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Focus: 본격 글로벌 경기확장의 서막인가, 일시적 리플레이션인가?

Editor's Comment

2016년 가을 '한국 조선업 40년 역사로 읽는 글로벌 경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강대권 저자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주요 이슈를 깊고 넓게 살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PUBLY와 함께 시작합니다. 외신 경제 기사를 혼자 읽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현직 펀드매니저의 관점을 빌어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이 글은 유료 리포트와 동일한 구성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Trend Focus'와 'Issue Focus'로 구성되는 '딥 인사이트 리포트'는 구매자만 볼 수 있으며, 4월 20일부터 격주로 총 6회 발행할 예정입니다.

'딥 인사이트 리포트'는 4월 6일 오후 6시까지 오픈 기념 할인 가격으로 구매하실 수 있고, '한국 조선업 40년 역사로 읽는 글로벌 경제' 리포트를 구매하신 분들을 위한 특별한 혜택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구매하러 가기]

 

전지구적 경기 회복

 

답답한 국내 상황에선 잘 느껴지지 않지만, 2016년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는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소비자심리 지표나 기업들의 경기실사지수 등은 과거 호황기 수준에 도달했다.

 

주가, 소비자심리, PMI(Purchasing Managers' Index, 제조업 분야의 경기동향지수), 물동량 등 글로벌 경기 관련 지표들의 최근 추이 ⓒ강대권 (source: Bloomberg)

 

3월17일자 이코노미스트의 표제 기사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기 회복 양상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전반의 경기 확장이 나타나고 있다
The global economy enjoys a synchronised upswing | The Economist (2017.3.17)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 이머징마켓 등 모든 지역에서 경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 경제는 유럽재정위기, 이머징마켓 경착륙 우려, 유가 급락, 중국의 과도한 부채, 금리 인상에 대한 공포 등 많은 악재들 속에서 답보해왔다. 그러나 최근 리스크 요인들이 완화되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고 투자도 증가하는 등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정상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3월 들어 유가가 10% 하락하고 중국의 과도한 부채에 대한 우려나, 선진국 경제의 낮은 생산성 증가는 여전하다. 경기회복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통화 정책 및 재정 정책의 지속적이고 적절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서 포퓰리스트들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위험한 현상이다. 고립주의 포퓰리즘*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감이 경제 성장의 흐름을 해칠지도 모른다. 

* 양극화로 인한 대중의 박탈감과 피로감의 원인을 국가 외부로 돌려, 보호무역/반이민/반자유화 등 자국이익우선주의를 주창하는 것.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표출케 하고 사안을 단순화시킴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으나, 무조건적인 자국이익우선은 시장교란, 국가간 분쟁, 재정부실화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코노미스트 표제 기사에서 징크스를 발견하는 경우가 꽤 있다.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나왔을 때 오히려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반대로 비관적인 기사가 나왔을 때는 긍정적인 반전으로 이어지는 등 이코노미스트의 과거 표제 기사들은 추세가 바뀌기 직전 '뒷북을 날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대표적으로 브라질에 대한 기사가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등장할 때마다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었다

2009년 11월 이코노미스트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그림을 표지에 게재하며, 브라질 경제의 호황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 시점은 정확히 브라질 경제가 전성기를 지나 모멘텀을 잃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이후 브라질은 극심한 정치적/경제적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4년이 지난 2013년 가을, 이코노미스트는 솟아오른 예수상이 추락하는 그래픽을 표지에 게재하면서 '브라질 경제의 강점들이 사라지고 미래가 우울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이 역시 타이밍이 어긋나 기사가 나온 이후 브라질 경제는 일시적으로 안정되었다.

 

유가 급락으로 브라질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2016년 1월, 이코노미스트는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대통령의 얼굴을 표지에 올리며 '브라질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때는 브라질 경제의 '진짜 바닥'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이 기사가 나온 시점부터 현재까지 브라질의 주가지수는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60% 넘게 올랐다.

 

브라질 주가지수(BOVESPA)와 이코노미스트의 브라질 관련 표제기사 ⓒ강대권 (source: Bloomberg)

 

브라질 외에도 많은 '뒷북'들이 있다. 아래 이코노미스트 표제 기사와 관련 지수들의 추이를 보자.

