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지의 내 마음대로 쓰는 자소서

Editor's Comment

'우리들의 젊은 뇌를 팝니다 -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리포트의 세 번째 미리보기 글입니다. 이번에는 구현모 저자에 이어, 김혜지 저자의 프롤로그를 발췌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지는 않지만,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혜지 저자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엿볼 수 있습니다. 김혜지 저자는 구현모 저자와 함께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서 청년과 기성세대 간 틈을 좁히기 위한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될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이번 리포트에서 만나보세요.

리포트 전문은 8월 18일(금) 오후 6시까지 기간 한정 할인 가격에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자기소개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단어 하나라도 줄여야 직성이 풀리는 20대들은 자기소개서를 '자소서'라 부른다. 정해진 글자 수로 틀에 박힌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는 자소서가 싫어 취업을 때려치운 적도 있었는데, 다시 자소서라니.

 

나에게 자소서는 마치 요즘 유행하는, 사회의 '불확실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는 가끔 당신 딸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비정규직에, 많지 않은 월급마저 월세로 때려 박고 있으면서도 몸에는 글자와 그림을 새기고, 1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딸, 엄마에게 그런 딸은 당신과는 다른 대책 없는 '요즘 애들'이다. 엄마는 내가 하는 저축을 집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언젠가 갈지도 모를 세계 여행을 꿈꾼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 그중의 으뜸이 바로 여행지에서 마시는 맥주이니라. ©김혜지

나는 '꺾인' 20대 여자다. 선거 때마다 붉게 물드는 TK에서 태어나 자랐고, 가부장제 짙은 문화에 고통받다 기를 쓰고 대구를 탈출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왔다.

 

또한 나는 여느 비수도권 출신 20대처럼 월급의 4분의 1을 주거 비용에 쓰며 주거 문제에 허덕이고 있다. (외할머니도 알아주는) 큰 기업에서 일하지만, 회사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비정규직에 20대 평균 임금 정도를 받으며 그나마 안도한다.

그래도 충성충성충성^^7 ©김혜지

텔레비전 대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며, 착샷*이나 리뷰 사진을 보기 위해 네이버가 아닌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를 검색한다. 모든 결제는 휴대폰 하나로, 공인인증서는 어디에 뒀는지도 모른다. 패드 생리대 대신 생리컵과 탐폰을 쓰며,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 대신 홑겹 브래지어나 노브라로 거리를 다닌다. 섹스와 자위, 오르가즘 이야기가 부끄럽진 않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옷을 구매하며 내 삶의 지향성을 몸에 새긴다.

* 착용 사진. 옷, 액세서리 등을 착용하거나 입고 찍은 사진의 인터넷 용어

엄마에게 또 등짝을 맞았다. ©김혜지

타인에게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대신 "애인 있어요?"라고 묻는다. 결혼은 선택, 동거는 필수, 아이는 내 인생에 절대 없다. 돈을 버는 이유는 여행을 위해, 술 먹고 놀기 위해서도 있다. 주변의 혐오 발언에는 단호하게 맞선다.

나는 왜 내가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성격이,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딱 잘라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이런 사람이 됐다.

나의 시대, 시대와 나

물음표가 많았다. 왜 고등학교 수련회 때 여자아이들만 밥을 차려야 했는지 의아했고, 왜 내 레즈비언 친구 커플은 미래에 결혼할 수도, 통신사 가족 할인을 받을 수도 없는지 궁금했다.

 

왜 초등학생 때 남자애들은 '(장)애자'라며 서로를 놀렸던 걸까. 왜 어머니는 맞벌이면서도 모든 집안일을 혼자 해야만 했을까. 왜 나는 어릴 때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 성공한 삶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그렇게 서울에 왔더니 왜 나는 최저 주거조건에도 미달하는 집에서 살아야 했을까.

 

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이만큼이나 나는 걸까. 왜 아직도 한국은 서로를 개인이 아닌, 늘 집단으로 이야기하는 걸까. 왜 결혼하면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의 집 조상 제사를 지내야 하는 걸까. 왜 대학 수업에서 교수님께 자유롭게 질문하지 못하는 걸까. 왜 아직도 학교와 직장 곳곳에 군대 문화와 위계질서가 남아있는 걸까.

 

일상의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지는 않지만,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살다 보니' 그저 궁금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가며' 그 불합리와 마주하기로 했다. 낙관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살아가려는, 스스로 세운 삶의 지침에 따라.

요즘 것들에게 흔한 가치소비 ©김혜지

그래서 핏(fit)하지 않은 청년들의 인터넷 웹진 <미스핏츠(Misfits)>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즈음 주변 어른들이 청년들과 함께 살아가는 현재와 부모 세대가 바라보는 미래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전제도 달랐고 가치관도 달랐으며 추구하는 삶의 방식도 달랐다. 나의 세계 중 일부는 그들의 세계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으니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어른의 세상에서
어른의 입으로만
청년 이야기가 오갔다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레 청년 당사자들의 담론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곧이어 세대갈등이 이야기됐다. 어지럽게 몰아치는 담론 속에서 나는 친구들과 미스핏츠 이후를 꿈꿨다. 더 효과적인 방법, 더 영향력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필터 없이 담느라 이름마저 발칙한 <청춘씨:발아>, 그리고 다가올 밀레니얼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필리즘(Pillism)><ALT>까지.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영상을 만들었다.

ALT의 흔한 스튜디오 촬영&#160;&#169;김혜지

여전히 몇 꼰대들에겐 삽질처럼 보일 저 작고 단단한 매체들로 요즘 것들, 즉 미래 세대들이 살아갈 미래와 삶의 방식을 이야기했다. 불만에 가득 차 무기력하게 외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과 나는 다르다며 악을 쓰는 게 아니라, 나의 그리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이야기했다. 더 많은 우리가 더 오래 마주할 미래. 싫든 좋든 반드시 이런 미래는 올 테니까. 이런 삶의 방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 미래일 테니까.

 

나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긴 논쟁이 붙으면 인터넷 어디선가 주워 들은 띵언*을 읊어준다.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다 도저히 요즘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 못 하겠으면, 그걸 엄마가 이기려고 들 게 아니라 '아, 이게 세상이 변화하는 거구나'하고 얼른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고 좋은 어른이라고.

* '명언'의 인터넷 용어

 

여기서 핵심은 앞 구절에 있다. 요즘 것들과 '이야기'하는 것. 청년 담론에서 청년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직접 듣고 그들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 그래서 당신과 요즘 것들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는 것.

 

나는 미래 세대를 대표하지도, 20대의 다수에 속하지도 않는다. 20대 사회 역시 온갖 혐오가 활개 치고, 많은 이들이 경쟁에서의 생존을 위해 정의로움을 고민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많이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간의 차이도 크다.

우리는 어쩌면
남들보다 첨단에 있고
남들보다 조금은 더
미래를 고민한다

함께 글을 쓰는 친구 현모가 말했다. 현모의 말대로 이런 '우리'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엄마와 끊임없이 대화하니 우리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세계가 존재함을, 그 세계의 일부를 엄마에게 인지시켰다. 이 리포트에서도 나는 그저 이런 요즘 것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랜 시간에 걸쳐 멀리 떨어진 엄마에게 휴대폰을 통해 이야기하듯 나의 세계와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살아갈 미래와 우리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도.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니까.

 

 


[우리들의 젊은 뇌를 팝니다 -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요즘 애들은 뭘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구현모 저자와 김혜지 저자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전합니다. 8월 18일(금) 오후 6시까지만, 기간 한정 할인 가격에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