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티만 열차에서 만난 로열 패밀리

"브로(Bro), 저 사람들은 왕족인 게 분명해."


옆 좌석에 앉은 비크람이 귀에다 속닥거렸습니다. 슬쩍 반대편 뒷좌석에 눈길을 주니 과연 로열패밀리의 아우라가 대번에 느껴졌습니다. 나란히 좌석에 근엄히 앉은 부자(父子)는 이슬람식 모자를 쓰고 황금빛이 감도는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었어요. 아버지는 왼쪽 어깨에 네모난 문양이 수놓아진 휘장을 두르고 있었죠.

 

"품위 있어(decent). 럭셔리하군. 쟤네 진짜 왕족이야?" "그런 것 같아. 나는 저 아들이 신고 있는 구두 갖고 싶다." 앞 코가 뾰족한 갈색 가죽 구두였는데, 확실히 눈에 띌 정도로 고급스러웠습니다.

인도에서 새로 생긴 '가장 빠른 기차'의 '가장 비싼 객실'에 앉았습니다. '킹스 패밀리인 것 같아!' 비크람의 성화에 고개를 돌렸더니 반대편 뒷좌석에 이슬람식 모자와 '쉬에르바니'라 불리는 이슬람 복장을 잘 차린 인도 부자(父子)가 눈에 들었습니다. 그 앞에는 유명하진 않은 정치인 같대요.

뉴델리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 가는 기차 안이었어요. 195km정도 떨어진 뉴델리와 아그라 역을 한 번도 쉬지 않고 100분에 주파하는 고속 기차가 얼마 전 새로 생겼습니다. 이름은 '가티만(Gatimaan)' 열차입니다. 인도에서 제일 빠른 기차라고 방송·신문에서 며칠째 호들갑이긴 한데, 그래 봤자 시속 160km죠. 그래도 보통 3시간 걸리던 도착 시각을 획기적으로 줄인 겁니다.

 

"주말에 할 일도 없이 심심한 데 한 번 타볼까?"란 내 제안을 비크람이 덥썩 물었습니다. 금요일 예매를 시도했는데 토요일은 만석이었어요. 일요일마저도 돌아오는 편을 구하지 못해 일단 오전에 아그라로 출발하는 편도만 끊었습니다. 버스를 타든, 일반 기차를 타든 돌아오는 편은 어떻게 되겠지라는 심산이었지요. 그 덕에 일요일 오전 6시부터 부산을 떨었네요. 오전 8시 30분 기차를 타야 했거든요.

"오오, 바로 옆자리엔 아마 주의회 의원인 것 같아. 역시 부자들만 타는 열차인 것 같아."

비크람이 중얼거립니다. 한 사람당 요금 1500루피(2만6000원)를 내는 최고급 객실 칸이었습니다. 일반 객실 가격은 딱 절반이더군요. 비행기 일등석에 탄 것 마냥 극진한 대접을 해주더군요. 우선 영어 신문을 주고요. 생수병을 줍니다. 주스가 담긴 팩을 주고, 알맞게 따뜻한 온도의 흰 수건을 건네죠. 이후 "난 베지(Non Veg)? 아니면 베지(Veg)?"라고 상냥하게 물은 뒤 기내식과 똑같이 생긴 식사를 내어 줍니다.


주지한 대로 난 '하드코어 난 베지'인 저는 오믈렛을 아주 순식간에 해치웠죠. 그런데 원래 채식주의자였다가 최근 '난 베지(Non Veg)'로 돌아선 비크람이 "베지(Veg) 메뉴로 주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너 왜 고기 안 먹냐?"

"요즘 힌두 나브라트리(Navratri)란 절기여서 9일동안 채식만 먹어야 해. 지키는 사람도 있고 안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물론 난 지키고 있지. 지난 금요일에 아미트가 술 마시고 후까(물담배) 하면서 파티하자고 했는데 이것 때문에 거절했어."

 

비크람은 탄압에서 나 홀로 살아남아 진리를 지키는 고독한 밀교(密敎) 수행자인 것 마냥 으스댔습니다. 가증스럽더군요. 고급 기차 칸에 처음 타본 나일론 수행자는 살살 내 심기를 건들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외국인인데다 저널리스트니까, 저 아저씨와 아들이랑 얘기 좀 나눠봐."


