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공사장에서 홍콩 '중경맨션'까지

Editor's Comment

'도시 브랜딩 - '성격' 있는 도시가 좋다'는 스위스 로잔 호텔학교에서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을 공부한 이유진 저자가 마이애미, 멜버른, 우붓, 두브로브니크 네 도시가 어떻게 매력적으로 성장했는지 도시 브랜딩의 관점으로 살펴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세계 무대의 '엑스트라' 같던 네 도시의 변화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현지인, 관광객, 이민자, 담당자 등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리포트에 담습니다.

본 리포트는
5월 30일 (화) 오후 6시까지 예약 판매 할인이 진행 중입니다. [바로 가기]

홍콩에 처음 간 십여 년 전, '중경맨션(重慶大厦, Chungking Mansions)'이라는 건물을 둘러봤습니다. 항구에서 가깝고 큰 도로에 자리 잡아 관광객이나 상인의 출입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외부는 서울의 옛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처럼 상자 모양에 꼬질꼬질한 창문이 촘촘히 붙어 있었고, 내부는 상점부터 민박까지 미로처럼 얽혀 건물 자체가 하나의 마을 같았습니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1994년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홍콩 거리 &#169;이유진

건물 옆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손 본 지 수십 년은 된 듯한 벽면에 전선줄이 가득하고, 길에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눅눅한 악취가 났습니다.

 

그리고 골목 끝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정면에 페닌슐라 호텔(The Peninsula Hong Kong)이 보이더군요. 손님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인 롤스로이스가 항시 대기 중이고, 유럽 궁전 같은 로비에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즐길 수 있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호텔이지요.
* 영국에서 식사 시간 사이인 오후 3~5시경 다과를 즐기며 휴식을 즐기는 생활 문화 - PUBLY

 

그 골목에서 호텔을 보며 궁금해졌습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저 건물을 볼 때마다 무슨 마음이 들까? 홍콩처럼 고층건물이 밀집한 대도시가 아닌 지역이라면 호화로움을 매일 마주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제가 도시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런 장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도 도시 출신입니다. 처음 접한 도시는 제가 태어난 서울입니다. 열 살까지 자란 마포구 노고산동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인근 대학생들이 주기적으로 데모를 해서 최루탄 연기가 골목을 채우던 동네였습니다. 당시 놀이터가 시위로 분위기가 험악한 파출소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저는 놀이터 대신 주위 공사장에서 친구들과 삽질을 하며 놀곤 했습니다.

 

다음으로 접한 도시는 경기도의 분당 신도시입니다. 놀이터는 깨끗했지만, 놀이터보다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많더군요. 깨끗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도시의 삭막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변호사가 되어 법무법인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건설, 부동산 분야를 제 전문 분야로 선택한 데에는 유년기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린 시절 공사장에서 놀던 추억, 허허벌판에서 신도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본 기억과 더불어 무언가를 지어 올리는 사람, 도시를 만드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었거든요.

 

비록 일은 벅찼지만 건설사, 부동산 개발사 사람들이 좋았고, 중동 지역에 신도시를 만들고 섬에 리조트를 개척하는 등 설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아쉬운 점을 느꼈습니다. 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비즈니스를 모르고는 이야기의 절반만 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 봄,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 학교를 검색하여 스위스 로잔 호텔학교(École hôtelière de Lausanne, 이하 EHL)를 찾았고, 그해 가을 Executive MBA(EMBA)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스위스 로잔 호텔학교


왜 하필 호텔학교였을까요?

