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자선·임팩트투자 환경 소개에 앞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벤처캐피탈리스트(Venture Capitalist, 이하 VC)를 만나게 되는데, 이 분들과 인사를 나눌 때 제일 먼저 듣는 이야기 가운데 열에 아홉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물론 저희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크지만, 이 말은 '돈에는 크게 관심 없고 대의 명분만 생각한다'는 것처럼 들려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벤처자선 기관은 기부가 아니라
'VC의 방식을 활용한 자선',
'임팩트를 추구하는 투자'를
하는 곳입니다.

어느 정도의 투자금 손실을 감내할 수는 있지만, 재무적 수익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은 없을 겁니다. 따라서, 이럴 때는 이렇게 답변을 드립니다.

 

"투자로 인해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성장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에 많은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VC와 마찬가지로 벤처자선/임팩트투자 기관 또한 이러한 정신에 공감하며, 각자 집중하는 산업 영역과 투자 대상의 성장 단계 또는 투자금의 성격(초기, 중기, Pre-IPO, M&A 등)을 일반 투자자처럼 미리 정합니다."

                                                  

선 긋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지요. 이에 어느 정도 수긍하신 분들은 두 번째 질문을 주십니다.

 

"어떤 기업들이 있나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오면 답변드리기가 훨씬 쉽습니다.

 

사실 과거만 해도 이렇다 할 벤처자선/임팩트투자 기관도 없었죠. 반면 지금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쏘카, 강연 콘텐츠를 생산 및 유통하는 마이크임팩트와 같이 VC로부터 후속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이 여러 곳 존재합니다.

 

참고로 국내 벤처자선/임팩트투자 기관 모임인 한국임팩트투자네트워크와 스타트업 관련 정보 공유 및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지난 5월 소셜벤처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임팩트투자네트워크 회원사로부터 지분투자를 유치한 기업 48곳을 11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구분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여 돈 벌 수 없는 투자 대상은 아닌가 보네요. 그럼 당신이 일하고 있는 벤처자선/임팩트투자 기관이 투자한 기업 가운데 우리에게 추천할만한 곳도 있나요?"

 

이제 이 세 번째 질문을 해주신다면, 매우 들뜬 마음으로 이 기업, 저 기업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식 자랑하는 부모의 심정이 이렇겠지요?

 

서론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벤처자선/임팩트투자 기관들의 주요 특징, 산업·사회문제 해결의 영역 및 투자 대상의 성장 단계를 소개해 드릴 계획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간략하게 어떤 기관이 있는지만 언급하기로 하고 7월 22일에 발행될 최종 리포트에 각 기관이 투자한 기업과 함께 짝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제가 속한 조직은 언급하지 않으시죠?"

 

이런 피드백을 주시는 분이 있다면, 추가로 조사를 해서라도 리포트에 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 건데 저자 세 사람(박선민, 서창훈, 유승제)들은 모든 기관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벤처자선/임팩트투자 업계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관찰하고 생각한 부분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관련 조직의 담당자분들께서 글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심각한 오류가 있어 지적해주신다면 물론 수정하겠습니다.

 

기관들을 소개하는 순서에는 아무 의미를 담지 않았습니다.

 

*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통해서만 그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데, 참고로 '기업'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영리뿐 아니라 비영리조직도 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인증 받지는 않았으나 존재 목적을 사회문제 해결에 두는 기업을 일컬어 소셜벤처 또는 사회적 기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1. 벤처자선 기관

한국의 대표적인 벤처자선 기관으로는 아산나눔재단, 동그라미재단, C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이들 기관이 벤처자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약 5년 정도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며 도움 받고 있는 기업 또는 비영리조직들로 하여금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분야입니다.

2. 임팩트투자 기관

임팩트투자 기관의 사업은 벤처자선 보다 일찍, 2008년 sopoong을 시작으로 여러 곳이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몇 군데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의 창업자 이재웅님이 설립한 sopoong

-지마켓 CFO였던 이덕준님이 설립한 D3*

-저자들의 이전 미리보기 글, 2016 AVPN의 한국인에도 나온 Crevisse와 행복나눔재단

-카이스트경영대학의 출자를 통해 설립된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가치 기반의 삶을 모토로 갖고 있는 HGI

-사회혁신과 개발협력 영역에서 활동하는 MYSC

 

위와 같은 투자자들이 활발하게 기업들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VC의 시각으로 이들은 Seed에서 Early stage의 투자자들이고, Series A를 받기 이전 Bridge 투자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보셔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Series A 단계의 투자를 집행했거나 투자조합이 결성된 사례는 없습니다.