"내가 왜."


"그냥, 재밌잖아.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왕족인지 아닌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아 왜, 귀찮아. 니가 해."

 

"제발, 난 인도 사람이라 말 걸면 무시당할 거야. 형이 말 걸면 저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고. 외국 사람이 기자랍시고 인터뷰 신청해서 싫어할 인도 사람은 없어. 지금껏 다들 좋아했잖아."

 

"노노, 잘 거야."


"어떻게 이런 인간이 인도까지 왔을까."


"시끄러."


"역시 자질이 없는 한심한 인간이었…."


"잘 봐."


발끈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아들에게 말을 걸었는데 의외로 정중하고 친절했어요. 인도 중부 하이데라바드가 고향인데 아그라엔 가끔 간다고 하더군요. 아들이랑 대화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이방인에 흥미를 보이더군요.

 

"한국에서 왔다고? 하이데라바드는 와 봤나?"

"예, 전에 출장 차 당일로 왔다 갔습니다."

"이게 내 고향 하이데라바드에 있는 사원인데, 왔으면 꼭 들러봐야 하는 데인데…."하면서 호주머니에서 금색 삼성 갤럭시 노트4엣지가 딱 나오는 데 역시 싶더라고요. 인도 TV 광고로만 본 휴대폰으로 사원 사진을 넘기면서 영어와 힌디어를 섞어가며 소개하더군요. 호기심이 동한 비크람도 어느새 내 옆에 붙어서 이들 부자와 말을 좀 섞었습니다.

 

이름 좀 알려달라니까 아들이 영어로 적어줘요. 너무 길기도 하고 꼬불꼬불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워서 주인도한국문화원 한국어학당 고급반 출신 비크람한테 "한글로 적어봐"라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합니다. 주로 영어가 90%정도 되긴 합니다. 

 

아들은 '아가 모함마드 하산(Agha Mohd. Hasan)' 16세. 아버지는 '아가 모함마드 깔림 아불울라(Agha Mohd. Qasim Abulullai)' 43세. 삐뚤 빼뚤 적더군요.

 

"형, 진짜 왕족인가 봐. 아니면 분명히 조상 중에 누가 왕족이었을거야. 이름이 고급스러워. 그리고 이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굉장히 클래식한 거야.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도 엄청 격조 있어!"

 

"오버 좀 하지 마. 넌 사내자식이 임마 거트(gut ; 내장, 용기, 알맹이)가 없어. 거트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란 말 모르지? 인간은 평등해 그리도 한결같이 다들 머지리지."


열차는 금세 아그라역에 도착했습니다. 문이 열리기 전 복도에서 일어서서 대기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아들인 하산이 있는 거예요. "브로, 주말 잘 보내고. 테익 케어." 형 답게 어깨동무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출구에서 내리려는 데 플랫폼에 이슬람식 하얀 모자를 쓴 사람들 수십명이 이들 부자에게 쏟아지는 겁니다. 휴대폰으로 부자 사진을 끊임없이 담는 사람부터 꽃 목걸이를 걸어주고 엎드려 절하는 사람,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고 신발에 입까지 맞추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이 의식은 10분 이상 지속됐어요. 목에 걸린 꽃 목걸이가 넘쳐 결국 머리가 덮였어요. 나랑 비크람은 출구에서 내리자마자 입이 떡 벌어져서 이 장면을 바라봤습니다.

 

"이 사람이 누굽니까?" 이슬람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구루(종교 지도자)"라고 하더군요. 이슬람들은 이들 부자를 거의 손가마를 태워 모셔가다시피 했습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휑해진 플랫폼에서 나와 비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 폭소했습니다.

 

"비크람, 로열패밀리긴 했다. 아빠가 구루면 아들도 구루냐? 내가 성스런 사람을 몰라보고 어깨에 손 올리고 아주 막냇동생 취급을 했구먼."

 

"보통 아들이 전승하긴 하지. 근데 쟤 아까 기차에서 받은 비스킷 호주머니에 넣던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진짜 없어보인다. 우린 그거 안 먹고 버렸어!"

