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에 대한 증언

9월 9일 발행될 Women at KAIST 인터뷰 콘텐츠를 위해 학생을 만나면 만날수록 학교와 교수님들에 대한 믿기 어려운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단순히 쉽게 들어오기 힘든 톱스쿨을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아니었어요. 특히 전산학부는요,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학과와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무슨 명당에 터를 잡았기에 이렇게 능력 있고, 수평적이면서, 여성친화적인 걸까요.

 

KAIST는 '군대문화'로 대표되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아니라 수평적인 랩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우리 교수님은 화내는 법을 못 배우신 성인군자", "KAIST는 천국"이라는 워딩이 나올 정도였지요. 하지만 KAIST의 시스템과 분위기에 홀딱 반했으면서도 한편으로 놀랐던 건, 커리큘럼에 아직 여성주의 프로그램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여성학에 기반한 성평등 수업 말이죠.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의 유일한 여성 교원인 이현주 교수님의 MIT 학부생 시절 회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합니다.  

"MIT 학부생 당시 여성학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미 성평등적인 분위기가 학내외에 자연스럽게 확산돼 있었고,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성차별적인 언행이 금지돼,

여성인 나조차도 여성학의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는데도."

MIT는 학생들에게 여성학 수업을 듣도록 권장한 것이었습니다. 성숙한 교양인의 자질로서 말입니다. KAIST에는 지난해에야 성평등 관련 수업이 한 과목 정도 개설됐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생물학적 남성이 90%를 점유하는 공간이어서 그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었겠지요.

KAIST의 여성친화적인 목소리(1)

단 한 과목이라도 여성학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된 건, KAIST의 첫 공식적 페미니스트 단체

 

마고는 원자핵공학과의 남학생이 시작한 혼성 스터디 '마고'와 수학과/물리학과 중심의 남학생 독서모임 '꼴페미(반어적으로 지은 이름이랍니다. 놀라지 마세요.)'가 물리적, 화학적으로 결합한 단체입니다. 남녀 비율은 반반 정도인데, 두 단체의 리더가 모두 남학생들이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놀랍고 기쁘고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의문도 일부 있었어요. '아, 페미니즘마저 남학생이 주도하는 건가.' 이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나 '맨스플레인'이 돼버리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여학생의 경우 애초에 숫자가 적기도 한 데다 학문적 생존 자체가 워낙 터프한 환경이다 보니, 다른 길을 돌아볼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와 다르게 남학생들은 절대 숫자가 많은 가운데,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운동하는 친구도 있고, 사회를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노는 친구도 있는 거였어요. 그 중에 어떤 친구는 드디어 페미니즘을 발견한 거고요. 이토록 다양한 남학생들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만나는 남자들도 절대 숫자가 많으니 이런 이도 있고, 저런 이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나쁜 남자, 좋은 남자, 이상한 남자 등등. 그런데 사회에 진출한 여자들은 절대 숫자가 적다 보니 특정 성향만 도드라져 보이는 겁니다. 남자보다 더 심하게 마초화되거나 아니면 자리를 독점하는 여왕벌이 되거나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거나 하는 말도 그런 데서 나오는 거겠죠. 

 

마고는 창립총회 이후 지금까지 세 번의 스터디를 했는데요, KAIST 학생들 특유의 학술적인 탐구자세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공식적인 학교생활이 끝나는 밤 9시에 모여 새벽 1-2시까지 커리큘럼을 읽고 토론을 합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 사고들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이론이 없어서 답답했다고 해요.

 

이 친구들은 페미니즘을 하나의 언어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론의 한계라든지 성별의 제약으로 인한 공감능력의 부족을 스스로들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학내 '대나무숲(익명 게시판)' 분위기가 의외로 논쟁적이어서 아직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이 학생들의 리더인 임예건 학생만 얼굴과 신분을 노출하고 있고요, 회원은 메일과 기존 회원 추천을 통해 비공개로 모집 중입니다. 저는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로고와 이미지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이곳의 여학생들은 아직 조용히 암약하고 있는데요, 스터디 단계를 마치고 행동 단계로 접어들면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리라 기대합니다.

 

임예건 학생과 나눈 이야기는 Women at KAIST 펀딩에 참여하신 분들께 9월 초 발행하는 유료 콘텐츠를 통해 더 자세히 전달해드리겠습니다. 

