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물고기의 탄생

Editor's Comment

머릿속으로 꿈꿔오던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로 옮겨나가기 시작할 때, 스타트업은 수많은 난관을 겪게 됩니다. 예상했던, 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회 덕후로 시작한 이지선 저자가 노량진 수산시장 최고의 O2O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실패로부터 배운 값진 깨우침을 쌓아가는 과정에 초대합니다. '스타트업, 실패를 배우다 - 미친물고기 실패담'의 두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서비스의 이름을 짓는 과정과 앱을 론칭하기까지의 고민들을 나누어봅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7월 19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Erica Leong/Unsplash
수산시장 O2O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심한 순간,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가지면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태교를 하면서 아이가 건강하게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듯이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서비스에 골격을 갖추고 살을 붙이며 피를 돌게 만든다.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위대한 탄생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먼저,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야 한다. 이름은 아이의 존재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태어나기 전엔 아이에게 정식 이름 대신 태명을 지어 부르는 것처럼, 수산시장 O2O 서비스의 태명은 촌스럽지만 영어로 '노량진'의 앞글자를 그대로 딴 'NRG'였다. 이후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나가면서 차츰 서비스의 이름을 고민했고, 그 결과 '미친물고기'가 탄생했다.

크레이지 피시 vs. 미친물고기

앱 서비스를 열고 운영하는 동안 미친물고기라는 상호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브랜드가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좋은 이름이라고 박수를 쳐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름이 너무 세다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미친'이라는 형용사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강했다.

 

서비스 이름을 고민하면서, 처음에는 '크레이지 피시(Crazy Fish)'를 떠올렸다. 이는 LA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내가 가장 좋아한 식당 이름이다. 주로 초밥과 캘리포니아롤을 파는 퓨전 일본 음식점이었는데 늘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었다. 또한 크레이지(crazy)는 '미쳤다(insane')와 다르게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의미가 있어 좋았다. 하지만 결국 크레이지 피시는 크레이지(crazy)의 의미만 남긴 채 사라졌다.

 

미친물고기를 떠올린 건 크레이지 피시의 BI(Brand Identity)를 담은 로고를 제작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미팅을 가졌을 때였다.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한 기획 의도와 방향 등을 설명하고 디자인 컨셉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설명해주신 미친물고기 서비스에는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하는 '병맛' 코드를 넣으면 어떨까요?

 

예? 미친물고기요?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미친물고기? 크레이지 피시를 우리말로 바꾸었을 뿐인데 어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대신 다소 평범한 느낌을 주었던 크레이지 피시에 비해 미친물고기는 디자이너가 말한 병맛 코드와 함께, 어딘가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듯한 센 느낌도 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우리의 도전은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어떤 면에서 '미친' 시도였으니 말이다.

미친물고기 로고 ⓒ미친물고기

그 순간부터 서비스의 이름은 미친물고기로 바뀌었고, 정말 무모하지만 멋진 도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름에서 역설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미친물고기로 가닥을 잡으니 그에 걸맞은 로고도 완성되었다. 새롭고, 살짝 병맛인데다 사랑스러운 형태로 말이다.

노량진 어벤져스의 의기투합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아냈고 BI도 잡았으니, 이제 실속 있는 서비스 모델을 가다듬어야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O2O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고민을 거듭했고,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편리한 건 '배달의민족' 방식이었다. 이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소매점을 모두 서비스에 입점시켜 각자 메뉴를 등록하고 고객이 서비스 안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식이다. 배송 역시 각 가게에서 담당하고 우리는 수수료, 또는 광고비를 수익모델로 삼는다.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일반 고객들에게 생선회를 판매하는 가게만 200여 개*가 있는데, 한 지역에 모여 있으니 입점 업체를 찾기 위한 영업 과정도 상대적으로 손쉬워 보였다. 그러나 이 가게들은 인터넷, 모바일 환경에 발맞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과도한 수수료를 내야 한다든지, 기존 오프라인 고객을 빼앗길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큰 상태였다.