 

"그럴 수도 있지. 열여섯살 애인데 뭘 알겠냐."

 

이따위 저질 유머를 주고 받았습니다.  

모욕과 환대, 야만과 문명 사이

'아그라 칸트 역(驛)' 안 플랫폼. 뉴델리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아그라엔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죠. 여느 인도 역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이 역은 타지마할을 찾는 사람들로 빽빽했습니다.

역에서 델리로 돌아가는 기차 편을 알아보고 있는데 한 일본인이 우리 눈에 몇 번 띄었어요. 백팩을 앞뒤로 두 개나 힘겹게 짊어진 데다 허리 가방까지 찼습니다. 이 말인즉슨, 여행 다닐 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전혀 개의치 않는, 미적인 요소라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는데, 빼싹 마른 데다 등까지 굽어 보였습니다. 안경을 내려쓰고 잔뜩 경직된 얼굴에 안절부절못하고 여기저기 개찰구를 기웃거리는 모양에서 그의 곤궁한 처지를 읽었죠. 아키하바라 역 전자 상점가 출구에서 기계식 건담 키보드랑 미소녀 캐릭터 그려진 마우스 패드 사러 온 동경대 삼수생 같았습니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보기 안쓰러워 다가갔습니다. 영어를 한 두 마디 밖에 못하는 수준이었어요. 겨우 '델리로 돌아갈 기차 편을 찾고 있다'는 뜻을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그가 '에어컨 나오는 괜찮은 기차를 알아봐 준다는' 비크람의 제안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일반(General) 기차를 끊어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창문은 열려 있고 사람들이 소가구처럼 다닥다닥 철제 칸에 빌트인 돼 있는, 보기만 해도 끕끕해지는 기차가 일반 기차입니다.

"저것 진짜 타시게요?"

"괜찮습니다. 일반 기차를 끊어주세요."

"분명히 후회할 텐데요."

"...... 끊어주세요. 일반 열차."

비크람은 어깨 한 번 으쓱하고 싸디싼 일반 열차 표를 끊어줬습니다. 정해진 탑승 시간도 없어요. 그냥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면 타는 겁니다.

사람과 열차가 떠난 플랫폼에서 한 노동자가 짐을 깔고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냥 걸인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됐건 짐을 실을 화물 열차가 당도하면 잠에서 깨어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대신 물건 간수 잘하세요. 당신은 외국인 여행자예요. 그것도 돈 많은 일본에서 온. 앞뒤에 맨 백팩에 담긴 물건들 언제든 도난당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시라고요."

 

"알았습니다!" 하면서 캥거루같이 앞에 멘 가방에 손을 올려 넣고 힘을 빡 쥔 채 긴장하는 거예요.

 

"헤이, 그러면 더 이상해보이잖아요.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요." 비크람이 정색을 하더군요.

 

일본인 친구가 더욱 움츠러든 느낌이 들어 제 딴에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습니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일전에 일본 여행 가기 전에 일본어 고수 친구에게 물어봤거든요. 일본인들이 무조건 들으면 웃을 수밖에 없는 일본어 한 문장을 알려달라고요. 그가 알려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닝겐노 레베루가 히꾸이데스."

'인간의 레벨이 낮습니다' 정도겠죠. 여담이긴 한데, 실제로 일본에서 쓰는 족족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도쿄의 한 허름한 바에서 "일본 여행이 어땠습니까?"라고 묻는 일본 여성 모모코에게 써먹어서 잔술 한잔을 공짜로 얻어먹은 것을 포함해서 말이죠. 

 

어쨌든 내가 아는 유일한 문장을 그 일본 여행자에게 얘기했죠. 이런 데서 기죽지 말라고요. "아노, 인디안 닝겐노 레베루가 히꾸이데스." 이후에 영어로 "그러니까 기차에서 물건 간수 잘해!" 난 웃자고 한 소린데,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그 얌전한 일본인 여행객은 돌변했습니다.