KAIST의 여성친화적인 목소리(2)

다음에 소개해 드릴 친구들은 여학생으로 구성된 축구팀입니다. 'FC 하이힐스'

ⓒFC 하이힐스

여학생 운동회는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점심 먹고 모여서 저녁 7시까지 배드민턴, 팔씨름, 달리기에 피구, 농구, 축구까지 쉬지 않고 운동했습니다. "퍽", "툭", "악" 이런 '자연스러운' 소리들이 최신식 류근철스포츠콤플렉스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은 진짜 스포츠였습니다.

 

위스퍼 생리대의 해외 캠페인 중에 '여자처럼'이란 게 있었어요. 성인 남성과 남자 아이들에게, 그리고 성인 여성들에게 "여자처럼 달리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면 손목을 꺾고 하늘하늘 달리는둥마는둥 하는 시늉을 하지요. 그런데 여자 아이들에게 같은 주문을 하니 달랐어요. 여자 아이들은 전력을 다해 죽을둥살둥 달립니다.

 

'여자처럼'이라는 사회적 주문에 오염되기 전의 아이들은, 자연 상태의 진짜 여자들은 그랬던 거예요. 누군가의 편견을 의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것이 진짜 여자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FC 하이힐스의 친구들은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그 정신에 맞닿아 있는 여자들입니다.

 

지난 번 소개해드린 아일린 폴락의 책 「평행우주 속의 소녀」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물리학을 포기하기로 한 내 결정에는 너무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서 나는 좋아하는 테니스를 하면서 왜 게임에서 이기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지 스스로의 심리상태까지도 점검해야 했다...

나는 많은 이과 여학생들이 스포츠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은 스포츠가 좌절의 분출구로 작용하기도 하고 대학원이나 박사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고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포츠는 도전적인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힘을 길러주고, 남학생들의 거칠고 무례한 행동을 참을 수 있게 하며, 온몸이 땀에 젖어 지저분해 보여도 그게 남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36쪽)

이 책을 제게 읽어보라고 권했던 이가 바로 이 축구팀의 원년 멤버였습니다. 화학과 박지영 박사님이에요. 하이힐을 신고 축구공을 차고 있는 FC 하이힐스의 로고를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박 박사님과 그의 단짝 물리학과 김세정 박사님은 꼬꼬마 연구자 시절부터 박사학위를 마친 지금까지 수년 동안을 FC 하이힐스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이 조직은 리더가 없는 공동운영자 체제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언제 모여서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 어떻게 팀을 나누고 평가할 것인지를 정하는 모든 과정들이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집니다. 저는 평등한 회원들 사이에서 어떤 결정이 그렇게 빨리 척척 내려지는 건 처음 봤어요.

 

학교 본부에서 동아리로 등록하고 지원금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다는데요, 팀의 자율성을 해칠까봐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여간내기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 후원은 어떻게 받았느냐고요? 제가 간신히 설득하고 빌어서요. 박지영 박사님이 도안한 로고를 정비하고 티셔츠만 겨우 만들어 드렸고요. 심지어 밥값 술값은 다 따로 내더라고요.

 

FC 하이힐스와 이과 전공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역시 김세정, 박지영 박사님의 페어 인터뷰를 통해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KAIST의 여성친화적인 목소리(3)

ⓒLadyBug

이 친구들의 모토는 "Code Wild, Run Loud, Debug Hard"입니다. 페미니즘의 모토인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를 패러디한 문장입니다. 이 이름과 모토와 자신만만한 표정의 무당벌레 아가씨가 들어간 로고를 정하는 데에도 전산학과 여교수님들과 여학생들의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이 있었습니다. 

 

KAIST에 있는 6개월 동안 전산학과의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아아, 이런 곳이라면 코드를 단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KAIST 전산학과는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단 한 명만 계셔도 일생의 축복이 될 텐데, 이곳에는 너무 많은 분들이 계셨어요. 서로 다른 삶을 사시는, 각각 성별도 세대도 다른, 그러나 여성친화적인 지향은 같은, 좋은 선생님들은 어린 여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일단 '군사문화'로 대변되는 이해할 수 없는 위계질서가 없었습니다. '미국식 랩'으로 표현되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가 있었고요. 성격이 좀 모나거나 별나거나 남성이거나 혹은 여성이거나 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실력만을 물었습니다.

 

프로젝트 인터뷰이 중 한 분이자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를 넘어 '아시아 인터넷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전길남 KAIST 전산학과 명예교수님은 말씀하셨어요.