 

호텔은 제가 변호사로 일할 때는 의뢰인으로, 여행할 때는 좋은 피난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두려운 일을 겪고 호텔에 숨은 적도 있고, 사람들을 피해 홀로 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EHL은 이름만 호텔학교이지 실은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 전반을 다루는 대학입니다. 환대산업이란 호텔, 관광, 식음료에 이르기까지 '손님을 반기는' 모든 업종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EHL은 100년이 넘는 전통과 그만큼 널리 퍼져 있는 동문, 세계적인 대기업과 졸업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산학 협동으로 유명합니다.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학생뿐 아니라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지원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쉼터가 되는 비즈니스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타인의 절박함을 등에 지고 싸우는 업무를 하다가, 누군가를 반기고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로잔 호텔학교(EHL) 소규모 세미나 중 &#169;EHL Photo

1년의 EMBA 과정 동안 공부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예일 대학의 오픈 강좌를 통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Robert J. Shiller) 교수의 기업 재무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스위스 로잔까지 직접 찾아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실제로 배운 것은 저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알프스를 바라보며 스위스 고급 호텔의 총지배인과 와인을 마시며 접한 그 세계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환대산업 내부자는 어떤 태도와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업계 최고 전문가는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접하고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 사회는 예상대로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고, 그들과 친구, 연인 또는 동료가 되면서 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한편 EMBA 과정을 마치고 엉뚱하게도 미디어 업계에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영어권 미디어 전반에 걸쳐 아시아 여성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아시아 여성을 위한 온라인 매체인 '에이프릴 매거진(April Magazine)'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대한민국에서 사법시험을 보고도 변호사를 그만둔 이유, 호텔학교를 졸업하고 호텔 일을 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달라진 것은 직업일 뿐, 글이나 말로 사람을 돕고자 하는 점에서 저는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행위는 편지를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일과 비슷합니다. 언제 누구에게 닿을지 알 수 없지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하고,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 가치를 느낍니다. 이 글을 쓰는 마음도 같습니다.

'성격' 있는 도시가 좋은 이유


글의 제목에 등장하는 '페르소나(persona)'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쓴다는 의미입니다. 도시 '브랜드' 역시 도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르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의 이미지로 생각해 주세요. 뉴요커(New Yorker)나 파리지엔(Parisian)처럼요. 혹시라도 멜버른 올림픽 마스코트나 인도네시아 관광청의 홍보 자료를 분석할 줄 아셨다면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이 리포트를 통해 바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각 도시의 사람을 바르게 그려내는 것입니다. 흔히 '차가운 도시남녀'라고 말하지만 생명이 없고 서늘한 인상을 주는 것은 건물이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도시를 살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도 키우고 싶은 도시 사람들의 꿈과 욕망, 전략을 짚어내고자 합니다.

 

둘째, 독자들이 자신의 도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를 바랍니다. 도시가 아닌, 자신의 개인 브랜드, 사업체나 동네 브랜드를 키우고자 하는 분들도 리포트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를 선정할 때에는 뉴욕이나 파리처럼 유명한 대도시가 아니라 각각의 매력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도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욱 궁금한 도시를 골랐습니다. 사람이든 도시든 과거 유산에 안주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모습이 더 멋지니까요.

 

아시아, 태평양, 미 대륙, 유럽에서 하나씩 고르고 중동과 아프리카는 아쉽지만 제외했습니다. 제가 응원하는 도시 중 선전(善戰)하고 있는 곳이 없어서요. (야구팀 한화 이글스 팬의 마음이 이럴까요.)

마이애미 + 미술

'마이애미는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히는데 치고 올라온다니 무슨 소리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시에는 여러 모습과 계층이 있습니다. 마이애미의 경제 규모는 급성장했지만 순수미술 등 세련된 문화는 따라잡을 길이 멀어 보였습니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말입니다.

 

한때 시(市)에서 미술 박람회를 열어도 마치 상류층과 어울리려고 하는 어설픈 부동산 졸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마이애미가 어떻게 지금은 중남미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허브로 이미지를 탈바꿈했는지 신기하지 않나요?

멜버른 + 커피

멜버른은 경제와 문화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6년 연속 선정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도시를 뉴욕과 파리처럼 이미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멜버른은 호주에서 역사가 200년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도시입니다.
*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서 진행한 'Global Liveability Survey 2016' 참고

 

유럽에서 갑자기 김치가 유행한들 한국 고유의 식문화를 따라잡을 수 없듯이, 문화는 속성으로 기를 수 없습니다. 멜버른의 커피 문화가 성장한 배경에는 고향의 맛을 느끼려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간절함,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민자의 건강한 열정이 있습니다.

