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캐피탈의 밝은 미래'에 이어

얼마 전 무척 가깝게 지내던 VC(Venture Capital) 업계 동료 한 명이 VC를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직의 이유를 묻지는 않았고 축하만 전했습니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 VC(Venture Capitalist)가 되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VC로 성공하시고 좋은 곳으로 영전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VC 업(業)의 답을 찾지 못한 채 번아웃 되어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 회사로서의 벤처캐피탈도 마찬가지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매년 십 여 개의 신생 VC 회사들이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겠다며 도전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의 숫자는 훨씬 적습니다.

 

지난 글에서 한국 벤처캐피탈의 밝은 미래에 대해서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VC 개인 심사역은 물론 회사도 현실에서 성장률을 높이고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요? 이번에는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숙제1. 꾸준한 투자 수익 내기

벤처캐피탈 업계가 돈을 매우 잘 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VC가 특정 기업에 투자해서 수십 배 수익이 났다는 소식이 종종 경제지에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 건은 전체 업계를 통틀어 연간 수 천 건의 투자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VC가 실제 회수하는 이익도 전체 투자 수익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VC는 주로 펀드(조합)를 운영하여 영업수익을 얻습니다. 영업수익은 관리보수와 성과보수로 구분됩니다. 관리보수는 VC가 펀드 출자자(Limited Partners)에게 펀드 관리의 대가로 받는 수익, 일종의 고정 매출입니다.

 

VC는 관리보수액으로 펀드 결성액, 또는 누적 투자액의 연간 약 2%를 받습니다. 2015년말 기준, 국내 VC*의 투자조합 결성액이 약 14조원이니 VC 전체의 관리보수 영업수익은 약 2천억 원 중반대로 추정됩니다. 이 전체 영업수익을 2015년 말 등록된 VC 수, 115개로 나누어보면 대략 1개사 당 20억 원 정도의 연간 고정 매출액을 얻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해당 통계는 한국 벤처캐피탈협회에 등록된 창업투자회사에 국한된 통계입니다. 따라서, 외국계 VC 등 한국의 법률 상 창업투자회사로 등록되지 않은 VC는 제외된 통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펀드 결성금액 기준 상위 10개사가
업계 전체 결성금액 중 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소형, 신생 벤처캐피탈은 관리보수, 즉 고정 매출액만으로는 판매관리비 등 고정 비용 정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VC가 회사로서 계속적 이익 발생, 이익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성과보수 수익 창출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성과보수는 보통 투자 수익에서 원금 및 기준 수익, 즉 IRR(Internal Rate of Return) 5~8%를 제외한 초과투자수익 중 일부를 VC가 수취하는 것입니다. 투자성과에 따른 변동 영업수익이지만 VC의 자기자본 대비 높은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과보수는 VC 심사역 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 심사역 개인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제1금융권이나 대기업 직원 정도의 연봉을 받으며 고정수입, 즉 기본 연봉이 아주 높지 않습니다. 대신 투자 후 해당 펀드가 성과보수를 받으면 그 중 일부를 투자 성과급으로 받습니다. 

 

따라서 성과보수 수익은 회사 VC와 개인 VC에게 모두 중요합니다. 성과보수를 통해 회사는 이익의 성장과 이를 통한 자기자본의 확대를 꾀하고, 개인에게는 동기부여를 위한 중요한 재원이 됩니다. 하지만 성과보수 수익을 얻을 만큼 꾸준히 좋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과보수를 받기 위해서는 기준 수익률을 초과 달성해야 하는데, 8년짜리 펀드가 기준수익률 8%를 초과 해야 한다면 단순 수익률로는 펀드 전체가 원금대비 약 2배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VC는 투자 성과도 잘 낼까?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종사자 분들 중에서는 유명한 벤처캐피탈이거나 유명한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이 성과가 좋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투자 시장에서 유명한, 상대적으로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기업에 투자한 이후 부쩍 만나는 분들께서 투자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해주시는 주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유명한 기업에 투자한 것이고 좋은 투자 성과가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VC의 유명세 또는 영향력과 투자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의 투자 성과는 몇 개의 업계에 잘 알려진 투자 건으로 착시 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며 개인 심사역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투자가 최종 회수 되지 않은 채
후속 투자 유치를 통해
비상장 시장에서의 기업가치가
마크업(Mark Up)되었다는 것, 
우수한 투자성과를 달성하고 있다는 말은 
반만 진실입니다.
 