"하버드나 MIT나 스탠포드를 갈 수도 있었던 천재들,

그 학생들에게 KAIST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이냐,

나는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최소한 그 비슷한 환경이었어요.

공부할 수 있는 조건 말입니다.

 

내가 내 학생들에게 물었던 것도

오직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어요.

남자냐 여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기 KAIST의 빛나는 성과들이 다 여기서 나왔던 겁니다. 인터넷 문화의 그 수많은 별들이요.

 

또한, 전산학과의 선생님들은 남성, 여성을 따져 기회를 제한하지 않고, 학생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십니다. 여기에는 전길남 교수님이 지향하는 형평주의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회만 주면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내게는 또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미국인과 아시아인이 있다면 아시아인,

백인과 흑인이 있다면 흑인,

남성과 여성이 있다면

여성에게 기회를 주었죠.

 

KAIST의 여학생들은 탁월했습니다."

KAIST의 10%

형평주의가 무엇일까요. 실력을 갖추거나 발휘할 환경이 아니라면 받침대의 높이를 높이거나 트랙의 길이를 줄여주는 것. 절대적인 빈곤이나 전쟁 뿐만 아니라, 실력을 쌓았더라도 결혼이나 출산이나 양육이나 질병 등의 이유로 잠시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시간적인 보조를 해주며 기다려주는 게 형평입니다.

 

저는 생물학적 성비가 절대적으로 비슷한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평등을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여성 할당을 늘리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다행히 현 강성모 KAIST 총장님은 '10:10:10 이니셔티브', 외국인 교원과 외국인 학생의 비율, 그리고 여성 교원의 비율을 최소 10퍼센트는 채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물론 할당제가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져 싫다는 여성도 많습니다. 그런 제도의 도움 없이 실력만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하시는 분들 말씀이에요. 특히나 톱 레벨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실력이라는 건,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겁니다. 완전히 절대적인 개인의 능력만으로 지능이나 재능이나 학력을 성취하고 획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흔히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환경의 문제, 정책이나 제도 역시 환경에 속하고요, 그 개입이 생각보다 힘이 세더군요.

 

KAIST에 한 발 늦게 당도한 페미니즘이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반 인터뷰'의 속사정

KAIST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던 처음 단계에선 '올 피메일 인터뷰(All Female Interview)'를 구상했습니다. 인터뷰어도 (생물학적) 여자, 인터뷰이도 (생물학적) 여자, 그러면 정말 신날 것 같았어요. 요즘은 어지간한 이공계 컨퍼런스에 가도 이런 위민 세션(Women Session)이 구성됩니다. 잘만 기획하면, 양적으로도 세를 과시하고, 질적으로도 능력을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위민 세션에선 여성 연구자들만의 발표와 여학생 시상식 같은 코너도 만들고요, 강력한 기업 스폰서를 붙여 일부러 화려한 점심을 먹기도 합니다. 이런 자리에선 여자들과 여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남자들에게 멋진 네트워크를 제공합니다. 그러다보니 더 주목받고, 파워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로봇계에서는 지난 2015년 시애틀에서 열린 ICRA 학회 운영위원회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됐었어요. 일종의 '충격요법'에 해당하는 이벤트였는데, 행사를 둘러싸고 일부 남성 공학자들의 반대도 있었답니다.

 

ICRA 2015 경우뿐 아니라, 여자들만의 세션이나 여자들만의 위원회에 대한 의견은 반반입니다. 남성 연구자들 중 비판도, 다분히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자들만 모여서 뭐하자는 거냐."

"학술적 가치가 있는 거냐."

여성 연구자들의 의견도 갈립니다.

"일부러 고립을 자초할 필요가 있는가."

"수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세력화해야 한다."

ICRA 학회의 운영위원회원들은 "학회가 성공하면 본전이고, 실패하면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 것이니 정말 잘하자"고 각오를 다졌다고 합니다.

행사 관계자들은 올 피메일 세션을 구성할 때 적어도 실력에 대한 얘기는 안 듣고 싶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여자들을 섭외하는 데 공을 들이곤 합니다. 저 역시도

 

박혜원 MIT 미디어랩 박사님은 걸스로봇 런칭파티를 통해 그 경험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도 여성 위원들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당신 방에 계속 붙여놓았을 만큼요. "로봇계에서 백년에 한 번 있는 기회"였다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그 전에는 로봇계의 여성의식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해서 여성 커미티를 구성할 생각조차 못했고요, 그 이후에는 이런 충격요법을 쓰기 살짝 민망한 시절이 될 거라서랍니다.