 

일본말을 크게 뱉으며 센 척하면서 흥분하는 거예요. "하하! 맞아! (너 일본말 좀 하는구나?) 레벨 낮지! 하하! 걱정 말라고!"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갑자기 돌변한 그가 약간 무서워졌습니다. 얼른 플랫폼에 그를 웃으며 버리고 나왔습니다.

"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인도에서 바보같이 행동하는 거야?"

 

"이건 또 뭔 소리야, 너도 똑같이 한국 오면 바보 취급 받을걸."

 

"난 안 그럴 거야. 인도에 온 동양 남자들은 특히 겁쟁이 같아. 여자같이 행동하지."

 

"넌 방금 인종차별과 여성 비하를 동시에 저지른, 글로벌 상식 없는 미개한 인도 청년이 되었다. 축하해."

 

"XXX(인도 욕)."

이런 얘길 주고받다보니 내가 당한 욕이 떠오르더군요. 지난 주말 힌두신 크리슈나가 탄생했다는 마츄라와 여러 사원이 있는 브린다반에 갔습니다. 성지순례 가는 크리슈나 의식 국제협회(ISKCON) 회원들 틈에 껴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갔죠. 미로 같은 길로 이뤄진 작은 동네에 나이가 수백년이 넘는 힌두 사원들이 오밀조밀 배치돼 있었어요. 

 

골목을 거닐고 있는데 저 끝에서 오토바이가 와요. 인도 청년 세 명이 오토바이 한 대에 껴 있어요. 나를 지나가는 찰나에 제일 앞에서 운전하던 사람이 "친키멍키(Chinky Monkey)!"라고 외치고 갔습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눈 찢어진 동양 원숭아!' 정도 되겠군요. 안 그래도 원숭이 겁나게 많은 동네였는데, 골목길 구석에서 한참을 부들부들 했네요. 

힌두교 신 크리슈나의 성지인 브린다반의 거리. 원래 숲이 우거진 동네였지만 도시·산업화로 인해 나무들이 잘려나갔대요. 서식지를 잃은 원숭이들은 마을까지 몰려 들어와 온 동네가 원숭이 판이었습니다. 성질도 고약하죠. 사원들이 밀집한 골목을 다닐 때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낀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정색하고 '글라스! 글라스!'하면서 삿대질을 하거나 혼을 냅니다. 안경을 낀 사람을 보면 원숭이가 달려들어 안경을 채 간대요. 가뜩이나 원숭이 많은 동네에서 눈 찢어진 동양 원숭이라고 인종 차별을 당해서 기분 더러웠습니다. 여의봉만 있었으면 그놈 두개골을 아주 박살 냈을 거예요.

나는 이 이야기를 인도에서 4년 정도 거주한 한국 친구에게 침 튀기며 말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조용히 말하더군요.

 

"우리가 사실 인도사람들을 얕잡아보고 있다는 걸 우선 인정하자. 차라리 후진국에서 받은 인종 차별이 덜 아프다? 기분은 물론 나쁘겠지만 적어도 너같이 웃으면서 얘기할 순 있잖아. 그런데 선진국에서 정통 백인들에게 인종 차별 한 번 제대로 당하잖아? 그 인간들 죽이거나 내가 죽고 싶거나 둘 중 하나야."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인간의 가식과 위선을 사랑합니다. 가식과 위선이야말로 문명인을 야만 상태와 구분하는 일차 덕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 친한 형이 유럽여행을 하고 왔어요. "영국이 좋아, 프랑스가 좋아"고 아무 생각 없이 물었죠. 그는 "결단코 영국이 낫다고 할 수 있지"라며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프랑스 놈들은 아주 밥맛이 없었대요.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한 태도로 대충 받아주는 시늉만 하더랍니다. '이방인인 나는 냉대받고 있구나'하는 개운치 못한 느낌을 프랑스 곳곳에서 확실하게 받았대요.

 

영국에선 달랐답니다. 연극인지 뮤지컬 공연에서 표를 살 수 있는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놓쳐서 매니저에게 "표 곧바로 살테니 들여보내 줄 수 없느냐"고 사정을 했대요.

