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 변화의 핵심에는 IT 기술로 대표되는 전자 제품이 있습니다. 이번 CES에서도 한 해를 달굴 수 만 개의 신제품이 소개되었습니다. 그중 이효석 저자가 눈에 띄는 신기한 제품들을 소개하면서 그 제품들의 의미를 같이 생각해보려 합니다. '신비한 제품사전 @CES 2018'의 두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움직이는 여행가방을 소개합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2월 22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Mike Wilson
이번 CES 유레카 파크(Eureka Park)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제품 중 하나는 트래블메이트 로보틱스(Travelmate Robotics, 이하 트래블메이트)의 완전자율주행 여행가방이다. 여행가방이 완전자율주행을 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일단 영상을 보자.

 

ⓒTravelmate

 

올해 CES에는 접히는 스쿠터 등을 포함해 전년보다 훨씬 다양한 모빌리티(Mobility, 이동수단) 제품이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기름이 아닌 전기로 움직이며, 배터리 기술의 향상 덕분에 가능해졌다.

CES 2018에 소개된 다양한 모빌리티 제품 ©이효석

자율주행 기술은 모빌리티에 IoT, 센서, 빅데이터, AI 등이 결합한 기술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 대접을 받는다. 한편으로 모빌리티와 IT 기술은 서로 충돌하는 면이 있다. 모빌리티 기술은 '사람이 직접 어딘가로 가기 위한 것'인 반면 IT 기술은 '사람이 직접 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수 있고, 화상회의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회의할 수 있다. 클라우드 기반의 재택근무나,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의사를 만나는 원격의료도 마찬가지이며 현실감 넘치는 VR 기술도 직접 이동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목적으로 크게 쓰이게 될 것이다.

 

이는 움직이는 것이 그만큼 힘든, 곧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량은 인류의 삶을 엿보는 좋은 기준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이하 EIA)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미국 전체 에너지 소모량 중 29%가 이동에 쓰였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이동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 관련 글: Energy Use for Transportation (EIA, 2017.5.17)

 

따라서 최신 IT 기술이 모빌리티 제품에 직접 적용되어 그 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비롯한 편의성과 활용성을 개선할 수 있다면, 곧 우리가 보다 쉽고 즐겁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런 기술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 편의성의 한 정점에 완전자율주행이 존재한다) 트래블메이트의 여행가방 또한 그런 제품이라 할 수 있다.

CES 2018 트래블메이트 부스 ⓒ이효석

* 트래블메이트 크기와 가격

트래블메이트 제품과 가격 ⓒ트래블메이트

소형 1,099달러(약 119만 원), 중형 1,295달러(약 140만 원), 대형 1,495달러(약 162만 원)로 구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싼 수준은 아니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주문 폭주'로 배송에 최대 90일이 걸릴 수 있다고. CES 부스에서만큼은 제품이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가는' 여행가방의 시작과 진화 

트래블메이트의 제품은 주인을 따라간다. '따라간다'는 말만 들어도 매우 유쾌한 기분이 든다. 마치 반려견이 주인을 따라가는 것처럼, 비록 미숙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객체의 주체성을 포함한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행위는 상대를 알아보고, 상대가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고, 스스로 이동해 뒤를 쫓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지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러했으리라. 여행가방을 끄는 일은 분명 힘들다. 쉬운 해결책으로는 손잡이에 버튼을 두고 바퀴에 모터를 달아 가방을 끌 때마다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제품이 나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제품을 만들어 본 이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사람이 걷는 속도와 바퀴가 구르는 속도가 다를 경우 가방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워지며,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점 또한 불편하다.

 

그다음으로 여행가방이 주인을 따라오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주인을 알아본다든지, 주인이 가는 방향을 예측한다든지 하는 기술은 간단한 트릭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가방 귀퉁이에 스마트폰의 신호를 측정하는 리시버(receiver)를 달고 스마트폰 블루투스 등을 감지해 방향과 거리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가진 주인을 따라, 주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다. 적당한 수준의 장애물 센서로 요철이나 인파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바닥의 상태가 매우 나쁘거나 사람들이 매우 많을 때는 가방을 직접 끌어야 할 것이다.


CES의 묘미는 트래블메이트의 여행가방처럼 '쿨한' 제품이더라도 그 천적을 한 자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법. 트래블메이트의 여행가방을 보다 보면 어느새 나를 따라오는 가방이 고맙다는 생각은 잊힌다. 그리고 다리도 아프니 이왕이면 여행가방이 아예 나를 싣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으면 하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나를 싣고 가는
여행가방을 보다 보면
나를 따라오는
가방 따윈 잊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트래블메이트의 부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런 가방, 그러니까 가방 위에 앉아 손잡이로 가방을 운전해 탈 수 있는 제품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모도백(Modobag)이다.

모도백 부스 ⓒ이효석

가격은 1,495달러(약 162만 원)로 2018년 봄에 출시 예정이다. 부스 앞에 사람들이 모도백을 타볼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 가방의 무게는 9킬로그램으로 한 시간을 충전하면 10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고 한다. 걷는 속도의 약 두 배 정도인 시속 8킬로미터 또는 약 세 배 정도인 12.5킬로미터 모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단점이라면 가방에 타는 순간 모든 시선이 쏟아진다는 점과 타는 자세가 그렇게 '쿨하지' 않다는 점이다. 첫 번째 특징은 사람에 따라 단점이 아닐 수 있지만 두 번째 특징은 매우 심각하다. (전체 내용은 최종 리포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osh Theintern

 

[신비한 제품사전 @CES 2018]

 

기술을 연구하고 사업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 테크 트렌드 전문가인 이효석 저자가 1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CES 2018에 다녀왔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CES에 있는 모든 제품들을 발품 팔아서 보고 왔습니다. 한국의 기존 매체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혹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제품의 사전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