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책을 유별나게 좋아해서 오랫동안 새 책 헌 책 가리지 않고 수집해 온 애서가이자 장서가, 헌책방 책방지기인 조경국 저자가 책과 고군분투 해 온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유출판사 X PUBLY -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의 첫 번째 미리보기 글에서는 더는 집안에 책을 둘 곳이 없어 '책과 함께할 공간'을 찾기 시작한 시점부터,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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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Glen Noble

책을 사 모으는 데
열중했다면
언젠가는
핍박받는 날이 올 겁니다 

혼자 산다면 그럴 일이 없겠지만 함께 사는 가족이 있다면 책과 애서가는 어느 날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죠. 서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온전히 책을 위한 공간이 있다면 한시름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이 넘쳐 서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결국 똑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온 가족이 책을 사랑한다면 책이 많아도 행복하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주변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싫어하진 않지만 '영역 침범'에 대해선 단호합니다. 한때는 거실까지 책이 가득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가족 모두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아내는 세간살이가 없는 깔끔한 거실을 원했지만, 책 둘 곳이 따로 없으니 거실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과 서가가 방을 벗어나 거실과 베란다까지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공간을 책들이 '점령'하는 순간 반격이 시작되죠. 후퇴할 것인가 버틸 것인가 휴전협정을 맺을 것인가 어떤 선택도 쉽지 않습니다. 책을 처분하지 않는 이상 이 복잡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략)

 

더는 책도 둘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제발 책 가지고 나가라"

신을 믿지 않지만, 아내의 '강요'가 '신의 계시'처럼 귓속에 박히더군요. 결국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광야에서 고행하며 기도할 곳을 찾는 수도자처럼 책과 함께할 공간을 찾기 위해 떠돌았습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책을 충분히 둘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일은 의외로 힘들었습니다.

 

생활정보지를 샅샅이 뒤지고 부동산중개소를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찾은 부동산중개소에서 책 창고(?)로 쓸 만한 아주 적당한 공간이 있다고 '천전시장 번영회 사무실'로 가 보라고 하더군요.

 

진주 시내에 있는 천전시장은 해방 이후부터 자리 잡은 역사가 오랜 재래시장입니다. 대형마트에 손님을 뺏긴 후 빈 점포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문을 닫은 점포가 많다고 해도 시장이니 번잡할 수밖에요. 그런 시장 1층에 책을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시장 번영회 이사님을 따라 간 곳은 낡은 시장 건물 2층에 있는 옛 시장 번영회 사무실이었습니다.

 

상인회는 새로 지은 건물로 옮기고 옛 사무실은 낚시동호회(칠암피싱클럽)에서 잠시 사용하다 줄곧 비어 있었습니다. 크기는 7평 정도, 에어컨도 달려 있고, 북향으로 작은 창문이 있고,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라 책을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마음에 쏙 들었죠. 좁은 계단을 올라와 좁은 문을 열고 들어와야만 들어올 수 있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수 있는 비밀스런 공간이란 점이 좋았습니다. 바로 아래 시장이 있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이런 곳에 책을 둘 수 있다니… 그렇게 소소책방을 열기 전 3년 동안 '칠암피싱클럽'에서 책과 함께 지냈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곳에서 책 읽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군요. (중략)

천전시장 2층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칠암피싱클럽' 내부 ⓒ조경국

칠암피싱클럽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집에도 점점 책이 늘어났습니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있던 헌책방을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책방을 연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3년 11월 헌책방을 시작했을 때 약 2만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책방뿐만 아니라 책방이 있던 건물 계단까지 책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책과 예전 단골로 다니던 헌책방 책방지기님의 소개로 문을 닫게 된 용인의 한 헌책방의 책을 인수해서 책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용인에서 5톤 트럭 두 대가 책을 가득 싣고 오던 날이 생각나는군요. 약 2만 권이라고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5톤 트럭 두 대에 실어 보낸 책이 약 1만 2천 권이라고 말씀하셨고, 제가 가진 책이 8천 권쯤 되니 그 정도 되는가 보다 어림짐작했죠.

 

처음 책방을 연 곳에서 두 번 더 이사해 지금의 작은 공간으로 옮겼습니다. 그사이 도저히 팔리지 않을 책들을 정리했습니다. 오래된 전공서적, 어린이 전집류, 참고서, 잡지, 이를 맞출 수 없는 만화책… 특히 옛 백과사전을 버릴 때는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현재 공간으로 이사를 끝낸 후 이제 더는 책을 들이지 말자고 최소한 지금 상태만이라도 유지하자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어느 날은 책을 사러 오시는 손님은 없고 팔러 오시는 손님만 오실 때도 있으니까요. 책장사도 장사인데 파는 것보다 사는 것이 많으면 곤란하지만 좋은 책을 들고 오는 손님은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오카자키 다케시 씨는 <장서의 괴로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사람은 헌책방 일이 책을 싸게 사들여서 비싸게 팔아먹는 되먹지 못한 장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헌책방 주인 편인 나는 헌책방 주인이자 소설가 데쿠네 다쓰로가 <소세키를 팔다> (분게이슌주, 1995)에서 "헌책방 주인은 장사에 서툴러요"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헌책방 주인은 장사에 서툴러요"라는 문장이 가슴을 찌르더군요. 거기에 한 가지 더 덧붙여야겠습니다.

 

헌책방을 열기 전까지 자만하던 '책 정리 기술'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날이 쌓여 가는 책방의 책들을 보며 한숨 쉴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아닌가 하고 말이죠.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의 살육시집>에 보면 책 수렁에 빠진 원귀들이 나오는데 딱 그런 기분이랄까요.

 

떠나는 책보다 책방으로 꾸역꾸역 찾아오는 책들이 많으니 책방지기로 사는 동안에는 책 수렁에서 벗어나기 힘들 듯합니다. 이 수렁에서 벗어나는 날이 있다면 평생 동무 삼을 책 몇 권만 머리맡에 두겠습니다. 하지만 평생 동무로 삼을 만한 책을 여전히 찾는 중이니 현재의 고통을 즐겨야겠지요.

 

언제쯤 조지 기싱의 상상처럼 언제쯤 아담하고 고요한 공간을 마련하여 빈 벽엔 판화를 걸고 고르고 고른 사랑하는 책들과 지낼 수 있을까요.

방이 어쩌면 이토록 조용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방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거나, 양탄자 위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황금 햇살의 형상을 바라보거나, 벽에 걸린 액자 속의 판화들을 하나씩 살피거나, 책꽂이에 줄지어 늘어선 내 사랑하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집 안에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하나도 없다. 정원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며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하루 종일이라도 그리고 밤이 되어 더 깊은 정적이 찾아올 때까지도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다.
- <기싱의 고백> 중

&#9426;Ilya Ilyukhin

[유유출판사 X PUBLY -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

 

유유출판사와 PUBLY가 함께 진행하는 특별한 프로젝트! <필사의 기초>,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의 조경국 저자가 헌책방 운영 경험을 녹여 이번엔 책을 사랑하고,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헌책방 책방지기가 책 무더기 속에서 책과 벌인 고군분투기, 잔뜩 쌓여 있는 책 때문에 막막해 본 적 있는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