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에서

뉴욕의 유명 광고 대행사 Barton F. Graf 직원을 한국에서 만났다. 내가 소속된 슈퍼셀의 광고를 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장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요즘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는 어디야? 너희 회사 빼고."

그는 요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꾸는 젊은 광고인들은 대형 에이전시보다 Barton F. Graf와 같은 100명 이하 규모의 부티크 에이전시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회사는 '드로가5(Droga5)'란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밤이 끝날 무렵 내 머릿속에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 광고대행사가 대단한 곳이라는 인상만 남았다.

Droga5는 칸 국제광고제에서 2년 연속 '올해의 독립 광고대행사'에 선정되었다. ©Droga5

4개월 뒤, 칸에서

그리고 4개월 뒤, 칸에서 예정대로 점심을 12시에 먹고 1시부터 열리는 워크샵을 참관할 예정이었다. 우연히 일정표에서 드로가5를 발견했고, 충동적으로 점심을 포기하고 세션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Lumiere Theater 입구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 있었다.

Session: From Underdogs to Game-Changers
Hosted by Droga5 and Under Armour
Speakers: Kevin Plank (CEO and Founder at Under Armour), David Droga (Creative Chairman and Founder at Droga5), Ann-Christine Diaz (Creativity Editor at Advertising Age)

현재 미국에서 나이키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언더아머(Under Armour)다. 올해 미국 프로농구 NBA의 최고 스타 스테픈 커리(Stephen Curry)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그는 마이클 조던의 나이키, 샤킬 오닐의 리복도 아닌 언더아머를 택했다.

 

언더아머는 기능성 의류라는 틈새시장에서 출발해, 미식축구를 석권하고 최근 스테픈 커리를 모델로 세워 농구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선전하는 농구화는 2015년 매출이 1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언더아머는 작년부터 드로가5와 함께 여성들을 타깃으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번 세션에는 언더아머의 창업자이자 CEO 케빈 플랭크(Kevin Plank)와 드로가 5의 창업자 데이비드 드로가(David Droga)가 함께 나왔다.

언더아머의 광고들

먼저 이들이 만든 광고를 살펴보자.

 

 

Rule Yourself 시리즈. 가장 유명한 광고다. 골프의 조던 스피츠, 농구의 스테픈 커리,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 3명 모두 언더독(underdog)*을 표방한다. 언더독은 언더아머의 브랜드 정체성과 일치한다.

*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낮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다른 Rule Yourself 시리즈. 은퇴를 선언했던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가 모델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은 광고다. 꾸준한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카피도 정말 적절하다.

'어둠 속에서 수행하는 일이
결국 그대를 빛으로 이끌 것이다.
(It's what you do in the dark,
that puts you in the light)'

언더아머의 광고는 영미권 국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5년 아디다스를 넘어 미국 제2의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고, 올해도 성장세는 지속되고 있다. 성공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번 세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 뛰어난 광고주가 뛰어난 대행사를 만든다.

대부분 데이비드 드로가의 이름에 끌려 세션에 참석했을 텐데, 정작 주목받은 것은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창업가이자 경영자인 그는 마케팅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창업 초기인 1990년대에는 마케팅 없이 제품만 팔았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다. 미식축구 선수와 팀에 직접 영업하는 방식이었다. 제품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잘 팔렸다.

1999년 처음으로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 '리플레이스먼트(The Replacement)' 등 미식축구 관련 영화로부터 제품 간접 광고(product placement; PPL) 제안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25,000달러를 지불하고 처음으로 ESPN 잡지에 반 페이지 광고를 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려 8,000통의 구매 전화가 왔고, 그 뒤 3주 동안 800,000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첫 번째 광고 후 갑자기 '마케팅 천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일한 광고를 한번 더 내보냈다. 첫 광고에서 비용 대비 30배의 이익을 거두었으니 이 방식이 또 통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참담했다. 딱 35통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첫 번째 광고에 반응한 8,000명은 이미 언더아머 브랜드의 팬이었던 것이다. 단지 마케팅을 하지 않아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이미 고객이었다. 그는 나머지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케팅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깨닫고, 그때부터 언더아머만의 '관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브랜드의 비전과 철학,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고객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에게 광고는 브랜드의 관점을 다양하게 전달할 방법을 찾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브랜드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한편 언더아머는 그 후로도 마케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광고대행사와 일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부 마케팅 팀의 역량에 비해 대행사가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나쁜 광고주였다고 고백했다. 광고 촬영장까지 직접 가서 모든 것을 점검하고 항상 끝까지 모든 것을 챙겼다.

 

최근 데이비드 드로가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그것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얼마 전 진행한 캠페인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광고 제작 막바지 단계, 내부 팀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불만을 가진 사람이 제법 많았고 결국 케빈까지 이 문제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런데 데이비드의 생각은 어떤가요?