 

2011년 이코노미스트가 제2의 기술주 버블을 경고한 뒤 전 세계 기술주 지수는 2배 올랐다. ⓒ강대권 (source: Bloomberg)

2012년 이코노미스트가 스페인 경제 위기를 경고한 직후 스페인 경제는 회복기로 진입했다. ⓒ강대권 (source: Bloomberg)

2012년 이코노미스트가 인도 경제가 길을 잃었다고 한 뒤로 인도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다. ⓒ강대권 (source: Bloomberg)

 

이런 뒷북, 다시 말해 '어긋난 타이밍'은 이코노미스트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보수적이고 대중적인 경제잡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게재되는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사안일 수밖에 없다. 경제 상황이라는 것이 돌고 도는 것이다보니 어떤 트렌드가 확실해 보일 때는 그 트렌드가 반전되기 직전일 때가 많다. 이런 특성상 이코노미스트의 표제 기사는 미래 예측의 성격보다는 '역발상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이코노미스트에 세계 경제가 활황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럼 이제 위의 사례들처럼 세계 경제의 회복 모멘텀이 다시 위축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세계 경제가 개인적인 경험 법칙대로 움직일리는 없다. 또한 '이코노미스트 표지로 알아보는 타이밍' 따위야 그냥 재미삼아 드리는 말씀이니 흘려 들으셔도 좋다. 다만, 지금은 앞으로의 세계 경제가 회복 흐름를 지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 어느 때보다도 세심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아주 중요한 타이밍이긴 하다.

 

 

리플레이션 효과의 원동력이 사라지고 있다.

 

불과 1년 전, 2016년 초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가지수는 연일 하락했고 지금과는 정반대로 우울한 분위기였다.

분위기 급반전은 '유가'와
그로 인한 물가 변동 때문이다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원유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유가는 전 세계 모든 상품의 가격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가격지표 중 하나다. 2014년 가을부터 2년 동안 유가는 4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다. 그리고 물가 또한 유가와 동반하여 하락하기 시작했다.

 

물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더 싸게 많이 소비할 수 있으니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유가 하락에서 비롯된 물가 하락, 즉 디플레이션 압력은 다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선 당연하게도 물가 하락은 부채 부담을 가중시킨다. 담보의 가치가 줄어들면 불안한 은행은 자금을 회수하려 하고 기업은 파산 압력에 놓이게 된다. 두 번째로 물가 하락은 제조업체와 상인들이 재고를 쌓지 않게 해서 가격 하락 이상으로 실물 수요를 둔화시킨다. 곧 가격이 떨어져 더 싸게 살 수 있을텐데 뭐하러 재고를 쌓아두겠는가.

 

마지막으로, 물가 하락은 기업들의 투자를 지연시킨다. 상인들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가격 하락으로 인해 내년에 더 싸게 투자할 수 있을 테고, 투자를 미루는 사이 부채 부담과 재고 손실로 경쟁기업이 망해서 투자 자체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뭐하러 투자를 서두르겠는가.

디플레이션 압력은
부채 부담 증가, 실물 수요 위축,
투자 부진 등으로 경제를 괴롭힌다

만약, 물가가 오르면 이 세 가지 경로는 정확히 반대로 뒤바뀐다. 재고를 텅텅 비워 놓은 기업과 상인들은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갑자기 급해진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물건을 잡아놓아야 하니 가격 상승 이상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가수요 효과가 생겨버린다.

투자도 촉진된다. 죽을 줄 알았던 경쟁기업은 벌떡 살아나고, 투자 시점을 미루다간 자재 비용도 올라가고 금리도 비싸질 테니 미뤘던 프로젝트들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빚이 있는 사람들은 여유가 생겨 조금 더 빚을 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부채 부담은 경감된다.*

* 물가가 오르면 왜 부채 부담은 줄어드는가?