요즘처럼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수명주기가 짧아지고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높은 시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투자자의 영향력이 좋은 투자성과에 기여한다는 가설 및 그 기여도의 크기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해도 단계가 복잡하고 개별 단계의 전환 여부나 영향력이 불확실한 사업 효과입니다.

 

영향력을 가진 좋은 브랜드(Good-brand)의 VC가 되기 이전에 투자업 본연에 좀더 많은 노력과 재원을 할애하여 좋은 투자 성과를 내야 합니다. 안정적 투자 성과를 내서 회사의 이익을 성장시키고, 수익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VC 회사로서 중요하며 개별 심사역에게도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야 포트폴리오 회사와 장기적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고 투자시장의 다른 참여자들도 해당 포트폴리오기업을 더욱 존중하게 됩니다.

 

모든 VC들이 스스로 좋은 파트너임을 자처하지만 지속 가능한 사업성은 좋은 파트너의 기본 요건입니다. 수익이 안정적이지 못한 VC는 투자 철학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개인 심사역의 경우 잦은 이직으로 투자한 포트폴리오들에게 VC 담당자가 계속 바뀌는 불편을 끼칠 수 있습니다. 투자성과가 안정적이지 못한 VC 회사는 지속적으로 펀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해당 VC 회사가 투자한 포트폴리오에 대해서 시장 내 참여자들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익 성과가 부족한 VC 회사는 개별 심사역들의 턴오버가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숙제2. 투자수익을 창출하는 VC만의 경쟁력 갖기

다시 한 번 정리하면, 꾸준하게 투자 수익을 내는 것이 VC 회사, 개인심사역 모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꾸준한 투자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VC 시장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비슷한 스테이지 또는 비슷한 섹터를 보는 VC들 간에는 협력도 있고 경쟁도 있습니다. VC가 아니지만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기관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투자기관들 간의 경쟁에 따라 개별 VC가 꾸준히 좋은 투자 성과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 전 어떤 VC 대표님께서 한 행사를 통해 '한국의 VC들이 프리IPO(Pre-IPO)*시장에만 집중한다'고 지적하신 내용을 기사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VC들이 프리IPO시장에만 집중하는 것이 왜 문제일까요? 저는 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VC들이 운영하는 개별 펀드들마다 운영 목적이 다르지만 최소한의 운영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좋은 투자 건이 프리IPO건이라고 해서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충분한 사업 경쟁력을 갖춘 좋은 기업이라면 투자 단계와 성격에 크게 구애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IPO(Initial Public Offering), 즉 기업공개를 하기 전에 미리 투자자에게 일정 자금을 유치받는 것입니다. - PUBLY.

 

제가 한국 VC들이
프리IPO시장에만 집중하는 걸 우려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해당 투자들의 상당수가
펀드매니저로서의 최소한의 전문성,
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여된
투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비판적으로 보면, 한국의 VC들이 즐겨한다는 프리IPO 투자는 비상장-상장 시장의 가격 배수, 특히 PER(Price Earning Ratio) 차이, IPO 공모시장의 비이성적 오버슈팅 현상* 등에 기초한 트레이딩 성격인 경우가 많습니다. 

* 공모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IPO시기의 기업의 대규모 IR, IPO시점의 높은 주가 변동성 등에 근거하여 IPO기업의 주가가 기존 상장된 기업들과의 기업가치 비교 대비 비합리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VC적 관점으로 우수한 기업을 찾는데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IPO가 가시화된 기업들을 찾아 유사 상장사보다 적당히 낮은 PER(Price Earning Ratio)에만 거래되면 어떤 기업인지 심도 있는 분석과 검증 없이* 투자하는, 게다가 이러한 투자가 VC 투자 수익에서 가장 기여도 높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VC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 많은 경우, 기업 탐방 한 번 없이 기존에 경쟁사 VC가 투자한 보고서와 최근 재무제표 정도가 선택의 자료가 됩니다.

