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가족이 이렇게 됐을까?

Editor's Comment 

모든 이들이 조직을 사랑하고 동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꿈꿉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꿈을 실현한 회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가족 같은 회사'를 지향하는 LUSH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한주희 저자의 'MY LUSH LIFE - 이상한 회사의 앨리스' 리포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월 16일(화)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Rawpixel/Unsplash

우리는 스포츠팀이지, 가족이 아니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가 조직 문화에 관해 남긴 말입니다. 다시 말해, 회사 구성원은 프로 축구팀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그는 회사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 가족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회사 생활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하길 원하는 이들은 '가족 같은 회사'를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관련 기사: 'Your Company Is Not a Family' (Harvard Business Review, 2014.6.17)

 

많은 회사가 사내 분위기가 '가족 같다'고 내세우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가 족같은 회사'라 띄어 쓰며 비꼴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니까요. 하물며 하상욱 시인은 이런 시를 짓기까지 합니다.

어쩌다
가족이

이렇게
됐을까

- 하상욱 단편 시집
「가족 같은 회사」 중
그럼 러쉬코리아는 가족 같은 회사일까요? 이 질문에 어떤 동료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가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고 정정해주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바로 동의했습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지향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가족과 똑같이 동료들 간의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찌 됐든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라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러쉬코리아 사무실 전경 ©한주희

누군가는 사생활까지 함께 하는 조직의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정서적 안정과 보살핌을 주는 가족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저는 러쉬코리아야말로 바로 '가족 같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러쉬코리아는 임직원을 '해피 피플'이라고 부르며, 가족같이 배려하고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러쉬코리아가 지향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무엇인지 소개하겠습니다.

회사에서 먹는 아침식사, '얼리버드 밀'

러쉬코리아의 아침식사 제도 '얼리버드 밀'은 조금 독특합니다.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회사는 많습니다. 하지만 한 명이 전담해서 직접, 정성스럽게 아침을 선물처럼 준비하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러쉬코리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빵 혹은 밥을 준비해주는 친구, 비타민 대리*가 있습니다. 비타민 대리는 '얼리버드 밀'의 탄생 비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러쉬코리아 임직원은 서로 닉네임을 부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발행될 프롤로그를 참조해주세요.

처음엔 지각을 없애자는 취지였어요. 늦게 오는 사람에게 경고를 하기보다, 일찍 오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대표의 뜻이기도 했고요. 

다시 말해, '얼리버드 밀'은 9시 이전에 출근하는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인 셈입니다.

러쉬코리아의 아침식사 제도 '얼리버드 밀' ©한주희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식사를 준비하고 내놓는 과정입니다. 피플 케어(People Care) 담당자인 비타민 대리가 직접 빵을 엄선해 구입하고, 가끔은 그녀가 직접 밥을 해 주먹밥을 정성스러운 손길로 꾹꾹 뭉쳐줍니다. 중앙일보 기자가 취재를 왔다가 왜 회사에 밥솥이 있냐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해피 피플'들은 대답합니다.

네, 맞습니다.
러쉬코리아는
함께 밥을 먹는 회사입니다

따뜻한 빵(혹은 밥)을 먹어 본 직원이라면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밥 정'에 녹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헐레벌떡 출근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하면 일종의 애사심이 생긴다고 할까요?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87%가 '회사에서 아침을 챙겨준다면 먹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침 식사 시간은 오물오물 밥을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 관련 기사: '직장인 87%, '회사제공 아침식사, 챙겨먹을 것'' (베리타스 알파, 2017.8.4)

아이와 반려동물이 공존하는 일터

회사 사무실에 아이나 강아지까지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종종 대기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강아지들끼리 사무실을 운동장 삼아 서로 뛰어다니면서 놀던 날도 있습니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직원들이 있어, 임시 공휴일이나 징검다리 휴일 같은 상대적으로 직원 수가 적은 날에만 비공식적으로 반려동물이 함께 출근합니다.

사무실을 방문한 '호두' ©바이올렛

아이들의 사무실 방문은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가 한 번 회사를 방문하면 해피피플 모두가 하이톤이 됩니다. 아이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친근감 지수는 본능적으로 올라가게 되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24일에는 한 친구가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삼삼오오 '하윤이'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 말을 걸고, 배꼽을 누르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서먹했던 분위기도 잠시, 아이가 웃을 때마다 모두의 입꼬리는 자동반사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무실에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에너지를 꼬마 친구가 충전해주고 갔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육아 문제를 그 어떤 다른 회사보다 편하게 의논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회계팀의 한 팀장은 "가족 같은 분위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집안 문제나 아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동료의 아이나 반려동물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꼭 안부를 묻게 되더군요. '일하는 엄마'인 동료의 경우, 아이가 아프면 잠도 설치고 회사에서도 걱정을 하기에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제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함께 걱정하는 마음은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업무 효율을 따지는 회사라면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업무로 묶인 사이에 굳이 사생활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공간은 무엇보다 '팀워크'가 발휘되는 공간입니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서
협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성원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파티를 열어주는 문화도 독특합니다. 매달 말이 되면 알록달록 고깔모자 쓰고(조금 민망하긴 합니다), 케이크와 간식을 나누며 서로의 탄생 달을 축하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혼식'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5년 이상 근속한 임직원이 독신을 선언할 경우, 축하 파티를 진행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브랜드 에틱스(brand ethics) 팀의 존 대리였습니다. 5마리 고양이의 아빠이자, 열렬한 캠페이너이기도 한 그를 위해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축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관련 기사: '독신 선언한 직원에게 '축의금'과 '휴가'를 주는 회사가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17.6.1)