물가 상승은 역으로 실물 대비 화폐가 갖는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부채는 화폐로 표시되므로 물가 상승은 부채 가치의 하락 효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지금 빌린 1억의 가치는 1년 뒤 물가 상승률만큼 하락한다는 것. 1억을 빌려 2억짜리 집을 샀는데 1년 뒤 집값이 2억 2천이 되면 빚을 갚기 더 수월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인플레이션의 부채 부담 감소 효과가 나타나려면 물가 변동이 비교적 균등하게 나타나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예를 들어 1억을 빌려 8천만 원어치 재료를 사서 2천만 원의 인건비를 지출하고 1억 1천만 원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재료비와 인건비와 판매 가격이 동일한 비율로 오른다면 이 기업의 이익 절대금액은 증가한다. 즉, 이익이 늘어나는 동안 부채 규모는 그대로이므로 인플레이션이 부채 부담을 경감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료비와 인건비는 올랐는데 판매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면 오히여 이익이 훼손되면서 부도 위기에 몰리게 된다. 공급 과잉이 심한 산업에서 원료 가격이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이 산업은 인플레이션 상황 하에서도 부채 부담으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물가의 변화가 균등하게 적용 가능한 경제 구조와 정책 하에서는 인플레이션은 부채 부담 감소, 디플레이션은 부채 부담 증가로 연결되는 것이 상식적이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리플레이션'이라 부르는데, 리플레이션은 가수요 효과와 일시적인 투자 촉진으로 경기를 급반전시킨다. 2016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전 세계적인 경제 회복이 바로 이 리플레이션 효과인 것이다.

 

유가, 물가, 투자, 교역의 추이 ⓒ강대권 (source: Bloomberg)

 

위 그래프는 리플레이션 효과를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유가가 오르자, 중국의 생산자 물가가 뛰기 시작한다. 물가가 오르자 기업들이 급하게 재고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수입액은 급증한다. 한편 미국 기업들은 같은 기간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렇게 세계 경제는 지난 1년 간 유가 반등에 힘입어 리플레이션 효과를 만끽해왔는데, 문제는 최근 유가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속적인 상승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가가 떨어지지 않더라도, 그냥 현재 가격 수준을 유지한다고 해도 물가 상승률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2016년 2월 유가가 최저점이었기 때문에 2017년 2월 유가 상승률은 극대화되지만 2016년 3월부터 유가가 지속 상승했기 때문에 유가가 현 수준에 머무른다면 상승률은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급격히 떨어진다. 아래 그래프에서 붉은색 점선 부분은, 유가가 60불을 넘지 못할 경우 3월 이후 유가의 전년 대비 상승률 예측을 표시한 것이다.

 

* 경제 변수들을 인식하고 분석할 때 우리는 '전년대비 증가율'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절대량보다는 변화율이 중요하고, 변화율은 연중 계절의 영향을 받으니 전년대비 변화율을 추세를 판단하는 지표로서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전년대비 변화율은 지표의 계절성을 제거해주지만 반대로 착시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가령 2월의 지표가 1월 대비 나빴더라도 전년 2월의 지표가 훨씬 더 안 좋았다면 전년대비 증가율은 2월이 1월보다 좋을 수도 있다. 증가율을 계산할 때 분자가 되는 당월/당일의 지표보다 분모가 되는 전년의 지표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기저효과(Basis effect)라고 한다.

유가는 WTI(텍사스 중질유, 세계 유가변동의 기준이 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원유)를 기준으로 2016년 2월 중순이 가장 낮았다. 그러므로 2017년 2월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매우 높게 계산된다. 반대로, 작년 여름 유가는 현재 수준까지 올랐으므로 시간이 갈수록 유가가 빠지지 않아도 유가의 전년대비 상승률은 하락한다. 즉 우리가 보는 물가, 수출입 증가율, 물동량 등은 모두 전년대비 증가율을 사용하므로 유가와 함께 증가율은 하락하게 된다.

 

유가의 전년대비 상승률 ⓒ강대권

 

물론 2016년의 움직임처럼 유가가 다시 빠르게 오를 수도 있다. 유가가 60불을 넘어 다시 가파르게 올라간다면 리플레이션 효과는 좀 더 연장될 것이다. 하지만 유가에 대한 정확한 전망은 아닐지라도, 현재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할 때 유가가 현 수준에서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선 최근 유가 상승이 상당한 재고 증가를 수반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장기추세보다 50% 이상 많다.

 

30년간의 미국 원유재고추이 ⓒ강대권 (source: Bloomberg)

 

원유 재고량이 많아진 이유는 유가가 급락하면서 현-선물 간 가격 차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현저히 높다면 선물을 매도하고 현물시장에서 원유를 사들여 선물 만기까지 보관하면 현-선물 가격 간의 차이만큼을 무위험 수익으로 얻게 된다.