 

기업의 성장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적 수익만을 추구하는 투자자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게 될 경우 사회적 가치 추구의 미션이 흔들린다(Mission drift)는 일부 우려의 시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분들은 Series A 임팩트투자 펀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사업모델이 자리잡은 이후에는 재무적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로부터 후속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기업의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Series A 단계의 임팩트투자 펀드가 만들어져, 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추구에 더 큰 지지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 D3에 대해서는 강보라 펠로우님께서 임팩트 투자의 선한 이중성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PUBLY

3. 투자조합 운용 기관

임팩트투자 기관들이 본 계정으로 투자를 하는 곳이라 한다면, 미래에셋벤처투자와 포스코기술투자지주,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와 같이 모태펀드의 출자를 받아 사회적기업/소셜벤처 투자조합을 운용하는 기관들도 있습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총 4개의 투자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초기 기관들은 '기업이 상환할 것을 전제로 하는 전환사채 방식의 투자'를 활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투자자가 위험을 감내하는 보통주/우선주 투자가 아닌, 융자와 다를 것이 없어 아쉽다'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운용사(를 비롯한 통상적인 VC) 관점에서의 사회적기업은 상장·인수합병을 통한 높은 수익의 실현 가능성(Upside potential)은 현저히 낮은 반면 투자금을 잃게 될 위험(Downside risk)만 높은 투자 대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보통주/우선주 투자가 불가능했고, 그나마 펀드의 일부를 고 위험 고 수익의 벤처 기업에 투자해야만 전체 펀드의 수익률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펀드라 하더라도 운용사 입장에서는 기대수익률을 하회하는 이력(Track record)를 남길 순 없었을 테니깐요.

 

하지만 2015년 결성된 소셜벤처 투자조합의 운용사인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는 위험을 적극 부담하고 보통주/우선주 방식의 투자를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됩니다.

4. 채권 발행 기관

사회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은 VC분들께 얘기드리면 엄청 재미있어 하면서도 놀라는 분야입니다.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달성해야 할 성과 목표를 미리 정해놓고, 기관이 이를 달성할 경우 수익을 제공합니다. 정부/지자체 또는 자선 기관이 실패 위험을 보증해 줌으로써 재무적 수익만을 추구하는 투자자의 참여가 가능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지난 4월에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 최초로 서울시가 경계선지능 및 경증지적장애아동 자립 지원 사업을 SIB1호로 추진'하며, 총괄운영기관은 팬임팩트코리아가 맡았습니다. 팬임팩트코리아는 임팩트투자와 공공정책 혁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지난 2015년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한 법인입니다. 

5. 부동산 투자 기관

앞서 임팩트투자 기관으로 소개했던 HGI는 부동산 개발과 공간 활용 컨설팅 사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혁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성수동을 중심으로 오피스 이외 공동 주거 공간도 건축하여 유관 비영리기관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임팩트투자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투자 기관이 부동산으로도 투자 자산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성수동 지역만 대상으로 하나, 다른 지역으로도 모델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HGI의 투자가 자포스 창업자인 토니 셰이의 다운타운프로젝트만큼 유명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참고로, 온라인 신발 배송업체인 자포스의 창업자 토지 셰이는 '라스베가스의 낙후된 지역으로 본사 사무실을 옮기며 주변에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 도시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6. 융자 기관

벤처자선/임팩트투자 기관보다 앞서, 낮은 금리로 기업의 성장 자금을 제공했던 융자 기관들이 있습니다.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함께일하는재단·사회연대은행,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한국사회투자가 대표적입니다.

 

임팩트투자를 받아 성장한 기업 중에서는 초기에 이들 기관으로부터 소규모 자금을 융자 받아 사업을 키워간 곳도 있고, 기업 금융 수준으로 큰 금액을 조달해 지역 확장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리스크를 분담하는 지분 투자자들이 융자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주목 받게 되는 것 같지만, 융자 기관들로 인해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도 묵묵히 융자 업무를 하고 계실 담당자 분들께 업계의 동료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마지막 연재 예고

2016 AVPN 컨퍼런스 in HK - 자선과 투자의 만남 미리보기 글 세 번째에서는 번외로 한국의 벤처자선과 임팩트투자 환경을 간략하게 소개해드렸습니다. 굳이 '번외'라 한 이유는 2016 AVPN 컨퍼런스와는 크게 관련 짓지 않고 한국의 현황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는 그간 배경설명 없이 써왔던 '자선'이라는 용어를 '기부'와 비교하고, '기업사회공헌'은 '기업의 사회적책임'과 비교해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