우붓 + 종교/영성

인도네시아 발리 섬 한가운데 있는 우붓은 8세기 전설부터 시작하는 긴 역사를 지닌 도시로 전통 의술이 유명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발리 힌두교의 전통을 지금도 일상 깊숙이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붓 풍경 &#169;이유진

한편 우붓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관광 업계의 관점에서는 단연 새롭게 뜨는 도시입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이던 20세기 초, 유럽 예술가들이 우붓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식민지 시절은 서유럽 사람에게는 로맨틱한 옛날일지라도, 점령당한 현지인에게는 수모와 멸망의 기억입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우붓은 어떻게 서양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도 도시의 지조를 지킬 수 있었을까요? 발리의 다른 해안 도시들이 자본의 힘과 관광 개발에 밀려나는 와중에 말입니다.

 

우붓에는 현지인의 영민함과 왕가의 책임감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공감하고 관심을 가진 도시이기도 하고요.

두브로브니크 + 영화/드라마

두브로브니크를 선정한 이유도 우붓처럼 도시 재건이라는 테마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구시가지의 이면에는 발칸반도 내전의 상처가 있고 관광객을 전혀 볼 수 없던 어두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아가 동유럽에 주목한 것은 개인적 애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 남편은 슬로베니아 사람이고,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헝가리 사람이거든요. 이들을 통해 서구에 대한 제 인식이 얼마나 서유럽에 치우쳤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유럽 근현대사의 아픔이나 민족 정서는 한국과 매우 비슷합니다.


두브로브니크는 이런 동유럽 역사의 부침(浮沈)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때 라이벌인 베네치아와 비교해 볼 점이 많습니다. 특히 관광객과 관광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말이지요.

콘텐츠 목차


앞서 언급한 마이애미, 멜버른, 우붓, 두브로브니크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현지인, 관광객, 이민자, 담당자 등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도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내지만 일반화하여 인용하기는 힘든 내용(일명 '도시 뒷담화')은 독자와의 대화거리로 남겨 두겠습니다. (오프라인 행사를 기대해주세요.) 물론 각 도시의 시민과 독자가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 리포트가 차선의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리포트 목차

1. 서론
- 왜 도시를 브랜딩의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가

2. 마이애미 + 미술
i. 휴양지에 품격을 더하다
  - 인터뷰(예정): 아트 바젤 마이애미 담당자
ii. 미술과 디자인의 도시
  - 미술/디자인을 파는 도시: 디트로이트, 치앙마이 등

3. 멜버른 + 커피
i. 호주식 카페 문화의 원산지
  - 인터뷰(예정): 멜버른 커피 엑스포 담당자
ii. 도시를 먹고 마신다는 것
  - 다이닝 관광과 젠트리피케이션

4. 우붓 + 종교/영성
i. 신들의 섬에서 마음의 평안을 사다
  - 인터뷰(예정): 우붓 영적 투어 마케팅 담당자
ii. 성지 순례에서 종교 관광까지
  - 종교와 상업의 결합: 티벳 라사, 예루살렘 등

5. 두브로브니크 + 영화/드라마
i. 드라마로 대박 난 지중해 도시
  - 인터뷰(예정): 두브로브니크 내 여행사 담당자
ii. 영화 속 그 도시
  - 도시, 지역 자체의 상품화

6. 결론
- 한국의 도시에 대한 시사점


상세 목차는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리포트는 5월 말 발행 예정이며, PUBLY 사이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도시 브랜딩 - '성격' 있는 도시가 좋다]

왜 도시를 브랜딩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까요? 건설, 부동산 전문변호사로 일하다가, 스위스 로잔 호텔학교에서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을 공부한 이유진 저자가 도시 브랜딩의 관점으로 '성격' 있는 네 도시를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