 

2014년 가을 이후 유가 폭락 기간 동안 현물가격이 매우 빠르게 하락하면서 현-선물 간 가격 차이는 커졌고, 당연하게도 이 기간 동안 원유 재고는 늘어났다. 하지만, 재고 증가의 원인이 명확하다고 해서 늘어난 재고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물 만기가 도래했을 때 쌓아둔 재고는 어쨌든 다시 현물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을 막는 두 번째 악재는 OPEC의 감산 결의와 이행에도 불구하고, Non-OPEC 국가들의 생산 증가로 전체 원유 공급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Non-OPEC 국가가 미국인데, 미국은 2010년 전후 쉐일가스라는 새로운 원유 생산방식을 본격화하면서 유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2014년 유가 급락기에 미국의 쉐일가스 생산량은 감소하였는데, 유가가 반등하면서 쉐일가스 생산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아래 그래프의 붉은색 선은 WTI 유가이고 푸른색 선은 가동 중인 미국 쉐일가스 시추 장비의 개수 추이를 보여준다.

 

유가와 쉐일가스 생산 추이 ⓒ강대권 (source: Bloomberg)

 

2012년 원유 시장의 과잉공급 가능성을 예고한 적 있는, 레오나르도 마우게리(Leonardo Maugeri)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올해 원유 시장의 공급과잉이 확실시 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OPEC의 원유 공급 전망은 틀렸다
OPEC's Misleading Narrative About World Oil Supply | Havard Kennedy School

실제 유전의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를 바탕으로 원유 공급량을 추정해본 결과, 올해 원유 공급량은 99.5mbd(백만배럴/일)에 달할 것이다. 이는 Non-OPEC 국가들의 광범위한 증산 지속과, 감산 합의 직전에 벌어진 OPEC 국가들의 경쟁적인 증산 때문이다.

이는 올해 수요 예상치 95mbd보다 4백만 배럴이 많은데, OPEC 감산 협의에서 합의된 1.2mbd의 공급조정으로는 과잉 공급 상황을 막을 수 없다. 또한 2017년 3~4월에 집중된 3mdb 정도의 정유설비 정기보수가 도래하면 원유 공급과잉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올해 원유 시장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겠지만, 원유 수요가 기록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유가는 하락 가능성이 있다.

 

3월 들어 원유 가격이 한 주만에 10%나 하락하고, 이후로도 지속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유가 반등이 불안한 토대 위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와 같은 최근의 가격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유가의 지속적인 강세를 예상하는 근거들은 대부분 수급보다는 정치적인 이슈들에 기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는 2018년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 시가총액 2천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아람코의 기업공개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내년까지 유가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논리는 사실상 최근 유가 강세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 밖의 근거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석유 재벌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수준의 정치적 예측이었다.

 

정치적, 제도적 이슈들은 단기에 얼마든지 시장 가격을 교란시킬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모든 가격은 수요-공급의 원리를 따라간다. 그러므로 원유 시장의 수급 상황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2017년 3월부터 유가의 전년대비 상승률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유가 반등에서 비롯된 물가 상승 압력이 줄어들자, 지난 1년간 세계 경제를 견인했던 리플레이션 효과는 퇴색하기 시작했다. 유가가 40불대에서 약세를 보이게 되면 오히려 2017년 여름부터는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하락 압력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물가 상승에서 비롯된 P(Price, 가격) 중심의 경기 회복세가 3월 이후에도 꺾이지 않고 유지되려면, 원유 가격 상승 모멘텀을 대체할 만한 강력한 다른 모멘텀이 필요하다. 새로운 모멘텀이 부재하다면 최근 경험하고 있는 빠른 속도의 경기 회복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보장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현 시점에서 경기 방향성에 대한 판단을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다.

 

 

P(가격)에서 Q(수요)로 바톤터치, 가능할까?

 

가격에 의한 경기 호전 효과는 늘 일시적이었다. 경기 회복은 원래 리플레이션에서 출발하여 실질 수요 증가에 의한 경기 상승이라는 두 번째 국면으로 진화하면서 연장된다. 2016년 하반기 진행된 물가 상승에 의한 성장세가 2017년 들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된다면 경기 회복의 지속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 3월 이후 세계 경제의 방향성을 예측하려면 투자와 소비라는 실질적인 경제 활동의 증가가 가능할지 판단해야 한다.

 

지나간 모멘텀부터 다시 한 번 확인하면, 재고 축적에 의한 수요 증가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확실하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2017년 2월 미국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ISM(Institute for Supply and Management)의 서베이 결과 재고 보유 수준은 2010~2014년의 정상 수준으로 이미 회복되었다.