 

또한, 러쉬코리아는 독신인 직원을 배제하기보다, 오히려 혜택을 줍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직원 복지가 결혼 축의금, 출산, 자녀 돌, 자녀학자금 등 기혼자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러쉬코리아는 2017년 6월부터 독신을 선언한 직원들도 10일의 달콤한 휴가와 축의금을 받을 수 있는 복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독신 선언 후 결혼을 하게 되면 축의금을 반납해야 하는가, 이를 악용하는 직원들도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 섞인 질문도 많았지만, 다행히 서로 믿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그런 사례는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첫 번째 비혼식 파티 ©허니/LUSH

러쉬의 문화에서 '가족 같은 회사'를 다시 생각하다

하지만 이런 끈끈한 회사 분위기가 저도 처음부터 편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러쉬코리아의 면접을 모두 통과한 후 입사가 결정되었을 때, 함께 할 동료들과의 첫 상견례 자리가 있었습니다. 남자 친구가 있는지, 결혼 계획은 있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등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솔직히 그때 저는 입사를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다시 고민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회사를 사생활과 철저하게 구분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간을 빌려주고, 이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곳으로 회사를 정의한 것입니다.

 

전 직장에서도 입사 초기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디 사세요? 결혼은 하셨어요? 남자 친구는 있으세요?

흔히 묻는 '3대 질문'에 영혼 없이 대답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피로감이 엄습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사적인 질문에 대답해야하는 한국 사회가 싫었습니다. 누군가의 사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무례함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보스였던 실장에게 이런 불편함을 호소하자, "한 과장,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이잖아. 친해지고 싶은 표시라고."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 분은 저를 평범하지 않은 부하직원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반대로 러쉬코리아에서는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팀장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 의식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했습니다.

친해지기도 전에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지금의 저는 옛날처럼 민감하지 않지만, 순수하게 저의 과거 경력, 가족 관계, 결혼 여부에 관해서 묻는 친구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적당하게 둘러대게 되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회사죠.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팀장은 자유롭고도 수평적인 조직 문화, 다양한 의견이 정신없이 오가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에 처음엔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치로 말하자면, 극우파에서 극좌파로 넘어온 느낌이라며 웃었습니다. 남중, 남고, 공대, 남성 중심의 기업에서 1년 전 이곳으로 넘어온 그는 아직은 덜 유연하지만, 그래도 제법 회사의 분위기에 녹아든 것 같습니다.

 

일상을 가족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공유하다 보니 카톡도 밤낮없이 울려댑니다. 뉴스나 유튜브 링크도 공유하고, 점심 메뉴도 정하고, 서로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회의 시간을 정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주말과 정해진 업무 시간 외의 시간입니다. 퇴근 후 SNS 등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하는 소위 '돌발 노동' 제한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대선 후보도 있었습니다.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업무가 많아지면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게 됩니다.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회사생활과 사생활을 구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이유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회사에서나 긴급 상황은 있습니다. 브랜드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이나 영국 본사와의 긴급한 의사 결정(시차가 발생) 등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단, 이 역시 임직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고객과의 최접점인 매장의 근무시간은 밤에도 주말에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가령 팀장 이상이라면, 매장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는 퇴근 이후에도 감수해야 합니다. 매장에서 일어난 이슈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본사에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점이 다른 화장품 회사와 러쉬가 다른 점입니다. 또한 전 세계 어느 러쉬를 가더라도 매장 중심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셋째, 사생활과 회사생활을 엄밀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업무시간 외, 특히 주말에 카톡을 하는 것은 조심합니다. 최소한으로 하려고 합니다만, 누군가 시험이라도 하듯 입이 근질거려서 말을 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는 원칙과 예외 사항에서 현명하게 줄타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배려하고 동료를 가족처럼 챙기는 조직문화. 이 두 가지 토끼를 잡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라 하더라도, 이를 목표로 삼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요. 이것이야말로 '가족 같은 기업'인 러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목표가 아닐까 합니다.

 

[MY LUSH LIFE-이상한 회사의 앨리스]

 

경직된 기업문화에 지친 사람들에게 LUSH의 사례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시스템보다 '사람'을 외치는 LUSH의 행보가 독특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주희 저자가 직접 LUSH에서 일한 1년 반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아주 특별한 기업 문화를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