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SXSW 액셀러레이터, 그 결과는?

3월 13일, SXSW 액셀러레이터 최종 우승자가 가려졌습니다.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 간의 경연입니다. 발표 내용 만으로 점수를 매겨 최종 승자를 뽑습니다. 6개 분야에서 한 팀씩 뽑아 총 6팀이 상을 받았습니다.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 같은데요.

 

- 가상현실기술: Splash

- 결제와 핀테크 기술: Chroma

- 세상을 바꿀 기술: Rorus

- 의료와 몸에 착용하는 기술: MUrgency

-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기술: PopUp Play

- 기업용 서비스: Parknav

 

이렇게 한 곳씩 수상했습니다. 참고로, VR 부문은 구글 클라우드가 후원했습니다. 마침 이 부문 우승은 구글이 뉴스랩에서 강조하던 360도 비디오를 제작하고 공유하는 서비스 스플래시 차지였습니다. 승자 가운데 유일한 독일회사이기도 했고요.

SXSW 2016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수상자들 ⓒ정보라

3월 12일 종일 본선이 열렸고, 6개 분야에 참여한 팀들이 각자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2분 발표 + 심사위원의 Q&A 시간만으로 평가를 받고, 이 중 18개 팀이 결선에 올랐습니다. 13일에는 5분 발표 + 심사위원의 Q&A를 거쳐 분야별 1등을 뽑았습니다. 

 

최종 우승자 시상식에 앞서 미니 이벤트가 열렸는데요. 결선 18개 팀에 오르지 못한 팀 가운데에서 분야별 1~3개 팀을 뽑아 1분 발표를 할 기회를 주고 별도로 상을 주었습니다. 저는 본선과 결선은 못 보고 1분 발표 이벤트만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으레 보던 발표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다들 창업가가 아니라 연극 배우 같았습니다.
어느 참가자는 연설을 하는 듯했습니다. 
주뼛대는 사람 없이 다들 말도 잘합니다.
어디에 가서 청중을 사로잡는 화술을 배웠거나 MC 지망생 같았습니다.

연극배우 같았던 발표자들 ⓒ정보라

 

세상을 바꾸는 기술 부문에서 우승한 팀, 로루스. 화학제품을 쓰지 않고도 물을 정화해 식수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 대표 이하 두 직원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여성 CEO라서 눈에 띔. 셔츠 등판에는 자기 이름을 씀. ⓒ정보라

이게 바로 미국 스타일

심사위원이 서비스를 파악하거나 던지는 질문의 밀도는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보다 못할 수 있겠으나, 분위기 만큼은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위기는 한국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명 한 명씩 무대에 오를 때마다 환호를 보내며 응원하고, 최종 수상자를 발표할 때엔 음악 없이 각자 책상을 치며 '두구두구두구두구' 음향을 냈습니다. 정말 즐기러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일정에 지쳤던 저조차 그 시간 만큼은 기운을 듬뿍 받았을 정도로요.

 

저랑 같이 맨 앞에 사진 촬영을 하던 SXSW의 스탭 사진기자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있고 머리카락이 회색빛이었던 왜소한 체구에 5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내내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분위기가 그만큼 신났습니다.

2016 SXSW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시상식 ⓒ정보라

행사가 끝나고 이 감상을 시어스랩의 정진욱 대표에게 말했습니다. 정진욱 대표는 텍사스 대학교 MBA를 나왔고 회사를 팔로 알토에서 시작하여 이 분위기를 잘 알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미국을 오가며 느꼈겠지만,
미국은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런 행사에 오면 질문하고 다가가서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보면 다들 서서 한참이고 얘기할 거다."

맞아요. 그랬습니다.

 

세션을 가면, 질문 받겠다고 하는 순간 망설이는 틈이 없이 다들 일어섭니다. 마이크 앞에 3,4명이 줄을 서는데 줄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계속 사람들이 나오는 거죠. 세션이 끝나면 다들 연사에게 달려갑니다. 기자, 사업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싶어서 다가가는 사람, 그저 인사하고 싶어서 가는 사람, 사진 찍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 각양각색입니다. 때로는 줄을 서서 인사하는데 어떤 때는 에워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엔 목소리가 크고,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유리합니다. 망설이는 순간 인사할 기회를 놓칩니다. 어깨를 살짝 뒤로 빼는 순간 금세 그 무리에서 빠지고요. 알게 모르게 견제하는 게 느껴진다면, 제가 지나친 걸까요.

 

정진욱 대표는 그 또한 미국의 문화라고 말했습니다. 경쟁하는 거죠.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더 지치는 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전 변명거리를 찾았습니다. 세션 듣는 것부터 질문, 인사하기까지 긴장하고 경쟁하고 견제하기. 마음 편하게 들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적인 문화에서 SXSW가 열리고, 스타트업 발표 대회 또한 미국적인데 이곳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와서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미국 문화에 젖어들고 끼어들 깡과 스킬이 있어야 가능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적어도 스타트업 발표 대회에 있어서요. SXSW는 전세계에서 참가자들이 옵니다만, 온전히 미국식으로 열리는 행사입니다.

(내년에 또 왔을 때 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죠.) 

대화하라, 치열하게! ⓒ정보라

진심어린 박수를

그래서 말인데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최선을 다한 한국 스타트업, 시어스랩과 아카에 박수를 보냅니다. 두 회사는 디캠프와 무관하게 행사의 경연에 도전했고 본선에 뽑혔습니다. 오스틴에 오는 항공과 머무는 숙박, 발표 코칭은 디캠프에서 지원 받았지만요.

 

Editor's Comment)

미국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행사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자력으로 본선까지 오른 두 팀을 보니 언젠가는 한국인도 "미국 스타일"의 스타트업 경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작게나마 가져 봅니다.

 

그 전에, 우리나라의 경연 대회도 좀 더 밝은 분위기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면 좋겠지만요.

 

* PUBLY와 정보라 기자가 함께 진행하는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SXSW에서 본 IT/스타트업 핫 트렌드' 데일리 메모 3화의 일부를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