 

그런데 이번 KAIST 인터뷰는 현실적으로 모두 여성으로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KAIST 이공계 학과의 정식 패컬티로 등록된 여성 교원은 사십여 분이 계셨는데요, 로봇계를 중심으로 안팎의 여러 분께 추천을 받고, 학과의 중복을 피하고, 개인적인 취향까지 반영해 절반 정도의 선생님들께 접촉해 보았습니다.

 

개인사를 거의 전부 노출해야 하는 제 질문의 의도와 이 인터뷰가 공적으로 발화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제 깜냥껏 최선을 다해 설명을 드렸지요. 사적인 대화로는 얼마든지 솔직해질 수 있어도, 그것이 인터뷰 형태로 정리돼 나가는 순간 공적인 것이 되니까요.

 

일반적인 형태의 인터뷰라면 충분히, 너무나 기꺼이 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었지만, 다양한 삶의 양태를 가진 여성으로서, 또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자신과 주변을 노출하는 데 짐작하실 수 있는 많은 우려와 애로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요. 많이들 조심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공적인 무대에 올라 여학생들과 동료 여성들을 위해 발언해 주시라 청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물론 머리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 그 성향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고, 톱스쿨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실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고 엄청난 빚입니다. 특히나 한국 여성으로서는 말입니다. 그 분들이 어느 단계를 지나시면 반드시 그 빚을 사회에 갚으셔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그건 일종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성으로서, 인터뷰어로서, 작가로서, 운동가로서 그 의무를 함께 갚으시자고 청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지향하는 건,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며,
각자의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주는 것'
이기도 합니다.

더 좋은 인터뷰를 쓰고 싶은 제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서나 더 많은 여성 리더들을 만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정말 시간에 쫓겨 단 한두 시간도 할애하기 어려운 형편이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학과의 여성 교원이 대체로 한두 분뿐인 데다, 그 분들이 여성으로서, 교원으로서, 또는 여성 교원으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소화하기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보였지요. 이 역시 개인사적으로 시간이 지나거나 학과의 여성이 수적으로 다수가 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는 일이라 여기며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대상을 탐구하던 와중에 여학생들이 너무나 믿고 따르고 지지하는 남성 교수님들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제게 "우리 교수님이 얼마나 훌륭하신데, 왜 우리 랩에는 오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여학생도 있었어요.

 

그 남자 교수님들이 도대체 분들이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정말 이런남자들도 있더군요. 저는 이걸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수 인터뷰이의 반은 남자가 됐습니다. 

 

인터뷰이 중 학생들을 섭외하는 과정 역시 여교수님과 남교수님들의 문제와 동일한 지점에서 애로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학생들에게는 교수/학생이라는 위계질서와 속한 집단의 압력이 있고, 여학생들에게는 더더욱 앞으로의 인생행로에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는 발언을 하라고 종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먼저 페미니즘의 깃발을 내건 남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 젊은 친구들에게도 남자 교수님에게 받았던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런 남자가 됐는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이들에게서 어떤 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이런 현실적 제약과 의외의 긍정적인 변수들을 만나면서 올 피메일이 아니라 여성들과 여성친화적인 남성들의 연대, 좀 더 나아가면 남성스러운 여성들과 여성스러운 여성들과 여성스러운 남성들과 남성스러운 남성들의 연대, 더 더 나아가면 성별을 둘러싼 이분법과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자연스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어떤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진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의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봤습니다. 저는 그걸 제 인터뷰 프로젝트에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발 늦게 당도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마침내 때가 무르익은 페미니즘을 봅니다. 이 시절, 이 때 제가 여기, KAIST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이 행운을, 이 빚을, 인터뷰에서, 칼럼에서, 강연에서, 회의장에서 쓰고 또 쓰고, 말하고 또 말하는 것으로 갚아나겠습니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생각과 다르더라도,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 배너 이미지는 본문 속 Always #LikeAGirl 영상 일부 화면입니다. Banner Image ©Always

 

[Women at KAIST]
걸스로봇 이진주 대표의 본격 인터뷰 시리즈

 

과학하는 여자 6명과 남자 6명, KAIST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 12명의 삶을 '여성'이란 키워드로 인터뷰한 콘텐츠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