 보이는 기회들에 그냥 몸을 던지며 일해 왔습니다.

 

그렇게 5년 가까이를 지내보니 잡다한 필드 지식과 관점들이 쌓였는데, 작년 가을에 <책의 실험 - 챕터제로(Chapter Zero)>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그 지식과 관점들을 '큰 그림' 안에 종합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그러고 보니 작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었던 게 제가 딱 <챕터제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때였군요.

〈챕터제로(Chapter Zero)〉는 2015년 롤링다이스에서 진행했던 연작 포럼으로 (1) 에디터십, (2) 마케팅, (3) 옆 동네의 콘텐츠 실험, (4) eBook, (5) 유통, (6) 작은 출판의 협력 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패널들을 초청해 대담을 나누는 행사였다. 진행된 대담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고, 현재 eBook으로 볼 수 있다.

롤링다이스가 개최했던 연작 포럼 &#12296;책의 실험 - 챕터제로(Chapter Zero)&#12297; 행사 전경 &#169; 롤링다이스

그런 '종합'의 욕구를 마음에만 묻어둔 채 또 정신없이 달린 게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를 통해 출판업 언저리에서 일했던 5년의 경험에 과거 투자자/컨설턴트로 일했던 시각을 다시 끌어오는 방식으로 접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이 산업에 대한 실사의 첫 단계에서 해야 할 숙제들을 뒤늦게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무엇에 중점을 두고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보고 오실 생각이신가요?

 

제가 '본진'과 '야매'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제가 그리고 싶은 큰 그림은 그런 '야매'의 정체성(웃음)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출판업 전체를 포괄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경계에서의 시도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어디까지가 경계인지,
경계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보기 위한 큰 그림인 셈이죠.

이 그림을 통해 교차하는 인사이트를 얻기를 바라고 있어요. 교차라 함은, 예를 들자면, 책 산업에서 역시 중국 시장은 크게 각광받고 있는 시장인데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의 디지털화, 온라인화는 이미 공고한 전통적 출판산업 기반이 있는 선진 시장들과 다른 관점 아래 해석되거든요.

 

그런 관점을 큰 그림 아래서 보았을 때,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가 직접적인 인사이트라면, "저 관점을 나의 시장, 나의 비즈니스로 가져오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교차하는 인사이트인 거죠.

 

저는 그런 교차하는 인사이트를 많이 가져오고 싶고, 그러려면 주관적 관점에서 편집된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경계가 새로 그려지는 곳이 반드시 디지털이나 모바일, 온라인과의 접점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아마존 이후 큰 타격을 입었던 독립서점이 2-3년 전부터 새롭게 귀환하며, 매출 면에서나 서점의 수에서나 출판 시장 전체보다 훨씬 빠른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립서점이 다시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확인되고 있기도 하죠. 그 방식이 미국과는 좀 다르게 해석되긴 하지만요.)

 

이런 현상을 통해 서점업의 경계 역시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죠.

 

투자자/컨설턴트의 방법론으로, 동시에 '야매' 출판인의 영혼을 넣어, 실용적인 큰 그림, 그에 더불어 몇 가지의 구체적이고 좋은 사례(Best Practices)를 찾아오고 싶어요.

 

특히 늘 집중되는 영미권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 시장과 좀 더 근접한 비교가 될 수 있는 시장들의 좋은 사례나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특히 GDP 수준 및 출판 시장의 규모, 해외 시장에 자국 언어 그대로 콘텐츠를 출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유사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시장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가설을 갖고 있어요. 이번 비즈니스클럽에는 흥미롭게도 이탈리아를 커버하는 세션이 두 개나 되더군요.

• CEO와의 대담: Massimo Turchetta (Rizzoli Libri) & Claude de Saint Vincent (Média-Participations)
• 밀라노의 기적, 이탈리아 스타일의 베스트셀러 마케팅

 

나라별로 보자면,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중국 시장은 여러모로 특수한 면이 많지만, 디지털화와 책 시장의 성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접근과 전략이 발견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 상위 10개 출판그룹에 작년부터 이름을 올린 차이나 사우스 퍼블리싱(China South Publishing)의 회장이 등장하는 세션은 놓칠 수가 없겠죠.

• 차이나 사우스 퍼블리싱 회장 Shoguang Gong과의 대담

 

책 산업의 디지털화, 온라인화에 대한 세션들은 당연히 저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특히 '책 산업의 디지털화'를 단순한 전자책(e-book) 시장 밖으로 넓혀가고 있는 시도들은 언제나 관심이 깊습니다. 저는 특히 고객의 읽기 습관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려는 시도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아래 세 세션을 꼭 챙겨볼 생각입니다.

• 성공의 비밀? 데이터로 고객을 이해하기
• 소셜 리딩 - 함께 읽기가 낫다
• 독자 데이터 분석이 오늘날의 출판업자에게 줄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가기 위한 준비차 여러 자료를 읽으며 미리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많은 출판인에게 북페어는 말 그대로 '도서전'이고, 실제로 많은 타이틀이 거래되는 비즈니스와 상거래의 현장인데요. 단기적으로 앞으로 2-3년의 '책' 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이죠.

 

그렇지만 저에게는 이번 북페어가 출판업이라는 하나의 숲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또 주변의 다른 숲들과 어떻게 만나고 교차하는지 볼 수 있는 공부의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고 생각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