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유모차를 끌 수 있는 부모들을 위해

헬싱키에서는 한겨울에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이 됐든, 도심 한가운데가 됐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엄마가 유모차를 끄는, 아주 단순하고 단편적인 한 장면일 뿐이지만, 이러한 장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모차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는 생각보다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일단, 핀란드에서는 유모차를 가지고 타면 버스비가 무료다. 우리나라 버스비를 생각해서 1~2천 원 안 낸다고 생각해도 부담이 덜한데, 헬싱키 시내버스는 요금이 1회 2.90유로 (약 4,000원)라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이득이다. 물론, 버스비가 비싼 만큼 1회권을 끊는 현지인은 거의 없다. 정기권을 충전해서 할인 혜택을 받는 게 보통이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요금을 내라고 해도 이동이 불편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다. 헬싱키 버스는 전부 저상버스다. 앞문으로는 턱을 올라가야 하는 버스도 간혹 있지만, 뒷문에는 모두 턱이 없다. 유모차를 가지고 기다리는 부모에게는 당연히 뒷문을 열어주고, 문 바로 앞에 널찍하게 유모차를 세울 수 있는 지정석이 있다. 보통 때는 접이식 의자를 펴서 앉을 수 있지만, 유모차가 타면 양보를 해주게 되어 있는 자리다. 버스 요금을 낼 필요도 없으니 뒷문으로 타서 뒷문으로 내리면 된다.

엄마도 동등하게 가지는 학습권

아이를 안고 수업에 들어온 엄마가 있었다. 조별로 케이스스터디를 해서 발표를 하는 경영학 입문 수업이었는데, 한 여자가 베이지색 투피스 바지 차림 위에 아기 띠를 맨 채로 앞에 나타났다. 퍽 놀랐지만, 핀란드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는 걸 들은 적이 있어서 애써 감정을 눌렀다. 하지만, 저 멀리서 놀라움을 채 숨기지 못한 누군가의 탄성이 옅게 들렸다. '와.' 그 탄성은 나의 탄성이기도 했다.

 

여러 명의 조원이 나눠서 하는 발표라서 그녀의 분량이 길지는 않았다. 그녀는 몸을 좌우로 흔들어가며 발표를 이어갔다. 그때는 영문을 모르고 특유의 버릇인가 했는데, 아이를 기르는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아이가 그녀의 품에서 잠들어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가 목소리를 죽이거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보통 학생과 똑같이 여유롭고 당당하게 발표를 했다. 어느새 아이를 안고 있다는 점도 신경 쓰이지 않았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했다.

엄마와 아빠가 공평한 '낮의 집'

우리가 살았던 집 앞에는 만 3-5세 유아로 보이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päiväkoti-나는 어린이집을 의미하는 이 단어도 좋다. päivä는 낮, koti는 집으로 아이들에게 '낮의 집'이 되어준다는 데서 따뜻함이 느껴진다.)이 있었다. 3층 우리집에서는  창밖으로 어린이집이 훤히 내다보였다. 놀이터에서 바깥놀이를 할 때나 어린이집에 등하원 할때, 아이들 목소리가 새어들어오면 창가에 붙어 앉아 한참동안 내려다 보곤 했다.

 

 

정확하게 시계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니, 벌써?'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만한, 이른 오후부터 부모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마 오후 세 네 시쯤이었으리라. 핀란드에서는 유연근무제로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이미 글로 배웠던 '복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 비단 이 뿐은 아니었는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늘 놀라웠다.

 

엄마와 아빠가 '부, 모'로서 동등한 비중으로 아이의 하원을 맡는다는 점에도 그랬다. 일일이 엄마와 아빠의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딱히 그래야겠단 마음이 들지 않을 만도 했던 것이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서는 아빠의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하나 없었다. 아빠가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도, 데리고 나온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엄마들 사이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그걸 보고 있는 동안은 이상스럽다는 점을 딱히 느끼지도 못했다.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

2014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발간한 <어머니 보고서>*는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에 핀란드를 1위로 선정했다.