 

ISM 제조업 재고지수와 미국 생산자 물가지수 ⓒ강대권 (source: Bloomberg)

 

비워 두었던 창고를 채우는 것으로 나타난 가수요는 3월 이후부터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수요 효과가 사라지면 일시적으로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되는 것처럼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공백을 메꿔줄 만큼 소비와 투자는 살아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잘 모르겠다. 이 결론은 사실 조금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강했다. 이는 다분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엄청난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를 펼칠 것이라는 이른바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임 두 달이 지난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까지 구체적 경제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떠들썩하긴 했지만, 대부분 반이민과 같은 외교적 고립주의 정책들이 대부분이었고 국내 경제 정책은 새로운 것이 전혀 없었다. 2월 초 '2~3주 안에 경이적인(Phenomenal) 감세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3월 말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

 

현재로서는 스티브 므누신(Steven Mnuchin)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주 의회에 제출한 재량지출 예산안이 전부인데, 복지와 외교 재정을 삭감해서 국방비에 퍼붓는 예산이어서 전체 재정 지출이 증가하는 예산안은 아니었다. 이제는 트럼프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구체화한다고 하더라도 의회 통과의 과정이 순탄치 않아 보여, 트럼프 행정부발 초강력 재정 정책이 수요를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시간이 갈수록 옅어질 것 같다.

재정 정책이 기대에 못미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트럼프처럼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은 구체적인 경제 정책 보다는 반이민, 반세계화 등의 고립주의 외교 정책만 설파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 정부 부채 문제가 여전히 상존해 있어 기존 집권 세력이 재정 지출을 빠르게 확대하기도 어렵다. 중국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거치며 재정 확장 노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특별한 변화가 없었으며, 오히려 최근에는 가파르게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간간히 긴축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

 

재정 확장이 밋밋하다면 민간 소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최근 선진국 근로자들의 소득 증가율이 정체 내지 하향 추세에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여지듯이 최근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실질 소득 증가율은 2014년 이후로 하향 추세에 있다.

 

미국 실질 개인소비지출 증가율 vs. 근로자들의 실질소득 증가율 ⓒ강대권

 

최근 경제 상황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실질 소득 증가율이 답보하고 있는 것은 미국 경제가 완전 고용에 거의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실업자 수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수의 증가 역시 답보 상태에 있는데, 이는 기업이 사람을 뽑으려 해도 적당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의 상황 또한 미국과 비슷하다. 2017년 1월 일본의 유효구인배율(1인당 일자리 비율)은 1.43으로 25년 만에 가장 낮았다고 한다. 즉, 경제가 이미 최대한의 고용을 해내고 있어 더 이상 고용을 통한 지속적 소득 창출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소득 증가는 답보하고 돌파구인 재정 지출도 기약이 없고, 리플레이션 효과가 감소하면서 재고 축적으로 인한 가수요마저 사라지니, 1분기 경제성장 전망치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제도에서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GDPnow의 전망치는 최근 0.9%까지 떨어졌다.

 

미국 애틀랜타 연준의 1분기 GDP성장률 전망치 ⓒfrbatlanta.org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 추이 ⓒ강대권

 

재고 효과, 정부 지출, 고용을 통한 소득 증대 등이 모두 답보하고 있다면, 남아있는 경제 성장 방법은  경제 생산성이 좋아지거나 기업들이 자본투입량을 늘리는 것이다. 다행히 이 두 분야는 아직까지 희망적이다.

 

미국의 자본투자 관련 지표는 작년 말부터 돌아서기 시작했다. 유가 상승에 의한 효과가 희석되는 3월 이후에도 이런 속도로 자본투자가 이뤄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들의 조달금리 수준을 가리키는 골드만삭스 금융환경지수가 3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선되고 있어 조달비용 하락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아직 살아있다. 더불어 중국의 고정자산투자 증가율도 최근 반등에 성공했다.

