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일곱 가지 외적 요인

누가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가?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정말로 딜러가 중심이 되어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것일까?

 

세계적인 미술잡지인 <BLOUIN ART + AUCTION>은 2011년 12월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인'을 발표했다.* 카타르 왕국의 셰이크 알 마야사 공주(1위), 가고시언 갤러리의 래리 가고시언(2위), 미국의 컬렉터 엘리 브로드(3위), 러시아의 다샤 주코바(4위), 프랑스 기업가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5위), 딜러인 데이비드 즈워너(6위), 미국인 컬렉터 피터 브란트(7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컬렉터 부디 텍(8위), 크리스티 아시아 지역 사장 프랑수아 쿠리엘(9위), 딜러인 스테판 코너리(10위)가 그들이었다.

* 아담 린데만, <컬렉팅 컨템포러리 아트>, TASCHEN(2013)

 

이 리스트는 여섯 명의 컬렉터, 세 명의 딜러, 한 명의 경매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미술 시장의 핵심은 단연 돈줄을 쥐고 있는 컬렉터 그룹이다. 그러나 <BLOUIN ART + AUCTION>이 발표한 리스트를 보면 컬렉터 이외에도 딜러와 경매 전문가도 여럿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컬렉터, 딜러, 경매 전문가는 미술 시장을 직접 움직이는 중요한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외에 미술 시장을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주체에는 누가 더 있을까? 가장 중요한 미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 담긴 이미지를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평론가, 그리고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아트 컨설턴트가 바로 그 4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시장에서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어떠할까? 지금부터 7개의 축,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자 했던 작가, 트레이시 에민

런던과 뉴욕에 각각 4만 명 이상의 작가가 있다. 이들 중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는 슈퍼스타 작가는 고작 75명이다. 이들 슈퍼스타 작가 밑에는 성공한 작가 300여 명이 있다. 이들은 메이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연간 수억 원의 수입을 챙긴다. 이름이 알려진 주요 갤러리의 전속 작가는 5,000명 정도로, 이들은 작품 판매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강의, 저술 등 각종 부업을 한다.

 

- 도널드 톰슨, <은밀한 갤러리>, 리더스북(2010)

미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일곱 가지 외적 요인

누가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가?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정말로 딜러가 중심이 되어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것일까?

 

세계적인 미술잡지인 <BLOUIN ART + AUCTION>은 2011년 12월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인'을 발표했다.* 카타르 왕국의 셰이크 알 마야사 공주(1위), 가고시언 갤러리의 래리 가고시언(2위), 미국의 컬렉터 엘리 브로드(3위), 러시아의 다샤 주코바(4위), 프랑스 기업가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5위), 딜러인 데이비드 즈워너(6위), 미국인 컬렉터 피터 브란트(7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컬렉터 부디 텍(8위), 크리스티 아시아 지역 사장 프랑수아 쿠리엘(9위), 딜러인 스테판 코너리(10위)가 그들이었다.

* 아담 린데만, <컬렉팅 컨템포러리 아트>, TASCHEN(2013)

 

이 리스트는 여섯 명의 컬렉터, 세 명의 딜러, 한 명의 경매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미술 시장의 핵심은 단연 돈줄을 쥐고 있는 컬렉터 그룹이다. 그러나 <BLOUIN ART + AUCTION>이 발표한 리스트를 보면 컬렉터 이외에도 딜러와 경매 전문가도 여럿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컬렉터, 딜러, 경매 전문가는 미술 시장을 직접 움직이는 중요한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외에 미술 시장을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주체에는 누가 더 있을까? 가장 중요한 미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 담긴 이미지를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평론가, 그리고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아트 컨설턴트가 바로 그 4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시장에서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어떠할까? 지금부터 7개의 축,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자 했던 작가, 트레이시 에민

런던과 뉴욕에 각각 4만 명 이상의 작가가 있다. 이들 중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는 슈퍼스타 작가는 고작 75명이다. 이들 슈퍼스타 작가 밑에는 성공한 작가 300여 명이 있다. 이들은 메이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연간 수억 원의 수입을 챙긴다. 이름이 알려진 주요 갤러리의 전속 작가는 5,000명 정도로, 이들은 작품 판매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강의, 저술 등 각종 부업을 한다.

 

- 도널드 톰슨, <은밀한 갤러리>, 리더스북(2010)

이것은 경제학자인 도널드 톰슨이 미술계 작가들이 처해있는 가혹하고도 경쟁적인 삶의 현장을 수치로 묘사한 것이다. 미술 시장이 활성화된 서구 시장에서도 작가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슈퍼스타 작가, 성공한 작가, 그리고 각종 부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작가를 구분 짓는 기준이 '작품의 판매량'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작품이 팔려서 돈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영국의 대표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사례를 통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1997년 <센세이션> 전시에서 트레이시 에민이 선보인 작품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이다. '잤다'라는 표현에 육체적 관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이 작품에 남자친구를 포함,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부터 가족, 친구, 심지어 자신의 낙태로 인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아기의 이름까지 적었다.

