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정: 샌즈스쿨에서 만난 아이들

Editor's Comment

한국의 뉴미디어 예술학교 꿈이룸학교의 설립 교사 중 한명이자 기획국장인 정두수 저자가 각국의 대표적인 교육혁신 학교로서 자리매김한 현장들을 직접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이런 학교는 처음이지? - 새로운 시대의 교육'의 두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영국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학교 샌즈스쿨의 세 가지 대원칙을 소개합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7월 19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정두수

샌즈스쿨(Sands School)*은 2017년 여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에는 해외기관 탐방을 목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직접 학교가 운영되는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 영국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학교이다. 소규모 사립학교로써 학교 운영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참여하여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서 결정한다.

 

샌즈스쿨은 해외의 선진 대안학교들을 조사하다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런 학교가 정말 존재할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몇 개월 뒤 샌즈스쿨을 방문하여 설립자 션 벨라미(Sean Bellamy)와의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벨라미는 1987년 당시 영국에 팽배해있던 학교 실패(School Failure)를 극복하고자 공립학교인 달팅턴홀스쿨(Dartington Hall School)에서 나와 아이들과 함께 샌즈스쿨을 설립한 교사이다.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의 그 열정적인 모습은 함께 간 모든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통역을 맡아주었던 분은 며칠 간의 강행군 중 마지막 목적지이어서 지쳤을 법도 했지만 "션의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기분 좋게 통역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나의 의문은 자연스레 '저런 선생님 그리고 저런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영국으로 떠났다.

샌즈스쿨에서의 첫 만남

샌즈스쿨에 도착한 첫날 나를 맞아준 아이는 Y그룹*의 이슬라(Isla)였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도착하자마자 나를 데리고 공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샌즈스쿨에서 생활했다는 이슬라는 설명하는 내내 설레는 표정으로 학교 공간 구석구석의 유래와 변화 과정, 현재 용도 등을 설명해주었다.

* 한국 기준으로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 나이의 학생

샌즈스쿨 한 편에 전시되어 있는 북극곰과 학생들이 함께 행진하는 모습 ©샌즈스쿨

이슬라의 설명에 따르면 샌즈스쿨 공간은 학생들이 채워 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암벽장이 만들어졌으며, 학교 한쪽에 전시되어 있던 북극곰 모형은 환경보호를 위한 행진을 위해서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공간 투어를 함께 해준 이슬라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준 뒤 쿨하게 수업을 듣기 위해 떠났다.

2층으로 올라갈 땐 반드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신발을 쓰레기통에 버릴지도 모르거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슬라는 그 학기의 청소 감독 역할을 맡고 있었다.

샌즈스쿨의 대원칙 하나, 평등
학생과 교사 누구든지
공부, 일, 재미를 위한 최고의 장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한다

말썽꾸러기와의 만남

다음으로 만난 아이는 드라마 수업*에서 만난 마일로(Milo)였다. 마일로는 자신을 샌즈스쿨을 대표하는 말썽꾸러기(I'm a super naughty boy of Sands)라고 소개했다.

* 영국에서는 드라마(연극) 수업이 사립, 공립학교 상관없이 중등교육의 정식과목으로 채택되어 있으며, 입시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과목이어도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영역과 관련된 과목을 선택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 / 출처: 김선, <교육의 차이>(혜화동, 2018) 중

 

수업을 듣는 마일로를 보며 자신을 말썽꾸러기라고 소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업 도중 숨어서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질문에는 항상 엉뚱한 대답을 했다.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선생님도 마일로의 행동을 제재하지는 않았다. '포기한 걸까?' 머리 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업이 끝났고, 며칠 후 드라마 수업에서 마일로를 다시 만났다. 그날은 공연 리허설이 있는 날이라 학생들 모두 대본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집중하는 사이에도 마일로는 역시나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저렇게 하다 연극을 망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반전은 리허설 때였다. 무대에서의 마일로는 180도 달랐다. 수업시간 장난만 친 줄 알았던 마일로는 대본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었고, 무대에서의 집중력 또한 남달랐다.

 

"왜 마일로를 가만히 두는 거죠?"라는 나의 질문에 연극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출석체크도 하지 않고, 입시에도 상관없는 수업에 들어왔다는 건 그 수업에 관심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장난을 치는 이유는 단지 에너지를 분출할 곳이 필요한 거겠죠. 다른 아이에게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 아이의 행동을 제재할 마음은 없어요. 일단 교실에 들어온 이상 그 아이는 저한테 집중하고 있다는 걸 믿거든요.

대원칙 둘, 신뢰
학생은 스스로
교육과 학교 운영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

샌즈스쿨에서는 유럽의 각지에서 온 학생들 덕분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와서 6개월간 함께 생활하고 있는 헬레나(Helena)와는 비슷한 처지에 있어서인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왜 그곳에 오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점심시간 헬레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169;정두수

헬레나는 말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했으며, 목소리는 떨렸고,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였다.

 

물건을 훔친 것이 발각된 한 아이의 징계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헬레나의 얼굴은 여지없이 빨개졌고,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 아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교사들은 모두 헬레나의 말이 끝날 때까지 집중하여 들어주었다. 헬레나의 의견에 많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그 아이는 이곳에서 저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넨 친구예요. 도둑질을 한 건 나쁘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닐 거예요. 우리가 그 아이에게 줘야 할 건 징계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대원칙 셋, 선택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169;샌즈스쿨

많은 소규모 학교와 교육실험들이 방향을 잃고 그 목표가 흐려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샌즈스쿨은 30년이라는 세월을 굳건히 버티고 있다. 긴 세월 다양한 교육실험에서 실패와 좌절 또한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교육을 통해 '주체적인 삶과 다양성 그리고 배려'라는 샌즈스쿨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평등, 신뢰, 선택'이라는 대원칙 아래 교사와 학생이 성장과 배움을 함께 고민하고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음 내용에서는 샌즈스쿨이 왜 이러한 원칙을 세우고 학교의 운영 철학을 확립해 왔는지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어서와, 이런 학교는 처음이지? - 새로운 시대의 교육]

 

뉴노멀의 시대에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정두수 저자가 영국의 민주주의 학교 샌즈 스쿨(Sands School), 프랑스의 프로그래머 양성학교 에꼴 42(Ecole 42), 덴마크의 인생학교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영국의 교육 실험실인 스쿨21(School21), 이탈리아의 통합예술 교육장 세그니 모시(Segni Mossi)를 다녀왔습니다. 끝없이 고민하고 실험하는 시도를 통해 혁신 교육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현장에 함께 참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