 

이렇게 VC들이 프리IPO 투자에만 의존하게 되면 한국 VC 산업의 경쟁력이 커지기 어렵습니다. 이미 비상장 벤처기업 투자는 VC외에도 많은 시장 참여자가 있습니다. 기관으로는 자문사와 증권사 등이 진입하였으며 개인투자자들도 엔젤 투자, 크라우드 펀딩 등의 형태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IPO 투자가 투자수익의 주요 재원이 된다면, VC는 다른 투자시장 참여자들과 구분되는 경쟁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프리IPO 시장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

 

투자 증권의 종류, 투자 단계 등에만 특화된 트레이딩에 의존하는 투자 회사는 결코 뿌리 깊은 나무,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될 수 없습니다. 2000년 초반에 한국 창업투자회사들이 자사 심사역과 코스닥의 젊은 오너 및 임원들의 친분을 바탕으로 이뤄진 코스닥 투자에 집중했던 사례, 2000년 후반에는 상장사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등 원금 보장형 메자닌 투자에 집중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시 회사들은 투자수익을 벌었지만 투자 회사로서의 차별적 경쟁력, 전문성, 투자 성과를 지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IPO 투자로 돈을 버니까 좋은 것, 그리고 펀드 출자자들께 수익을 드리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투자가 아니냐겠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VC로서의 경쟁력, 투자회사로서의 차별적 경쟁우위를 고려한다면 다를 수 있습니다.

 

벤처캐피탈이 수익을 많이 내고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회사로서의 경쟁력(수익의 질 향상)을 갖추기 위한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VC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달합니다. 이는 결국 VC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어떤 투자를 해야 할 것이냐는 장기적인 고민과 연결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업투자의 속성은 상장 시장 투자나, VC 투자나, 사모주식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 투자나 근본적으로는 모두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VC 투자와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가치 투자*와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 워렌 버핏의 "잘 모르는 기업인 기술주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에 근거해서 가치 투자와 벤처투자를 상극으로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가치투자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치투자는 이미 충분한 이익, 영업현금흐름이 발생하는 기업 중에 사업 경쟁력, 제품 차별성, 시장의 성장, 시장구조 상 독과점성 등 이익을 지속적으로 성장, 유지할 수 있다고 예상될 때 이러한 기업을 일종의 '투자 대상'으로 삼고 최종적으로는 가치와 가격의 차이를 '의사 결정 요소'로 보는 형태의 투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벤처투자는 현재 충분한 이익, 영업현금흐름이 발생하기 전이나 몇 가지 추론할 근거들을 바탕으로 충분히 타당한 추론 하에 투자가능 미래 기간 내에 충분한 이익, 영업현금흐름이 발생되는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봅니다. 역시 최종적인 의사 결정 요소는 가격과 가치의 차이입니다. 또 한가지 VC는 사모주식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의 일종이므로 사모투자적인 접근, 협상, 구조, 사후관리를 통해 유통시장의 가치투자자와는 다른 이익추정 및 가격-가치 의사결정 장치가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썼습니다만 이렇게 투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현실적 제약 조건도 많고 시장과 업계의 분위기 속에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VC나 심사역 개인이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숙제, VC 조직문화

요약해 보겠습니다. VC가 투자철학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또 장기적으로 좋은 인력들과 좋은 포트폴리오들과 협력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꾸준한 투자 수익으로 VC로서의 기업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기적으로 성장한 VC가 되기 위해서는 트레이딩 성격의 투자나 호황기의 증권시장 투자 유형에서 벗어나 기업과 시장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투자 수익 창출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VC의 투자 수익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투자 수익이 좋다고 VC가 꼭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업계 수위권의 수익을 내는 VC들도 내부 갈등이 있는 경우도 많고, 우수한 인력들이 집단 이탈하기도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VC의 조직문제와 문화, 개별 심사역들의 심리 등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글과 다음 글은 VC 내부에서 문제이다 보니 VC가 아닌 분들께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VC이신 분들이 직접 읽으시기에는 저와 생각 차이가 있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너그러이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