 

과감히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했던 트레이시 에민은 1963년 영국 런던에서 터키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엔버 에민과 어머니 팸 카신은 불륜관계였고, 에민의 어머니는 호텔이나 나이트 클럽 등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에민과 그의 남동생을 키웠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애인에 의해 수차례의 성적 학대를 당한 트레이시 에민은 13세에 강간을 당한 후 집을 나와 방황했다. 두 번의 낙태 수술과 한 번의 유산은 그를 폭음과 흡연, 심한 우울증, 그리고 자살 시도로 몰고 갔다.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그는 성폭행과 지속적인 성적 학대로 인한 상처로부터 벗어나고자 예술을 택했다.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고 에민은 말했다. 작품에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나 솔직하다 못해 무례하기까지 느껴지는 그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작품에 노출시켰다. 이런 그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이후 2년 만에 <나의 침대(My Bed, 1998)>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 Tracey Emin RA talks about 'My Bed' ©Royal Academy of Arts

 

충격적이기까지한 이 작품은 트레이시 에민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이다. 작품은 말 그대로 에민의 침대이다. 벗어 놓은 스타킹, 정리되지 않은 이불, 더러운 속옷, 담배꽁초, 보드카 병과 휴지조각들이 침대 옆에 널부러져 있고, 피임용품, 알약, 사용된 콘돔과 임신 테스트기 등 성관계와 관련된 물건들도 어지럽게 놓여있다.

 

실제로 그는 저 침대에서 성관계를 가졌고 다음날 전시회장에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혹은 그의 알몸, 관계 장면 등을 상상할 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작품을 통해 그가 보여주려한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잊고 싶은 기억들, 치욕스러워 도려내고 싶은 과거와 내면의 이야기를 에민은 당당히 고백한다. 고백을 통해 어린시절의 상처와 화해하고 스스로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상처와의 대면'이라 말하고 싶다. 상처를 피해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여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는 이 작품에 대해 '쓰레기'라는 표현을 쓴다. '예술은 원래 아름답고 고상한 것이다'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놀랍게도 2014년 7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독일의 한 현대미술 컬렉터가 254만 6,500파운드(약 39억 원)에 구입하였다.

 

무엇이 컬렉터로 하여금 40억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불하도록 한 것일까? 여기에는 작가가 작품에 담아낸 자전적 이야기, 당시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 작품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딜러 등 여러 요인들이 섞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돈을 주고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곧 작품이 건네는 이야기에 사회와 대중이 소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액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심지어 동물들도 자신의 감정을 행위를 통해 표출한다. 우리는 이것을 작(作)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예술행위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품(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와의 소통, 관객과의 소통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소통은 작품 가격과 상관없이
그 작품이 반드시 지녀야 하는
최소한의 생명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가 스스로가 특정한 작품, 특히 팔리지 않은 작품을 자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마치 고목을 부둥켜 안고서 새 생명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내적 소통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렇듯 작품의 가치는 관객의 결정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잘 팔린다'고 해서, 외부의 유명세를 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좋은 작품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소통에도 작품 자체가 지닌 힘을 알아보는 내적 소통과, 겉치레 혹은 얕은 도움닫기에 그치는 외적 소통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 미술 시장은 해외 거래가 드물고 사회적 관계에 의해 대다수의 작품 판매가 이루어진다. 이런 경우 '잘 팔린다'는 것은 외적 소통에만 기대어 거품이 낀 가격들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통해 부풀려진 박수근 화가(1914~1965)를 들 수 있다. 박수근 화가는 대중적으로 유명했던 박완서의 소설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작품과는 별개의 유명세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시인 구상의 이야기는 이중섭 작가의 신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작품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얻어진 작가의 아우라가 그들의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 아우라가 한정적인 지역에서만 통용되고 다른 곳에서는 거품으로 취급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효과가 떨어지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중광스님(1934~2002)의 그림은 이제는 더 이상 거래가 되지 않는다. 또 1990년대 초에 한 장에 수십에서 수백만 원까지 거래됐던 김지하 시인(1941~)의 난은 이제 액자 값도 나오지 않을 만큼 추락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해외가 아닌 한국 내에서만 작품이 돌고 도는 특성이 있는데, 이런 특이한 현상은 외적 소통에만 의지하는 한국 미술 시장의 기형적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와 같이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는 작가적 신념으로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들은 '하고 싶은 작업을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나고 삶의 혜안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Francisco de Goya, La maja desnuda(1795-180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작품이 가지는 사회적 소통을 알아보는 안목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아닌 관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관객이 좋은 안목을 가지고 정확한 작품을 골라낼 수 있다면, 즉 견고한 내적 소통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작품을 만난다면 이것은 나중에 상상을 초월하는 자산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우리는 작가 본인이 아니라
작품이 건네는 이야기를 매개로
작가와 만난다
그리고 결국 좋은 작품을 통해 관객 자신과도 만날 수 있다. 그래야 관객이 스스로의 독창적인 안목을 키워 예술과 함께 성장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