* 관련 자료: 연도별 업무통계자료집 (출처: 노량진 수산시장 홈페이지)

 

그래서 중개 플랫폼으로서의 모바일 서비스에, 수산시장 방문 전 미리 식당을 예약하고 주문까지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 고객 모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싶었다. 수산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아 흥정하고 회를 뜨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식당에 자리를 잡는,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과정을 피하고 싶은 손님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또한 앱 서비스를 통해 직접 가게를 선택해서 방문하는 고객들에게는 기존 방식대로 판매할 수 있어 업체들의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가 사업 기획 초기에 검토했던 가장 단순하고 편리한 구성인 단순 중개 플랫폼만 구현하는 작업은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의 형식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친물고기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가치는
'친구 같은 서비스'였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을 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서비스가 되고 싶었다. 앱으로 주문과 배달이 가능한 '편의성'에, 때마다 맛있는 제철 생선을 소개하고 신선한 생선회를 제공하면서 덧붙여 더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줄 수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노량진 수산시장의 주문 중개 플랫폼으로 서비스 방향을 잡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와 같은 대형 O2O 업체가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영역을 넓힐 경우, 우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잠실 쪽에 있던 배달의민족은 '인어교주해적단'과 손을 잡고 가락동 수산시장 업소를 연결하는 배민수산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친물고기가 원하는 친구 같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당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쇼핑처럼 새로운 변화가 몰려오는 흐름을 감지하고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던 '형제상회'가 고객이 원하는 모둠회 메뉴를 선보이고 고급화하여 다른 가게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이에 대한 부러움도 생겨났다. 거기에 현대화될 건물을 향한 기대*, 전에 없이 대폭 늘어난 중국 관광객 등 모든 변화에 대한 위기감도 더해졌다.

* 노량진 수산시장은 노후화된 시설 및 식품위생 안전 문제로 인해 2016년 3월 15일 이후로 현대화된 건물로 이전했다.

파트너십과 신뢰의 위기

그리하여 10년 단골인 YK수산의 사장과 미친물고기 서비스에 대한 파트너십을 다진 후에 다른 업체를 몇 군데 더 소개받았다. 일반적으로 수산시장은 생선회를 주로 취급하는 가게와 킹크랩, 랍스터, 전복, 문어 등 해산물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가게로 나뉜다. 나는 그중 생선회 전문인 세 곳, 해산물 전문인 한 곳과 접촉하여 파트너 계약을 맺었다.

 

미친물고기는 메뉴 구성과 온라인모바일 서비스 구축, 운영, 홍보, 마케팅, 고객 관리를 담당하고, 파트너 가게에서는 우리의 매뉴얼대로 상품을 구성하고 포장하고 배송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대표 메뉴는 '미친제철'이었는데, 광어회를 기본으로 제철 생선을 포함한 모둠회로 구성하였다. 이 메뉴의 핵심은 2.5kg 이상의 대광어를 쓰는 것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광어는 언제든 먹을 수 있고 가격 대비 맛이 뛰어난 어종이지만, 크기에 따라 맛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양식업이 발달해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국민 생선'으로 자리 잡았기에, 이렇게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적인 횟감을 포함하면서도 이왕이면 좀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대광어를 맛보게 하고 싶었다.

 

이로써 미친제철이라는 메뉴의 구성(광어전어방어 등 제철 생선)과 실중량을 정했다. 생선회 무게만으로 600g을 지키도록 했고, 고추냉이, 초고추장 등 함께 제공되는 양념도 준비했다.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늘 같은 수준의 품질과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친물고기를 통해 주문을 받은 메뉴는 협력사의 손길을 거쳐 포장 및 전달되기 때문에 메뉴 구성을 매뉴얼로 정리해서 제공했다. 이후로도 틈나는 대로 협력사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며 매뉴얼을 개선했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생선을 '판다'는 측면에서만 고민했지, '서비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가게 주인 입장에서 정해진 매뉴얼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Sascha Sturm/Unsplash

그들은 지금까지처럼, 손님 확보를 위해 초기에 정해진 중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넣어주기도 했고, 대광어가 부족하면 도미만 넣어 판매하기도 했다.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고객에게는 불만 사항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추가로 설명이나 양해가 없이 원래 정해진 기준보다 많은 혜택을 제공하게 되면, 고객은 처음 주문했을 때의 서비스 수준에 기대치를 갖는다. 따라서 다음에 주문을 했을 때 고객이 예상한 기대를 채우지 못하면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무엇보다 신생 서비스의 신뢰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자세한 내용은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스타트업, 실패를 배우다 - 미친물고기 실패담]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을 창업 아이템,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력을 다해 실패의 길을 밟고 온 이지선 저자의 경험담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