*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발행한 2014년 <어머니 보고서>는 이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면, 거기다 핀란드가 1위로 꼽혔다고 하니, 엄마를 위한 육아 정책이나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 같은 풍요로움을 기준으로 측정되었을 것 같지만, 그보다는 보다 더 근본적이고 생존에 직결된 지표를 근거한 통계다.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는 다섯 가지 지표를 종합하여 매긴 순위다. 지표에 포함된 출산 시 모성 사망의 위험률, 영유아 사망률, 정식 교육을 기대할 수 있는 햇 수, 1인당 국민 총소득(GNI per capita), 정부에서의 여성 참여율은 각각 모성의 건강, 아동의 안녕(well-being), 교육 현황, 경제 현황, 정치 현황을 대변하고 있다.

 

'정부에서의 여성 참여율'은 우리나라도 여전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지표들을 놓고 봤을 때, 이 지표가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정도를 얼마나 잘 측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만하다. 요즘 시대에 웬만하면, 특히 선진국이라면, 교육이나 경제, 그리고 의료 수준이 비슷하지 않을까?

 

애초에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이러한 보고서를 발간한 목적이 높은 순위에 오른 선진 국가들에게 메달을 수여하기보다는 가장 낮은 순위에 이름을 올린 국가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달라는 데 있기에 그들에게 특별히 결핍한 요소들을 지표로 삼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의외로 순위를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이름만 들어도 건강하게 느껴지는 유럽 국가들이 쭉 나오다가 30위에 우리나라, 31위에 미국이 보인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도 순위가 떨어지는 게 의아해서 지표를 하나씩 뜯어봤다.

 

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우리보다 월등히 우세하지만, 의외로 모성 사망의 위험률이나 영유아 사망률이 우리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나름대로 의료민영화로 인해 겪는 빈부격차가 엄마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포착한 지표라 할수 있다.

 

핀란드는 다섯 가지 지표 두루 높은 수준을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10위권에 든 다른 국가들은 어느 한 지표에서는 상당히 낮은 결과가 나타나는 반면, 핀란드는 어느 하나도 절대적으로 우세한 나라가 아니지만, 다섯 가지 지표 모두 상위 15위 안에 든 유일한 국가다. <어머니 보고서>에서는 핀란드가 1위에 선정된 비결을 여기에서 꼽고 있다.

 

30위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이미 예상한 바와 같이, 핀란드의 경제, 정치 수준이 우리보다 현저히 높다. 국민 총소득은 우리의 2배를 넘고, 여성의 정치 참여율은 우리의 3배에 가깝다. 교육에서만큼은 늘 핀란드와 한국이 함께 언급되는 만큼 교육 지표는 핀란드와 똑같다. 영유아 사망률도 핀란드는 2.9%, 우리나라는 3.8%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건강에서 꽤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퍽 놀랍다. 우리나라 모성 사망 위험률이 핀란드의 3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생명이 위험한 산모를 일상적으로 경험한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핀란드 의료복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다. 이 정도의 통계와 숫자만으로는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의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는다. 위에서 이야기한 사뭇 낯선 육아의 풍경에서부터 핀란드에서 2년 동안 학교에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관찰한, 보다 더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모습들을 근거로 해서 <어머니 보고서>가 미처 측정하지 못한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를 뒷받침하려고 한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그저 아이를 시선에 담는 게 좋아서 핀란드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종종 바라보고 있기는 했지만,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그 풍경을 위해 사회가 얼마나 세심한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베이비 박스'나 '핀란드 교육' 같은 솔깃한 키워드들보다는
핀란드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훨씬 아쉬웠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은 육아정책이나 교육현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치와 통계가 측정할 수 없는 일상의 풍경들을 통해 엄마에게 좋은 나라의 청사진을 그려보고자 한다. 일상에 깊이 배어들어 있는 생활방식들은 핀란드 사람들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자, 결과물이기도 하다. 핀란드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배우는 생활 방식들을 하나씩 톺아보며, 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엄마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를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