 

그러자 그 영국인 매니저는 "오, 한국에서 온, 불행한 운명의 갈퀴에 사납게 할퀴어진 젊은이여. 미안하지만 나는 끝내 당신을 저 안으로 들여보내 줄 수 없구려. 내일 제시간에 다시 시도해보지 않겠는가? 내 성실히 그대의 안내자가 되겠네." 정도로 점잖은 신사의 언어를 쓰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형은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이나 언어가 서툰 왜소한 동양 남자가 우습게 보이긴 마찬가지였겠지. 그래도 영국사람은 끝까지 신사인 척을 하더라고."

영국에서 남편과 함께 공부하는 내 친구는 "영국 애들은 지네가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잘났어. 미국, 호주, 뉴질랜드 가릴 것 없이 무시하지. 아주 세계 최강이야 자기들 생각엔"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더군요.

"그래도 대놓고 무시하는 프랑스 애들보단 낫지 않아?"

"맞아. 프랑스는 정말 싫어. 영국 애들은 가식이 쩔어서 앞에 있으면 기분은 안 나빠.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하면 기분 나빠! 호호."

진심 혹은 진정성 따윈 나중 문제인 겁니다.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내가 보기에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 혹은 차별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인간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자란 사회·문화적 습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나 자신도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부지불식간에 체화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잦습니다. 본심이 어떻든 간에 일단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척'이라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이란 '인종, 외모, 성별, 연령, 학력, 장애, 지역, 경제력 등에 따라 다른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 인간이 보다 나은 인간이다'라는 명제를 상식처럼 받드는 일입니다. 스스로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하다못해 연기라도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마음이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한 인간의 상식과 윤리에 대한 감각은 결국 그가 가진 미감(美感)에 수렴하기 마련이어서, 보편 상식 없이 무신경하게 행동하는 천둥벌거숭이들은 아주 촌스러워 보이죠.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품격도 한없이 낮아보입니다. 


내 인종차별 이야기를 들은 비크람은 대응할 수 있는 인도 욕을 알려줬죠.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랑 인도 사람이랑 싸우면 누가 내 편 들어주겠냐. 조리돌림 당하고 몰매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비크람도 고갤 끄덕끄덕 거리면서 "무시해"라고 말했습니다.

 

일전에 아그라를 찾았을 때 타지마할을 비롯한 유명 유적지를 모두 밟아봐서 갈 데가 없었어요. 아그라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오베로이 호텔 점심 뷔페가 맛있다는 소릴 들어 무작정 택시 타고 갔습니다. 뷔페 코너 앞에서 비크람은 한 3초 고민하다 햄과 연어, 닭고기 카레를 수북이 담더군요. 조변석개하는 그의 종교적 신념을 마구 비웃어줬습니다.

점차 비-채식주의자에서 육식주의자로 변모하는 친구 비크람. 고기 담긴 접시를 싹싹 비워내고 민망한 듯 웃고 있습니다.

저 멀리 타지마할의 지붕이 보입니다. 이곳 호텔 안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가, 아무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다가, 졸다가, 했습니다. 주말이었으니깐요.

우린 날이 더워서 밖에 나갈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타지마할 지붕이 보이는 전망좋은 카페가 호텔 안에 있더군요. 소파 깊숙히 등허리를 박고서 냉커피를 홀짝거리며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편을 구하기가 어려워 에어컨 있는 투어 버스를 잡았습니다. 

사설 여행사들이 모여 만든 버스 정류장에서 뉴델리행 버스를 기다리는 인도 아저씨들. 500루피를 내면 에어컨이 있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델리로 오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 아저씨랑 이야기하다 알게 된 사실. 나랑 비크람은 500루피 냈는데, 그 아저씨는 300루피를 냈대요. 비크람은 '여행사에 당했군. 자기들 맘이야. 우리에겐 500루피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가격을 불렀나 보군'이라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표를 사서 버스가 오면 탑니다. 선착순으로 좌석이 모두 차면, 버스는 떠납니다. 아그라에서 델리까지 차로 4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델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비크람은 "내가 오늘 고기 먹은 건 아미트에게 비밀이야. 절대 말하면 안 돼"라고 몇 번을 신신당부하더군요. 이렇게 또 한 주말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