2. 훌륭한 브랜드를 알아보는 대행사

이제 까다로운 케빈 플랭크의 신뢰를 얻은 데이비드 드로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이들이 같이 일하기 시작한 건 불과 2년 전인 2014년이다. 처음 만난 것은 8년 전, 당시 드로가5는 20명 남짓의 신진 대행사였고 언더아머는 이미 규모가 큰 브랜드였다. 비록 계약까지 성사시키진 못했지만 데이비드 드로가는 케빈 플랭크와 그때부터 종종 소식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 후 드로가5는 경쟁 브랜드 푸마와 일을 했고 제법 큰 성과를 이뤘다. 'After Hours Athelete' 캠페인의 성공으로 드로가5는 푸마의 글로벌 전체 대행도 맡게 되었지만, 언더아머로부터 작은 제안을 받자마자 푸마의 일을 포기했다.

 

데이비드 드로가는 궁극적으로 브랜드 자체와 그 브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브랜드의 미션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대행사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역사에 남는 캠페인을 만드는 것이고, 언더아머가 그럴 수 있는 브랜드라고 판단했다.

 

데이비드 드로가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건 대행사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뢰가 대행사의 성과를 극대화한다.

광고주에게 신뢰를 받으면, 정말 끝까지 해볼 수밖에 없다. 나도 경쟁적인 사람이다. 이기고 싶다.

드로가5는 푸마의 글로벌 대행 업무 대신 언더아머의 마이너한 여성 브랜드를 택했다. 언더아머 입장에서 크게 잃을 것은 없었다. 그들은 그때까지 외부 에이전시를 거의 쓰지 않고 내부 자원으로 마케팅을 했다. 하지만 사업이 계속 늘어나면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아마 여성 브랜드 프로젝트가 외부 파트너를 테스트할 최적의 기회였을 것이다.

 

이들의 합작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 살펴보자.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다음 두 광고는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와 모델 지젤 번천(Gisele Bündchen)이 등장하며, 'I WILL WHAT I WANT'라는 태그 라인으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미국 발레리나다. 불리한 신체 조건으로 발레 학원에서도 낙방을 거듭했으나, 결국 모든 것을 극복하고 2015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 ABT)에 입단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수석 발레리나로 선발되었다.

 

 

유명 모델 지젤 번천은 이제는 전성기를 훌쩍 넘겼다. 그녀가 트레이닝하는 모습 뒤에는 네티즌의 비아냥과 간간히 보이는 칭찬의 메시지가 투사된다. 메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훈련하는 멋진 모습을 담았다.

 

'I WILL WHAT I WANT' 캠페인은 대성공을 거뒀고, 케빈 플랭크는 대부분의 공을 데이비드 드로가에게 돌렸다.

3. 광고주와 대행사의 파트너십

데이비드 드로가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칸에서 다 같이 축하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불꽃놀이처럼 잠깐만 '환상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한 가지에 매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데이비드 드로가는 결국 옳았다. 그는 때를 기다렸고 결국 나이키의 아성을 최초로 위협하는 언더아머라는 브랜드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케빈 플랭크는 드로가5가 파트너로 참여함으로써 본인들의 관점이 더 넓어졌다고 표현했다. 그는 비로소 각자의 역할이 있음을 깨달았고, 그 후로 자사의 마케팅이 더욱 훌륭해졌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이 코멘트에 주목했다. 플랭크가 언급한 것처럼 일부 광고주는 광고대행사를 신뢰하지 못해 자신들의 시야가 넓어질 기회를 갖지 못한다. 반대로 어떤 광고주는 자사의 브랜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대행사에 거의 모든 마케팅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광고대행사와 광고주의 이야기가 언제나 아름답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언더아머는 드로가5를 만나기 전까지 다른 대행사와 일하는 것에 계속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대행사가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할을 그냥 맡길 수는 없다
그것은 누군가 가져가 주는 것이다

광고 대본 한 줄 한 줄까지 확인하는 것도 부족해 촬영장까지 따라가던 케빈 플랭크. 그의 마음을 놓이게 한 것은 언더아머라는 브랜드에 대한 충분한 이해였고, 데이비드 드로가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20년 전 나이키 창업주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위든+케네디(Wieden+Kennedy)의 댄 위든(Dan Wieden)의 전설적인 조합처럼, 스포츠 마케팅의 역사를 새로 만들어나갈 언더아머와 드로가5의 파트너십을 더욱 기대해본다.

* Banner Images ©Under Armour

 

[Cannes Lions 2016 - 칸 국제광고제를 가다]
언더아머와 Droga5의 이야기를 비롯한 칸 광고제 소식은 PUBLY에서 발행한 '2016 칸 광고제: Interim 리포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