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

Editor's Comment 

세상이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 변화의 핵심에는 IT 기술로 대표되는 전자 제품이 있습니다. 이번 CES에서도 한 해를 달굴 수 만 개의 신제품이 소개되었습니다. 그중 이효석 저자가 눈에 띄는 신기한 제품들을 소개하면서 그 제품들의 의미를 같이 생각해보려 합니다. '신비한 제품사전 @CES 2018'의 첫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개인용 망원경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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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Bryan Goff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이라니! 25년 전, CD가 LP판을 구축할 당시에나 등장하던 케케묵은 표현 아닌가요?

 

물론, 그렇습니다. 게다가 충돌이라는 단어 또한 적절하지 않죠. 어디 아날로그가, 감히 디지털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이받은 적이 있을까요? 위풍당당하던 CD조차도 물성이라는 아날로그적 특성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네요. 그저 더 많은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대체물이 등장해 환호를 받는 동안, 원조 아날로그는 자신이 언제 파티장을 떠나야 할지를 생각하며 쓸쓸히 시계만 쳐다볼 뿐입니다.

 

물론 최근 LP나 종이, 카메라 필름의 열풍을 소개하는 <아날로그의 반격(The Revenge of Analog)>이라는 책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이미 사라진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의 인기에는 그 희귀성으로 인해 획득한 사치재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즉, (디지털 기술로부터) 쿨하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살아난 뒤에는 더 이상 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는 제 페이스북에서 소개한 '러브박스(Lovebox)'란 제품처럼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이제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려 그것이 더욱 미안한, 빛바랜 인형 같은 느낌의 제품들이 디지털 세계 속에서 겨우 디아스포라(diaspora)*를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 고국을 떠나는 사람, 집단의 이동.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CES 2018에서 만난 밤하늘의 별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든 것을 디지털 세계로
옮겨가겠다는
야심 찬 시도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VR이라는 이름의, 우리가 느끼는 오감을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로 만족시키겠다는 시도입니다. 물론 1999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는 뇌에 직접 연결한 가상세계를 보여주었고, 아예 물리적 실체 없이 순수한 정신을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이야기도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디지털이 이렇게 현실 세계를 광범위하게 잠식할수록 우리는 역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여전히 아날로그에 속해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침범의 현장이 보일 때마다, 과연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어색한 느낌을 마주치지요.

 

CES 2018에서도 이런 어색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제품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두 제품이 있었고, 그중 하나는 저 어색함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이들이 해결하려는 문제는 바로,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음, 시작부터 감성적이네요. 밤하늘의 별이라… 아마 별은 인류가 인류가 아니던 시절부터 그들에게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알려주는 주체였을 듯합니다. (물론 1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밤하늘의 별을 관찰했음을 증명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분명히 그랬을 것 같네요.)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별은 신의 뜻을 알려주는 존재였고, 알퐁스 도데의 <별(Les Étoiles)>에서는 순수함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는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어머니…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인류가 우주를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죠.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토성 근처를 지나면서 태양계의 행성들 사진을 찍었고, 지구는 그 사진에서 하나의 아주 작은 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칼 세이건은 이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가 우주 속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우리가 일상에서 매달리는 모든 것들이 우주의 시선에서 볼 때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르침이 바로 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겁니다. (천문대는 아는 사람들은 아는 비밀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오늘날 대기 오염과 빛 공해는 우리에게서 별을 앗아갔습니다. 특히 한국은 G20 중 이탈리아에 이은 빛 공해 2위 국가입니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흔히 보았던 은하수를, 이제 맨눈으로 본 이들이 거의 없는 시대가 된 것이죠.

 

바오니스(Vaonis)와 유니스텔라(Unistella)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들은 모두 최신 광학기술을 이용한 개인용 망원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별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나 보던 성운, 성단, 다른 은하를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망원경에서는 실제 별에서 출발한 빛이 렌즈를 통과해 반사되거나 굴절되어 우리의 눈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적어도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이 별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감격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바오니스의 스텔리나 &#169;이효석

반면 새로운 망원경에서는 렌즈를 통과한 빛이 디지털 카메라에 쓰이는 CMOS* 이미지 센서에 도달합니다. 네, 이들 망원경은 사실상 디지털 카메라와 같습니다. 그저 사진을 찍어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CMOS 이미지 센서를 이용해 이들은 빛을 증폭시켜,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장면들을 보게 해 줍니다. 문제는 어떻게 보여주느냐겠지요.

* Complementary metal–oxide–semiconductor. CMOS 이미지 센서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저장해 주는 센서를 말한다.

 

스텔리나는 아래 사진처럼 아예 이미지 처리를 한 영상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전송합니다.

&#169;바오니스

물론 고성능 센서와 이미지 처리 기술에 의해, 맨눈이나 소형 망원경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래와 같은 별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니스 제품으로 찍은 오리온자리 게성운 &#169;바오니스

여기서 처음 이야기한 어색함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것이 과연 실제 별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망원경의 방향을 바꾸면, 영상도 바뀌고 내가 원하는 밤하늘의 대상을 그때그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별 사진을 보는 경험은 구글에서 그 사진을 검색해서 보는 경험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심지어 구글에는 위성 궤도에서 허블 망원경이 찍은, 훨씬 더 선명한 사진들이 있는데 말이지요.

유니스텔라의 망원경 &#169;이효석

유니스텔라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들도 동의한다고 답합니다. 비록 이들 역시 CMOS 이미지 센서로 영상을 기록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신 망원경 옆에 위치한 아이피스(eyepiece, 접안렌즈)를 통해 직접 눈을 대고 그 영상을 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유니스텔라 망원경의 아이피스 &#169;유니스텔라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오니스처럼 편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는 디지털 영상을 굳이 눈을 아이피스에 밀착해 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어떤 문제를 가리고자 다른 불편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인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문제의 본질은, 이들 제품이 보여주는 것이 별에서 출발한 바로 그 빛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로 이미지 프로세싱을 거친 영상이라는 데에 있고요.

유니스텔라의 아이피스로 보게 되는 장면 &#169;유니스텔라

두 제품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나은가가
아니었습니다

아날로그 망원경, 곧 기존 업계는 시장의 관점에서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기술은 발달할 만큼 발달했고, 가격 또한 내려올 만큼 내려왔습니다. 새로운 업체가 들어가기 힘들 뿐 아니라 시장의 규모 또한 정체되어 있지요.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적어도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기술의 개선 가능성 또한 존재하지요. 즉, 아이피스든, 스마트폰이든 실제로 별을 보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한 경험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또한 바뀌겠지요.

 

두 회사는 기술적으로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시장에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단지, 지금이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적절한 시점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답은 시간이 말해주겠지요. 저도 궁금하네요.

(전체 내용은 최종 리포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신비한 제품사전 @CES 2018]

 

기술을 연구하고 사업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 테크 트렌드 전문가인 이효석 저자가 1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CES 2018에 다녀왔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CES에 있는 모든 제품들을 발품 팔아서 보고 왔습니다. 한국의 기존 매체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혹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제품의 사전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