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떤 투자자였나

Editor's Comment

'2017 버크셔 해서웨이 - 투자가의 해석을 더하다'는 황준호 투자가와 이기원 채권 펀드매니저가 2017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Q&A 세션 중심으로 정리하여 만든 리포트입니다. 자본가들의 우드스톡'이라 불리는 3일 간의 자본주의 축제에서 2017년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무엇을 말하는지 한국인의 관점에서 해석한 시사점을 리포트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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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성공을 몇 가지 대담한 결정과 철학으로 압축해서 설명하곤 하지만 그것으로 성공을 재현하긴 어렵다. 워런 버핏(이하 버핏)의 성공 비법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던 사람 대부분은 오히려 투자로 성공하는 것을 포기했다. 지인들은 직접 투자하기보단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가 되었다. 버핏의 첫째 아들은 농사를 짓고, 둘째 아들은 작곡가가 되었다.

 

버핏의 명성과 부(富)는 매력적인 전리품이지만, 그의 성공을 가까이서 접한 이들은 투자라는 전쟁의 고통스러운 시간도 보았다. 이것이 투자자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찰리 멍거와 로즈 블럼킨 등 투자와 사업에 특화된 변종만이 버핏 곁에 남아 든든한 동업자가 되었다.

버핏 나이와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의 상관관계 ©Berkshire Hathaway Annual Report

버핏의 성공 이면엔 위험과 실패가 있었고, 은퇴를 위해 부를 쌓는 이와 달리 버핏은 충분한 부를 쌓은 이후에도 누구보다 오랜 시간 투자의 전장을 지켰다. 그 결과 그의 부는 35세 이후 8천 배, 50세 이후 2백 배 이상 증가했다. 버핏의 부처럼 가파른 성장의 또 다른 주인공이 있는데 우리 자신, 인류이다. 인류와 버핏의 성장 이면엔 성공의 진실이 감춰져 있다.

 

교과서는 인류의 성공을 ‘직립보행과 큰 뇌 덕분에 생태계의 최정점에 올라서게 되었다’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인류의 과감한 도전은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생존을 위협하는 비용이 들었다.

 

인류는 2백만 년 전 이미 생각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생태계의 최약체로 보냈다. 석기시대의 돌 도구는 동물을 사냥하는 용도가 아니라 포식자가 남긴 사냥감의 뼈에서 골수를 빼내기 위한 용도였다. 당시 인류가 썩은 고기를 먹는 포유류보다도 먹이사슬에서 아래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커진 뇌와 직립보행은 생존 능력을 저하시켰다. 다른 포유류에 비해 6배 이상 커진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휴식 상태에 에너지의 25%를 사용하는 탓에 대부분의 시간을 식량을 찾는 데 쓰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육의 퇴화로 이어졌다. 커진 뇌를 가진 머리를 지탱하기 위해 목과 허리에 가중된 부담은 현재 인류의 고질적인 통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출산이었다. 직립 보행을 하기 위해 좁아진 엉덩이와 짧아진 산도로 뇌가 큰 아이를 낳으려니 분만 중 사망하는 여성이 급격히 늘었고, 아이의 뇌가 작을 때 출산하는 여성들이 살아남기 쉬웠다. 그 결과, 태어나자마자 생존 능력을 갖춘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류는 그 어떤 종보다 긴 시간 동안 보호를 받으며 성장해야 했다.

버핏의 부처럼 가파른 성장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 인류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기원전 10,000년 약 100만 명에서 2017년 현재 75억 명 이상으로 7,500배 이상 성장했다. ©Wikipedia, Cencus.gov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인류는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인류의 다양한 포트폴리오 중 10만 년 전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목’으로 마침내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능력으로 도구를 발명하기보다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전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체력적으로 더 강력한 다른 종(네안데르탈인)을 상대로도 손쉽게 승리하며 마침내 생태계의 정점으로 올라섰다.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투자자가 될 것인가

나는 14세 때 신문 배달을 하면서 작은 눈덩이를 처음 만들었고, 그 후 56년간 긴 언덕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굴려 왔을 뿐이다. 삶도 눈덩이(snowball)와 같다. 중요한 것은 습기 머금은 눈과 진짜 긴 언덕을 찾아내는 것이다.

- 워런 버핏, 전기 ˹스노볼˼ 중

버핏의 성공은 자신의 전기 제목인 ‘스노볼’처럼 긴 언덕을 찾아 작은 눈덩이를 굴려 온 결과다. 하지만 긴 언덕을 지나오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버핏은 ‘절대 돈을 잃지 않는다’는 그의 제1 투자원칙이 무색하게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파산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특히 사양산업의 중심에 있던 직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대 실패작이었다.

 

자연과 인류 역시 190만 년 동안 생존을 위협하는 비용을 치르며 호모 사피엔스라는 블루칩을 찾기까지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 수많은 포트폴리오를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를 진화의 일부인양 개의치 않았다. 버핏도 자신의 실패작을 투자자의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버핏은 스스로에게 관대한 투자자가 되어 자신이 만든 실패를 삼킬줄 알았기에, 누구보다 긴 투자의 언덕을 걸을 수 있었다.


자연이 단기 투자자였다면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버핏 또한 그렇다. 버핏과 인류의 성공에 담긴 비밀은 교과서의 일반적인 결론이나 버핏의 격언이 아니라 인류와 버핏이 지나온 여정 속에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버핏의 영광스러운 우승 트로피가 아니라 험난한 여정의 발자취로서 의미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 워런 버핏, 2003년 조지아 공대 연설 중

누군가의 잘못을 비난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신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기 위해 쉬운 성공에만 도전해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버핏처럼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조금 무책임하다. 이들은 100%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동시에 실패와 성공의 책임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그 성공과 실패가 자신들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그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도전을 계속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성장한다. 이들이 성공의 이유를 말할 때 “운이 좋았다”고 하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화려한 성공에 이르는 길은 처절하다. 버핏도 못했는데 100% 성공하는 투자를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 역시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실패를 어떻게 대할지는 정할 수 있다. 버핏은 처절한 싸움에서 질 때마다 가장 소중한 투자 대상인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싸우러 나갔다.

 

버핏의 비법을 찾기 위해 간 2016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내게 ‘스스로 어떤 투자자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성공은 성공 요인을 가진 자가 아니라 언제 다다를지 모르는 성공까지의 여정을 견디는 자에게 돌아간다. 나는 투자의 여정을 견디기 위해 조금 더 무책임한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야 나의 실패를 위로하고 다시 싸우러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은 여행길이다. 
그리고 여행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
 

- 모니시 파브라이, ˹단도투자˼

참고 자료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2018 버크셔 해서웨이 리뷰 - 대신 다녀왔습니다]

 

<2017 버크셔 해서웨이 - 투자가의 해석을 더하다>의 이기원, 황준호 저자가 2018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과 주주총회 Q&A를 바탕으로 시사점을 정리하고 해설합니다.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