 

미국 내구재 주문증가율(운송장비 제외) vs. 골드만삭스 금융환경지수 ⓒ강대권

 

서두에 소개한 이코노미스트의 표제 기사에서, '앞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포퓰리즘의 위협을 잘 극복해 경제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재정-소득-소비가 받쳐주지 않는 상태에서 리플레이션 효과는 더 이상 없고, 기업의 투자에 의존해 성장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글로벌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업의 투자를 지연하거나 저해할 수 있는 정치적 준동은 심각한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있었던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집권에 실패하면서 포퓰리즘의 유럽 확산 우려는 경감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잘 이어가 정치적 환경이 안정된다면 기업의 투자를 중심으로 한 성장세는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투자의 경우, 소득과 소비가 답보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서는 생산량을 늘리는 것보다 '생산성을 높여 비용 경쟁력을 제고'하는 쪽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혁명이나 자동화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룰 것이고 이러한 투자는 생산과 고용을 확대시키지 않기 때문에 투자에 의한 경제 전반의 성장 자극은 약하다. 그러므로 "3월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때, 기업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 자체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말~2017년 초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도가 필자가 내릴 수 있는 현재 시점의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다. 

Issue Focus: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와 고평가 논란

 

모바일 지진아 인텔, 자율주행차 시장의 수직통합(One-stop shop)을 노리다

 

지난 2017년 3월 13일, 인텔이 모빌아이(Mobileye)를 인수했다. 17조 원에 달하는 인수 금액으로 모빌아이는 이스라엘 기술 기업의 역사를 다시 썼다. 인텔의 이번 인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된다. 첫 번째는 자율주행차로 대변되는 AI 기반의 자동화가 본격적으로 상용화/산업화 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평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우리 사회에 어떤 계기가 된 것처럼 모빌아이의 기록적인 인수합병도 비슷한 마일스톤이 된 것이다.

막연한 미래 기술이
얼마짜리 시장가치인지
이제 확인되었다

두 번째 방향은 모빌아이 고액 인수가 인텔의 다급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40년 넘게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해왔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거대한 기회를 놓친 일로 오랫동안 조롱당해왔다.

 

특히, 오늘날 모바일 기술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ARM 아키텍쳐 기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최강자였던 StrongARM(Xscale) 사업 부문을 아이폰의 역사적 출시 바로 1년 전에 매각한 일과, 아이폰 출시 전에 애플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인텔 스스로 공급을 포기했던 일은 10년이 더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흑역사'이다.

 

인텔은 이미 90년대부터 모바일 시장의 성장을 예상하고 StrongARM에 10년 넘게 투자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도 모바일 시장이 확장되지 않았다. 그 사이 데스크톱 PC를 위한 아키텍쳐였던 X86 기술이 진보하여 ARM 아키텍쳐 기반이 아닌 X86을 기반으로도 얼마든지 저전력 모바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인텔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StrongARM을 팔아버렸다.

 

그러나 인텔의 모바일 프로세서 매각 직후 애플의 아이폰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고 모바일 프로세서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인텔의 데스크톱 CPU 사업 규모를 능가하는 시장이 되었다. 이 시장을 장악한 것은 인텔이 2006년 버리다시피한  ARM 아키텍쳐와 벤처기업이었던 퀄컴, 그리고 단순한 메모리 반도체나 만드는 줄 알았던 삼성전자였다.

 

압도적 기술력과 선 투자에도 불구하고 거대 시장의 진입기회를 놓쳐버린 전례가 있는 인텔은 새롭게 떠오르는 자율주행차 기술과 그에 관련한 반도체 시장의 기회에 몸이 달았던 것 같다. 이미 그래픽 프로세서 제조업체인 엔비디아(NVIDIA)가 자율주행 플랫폼으로 치고 나가면서, 다시 한번 인텔이 새로운 시장에서 뒤쳐지는 흑역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있었으니 그 다급함은 엄청났을 테고 그것이 모빌아이 인수로 이어졌다.

모빌아이 인수는 인텔이 과거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StrongARM 매각과 아이폰 출시로 인해 모바일 시장에서 소외된 인텔은 2008년 Atom이라는 X86 기반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뒤늦게 모바일 시장 진입을 노렸다. Atom은 ARM 기반 칩들과 비교해 소비전력은 대등한 수준까지 낮췄고 성능은 훨씬 좋았으며 무엇보다 사용자들이 익숙한 윈도우, 오피스 같은 데스크톱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tom은 넷북의 반짝 인기 이후 소멸했다. 인텔이 Atom을 대대적으로 마케팅할 때 모바일 시장의 생태계는 이미 ARM와 애플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따라 재편이 끝난 뒤였다.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를 갖다 주어도 개발자들은 이미 표준화된 ARM 아키텍쳐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인텔은 고성능 하드웨어만으로는 시장 장악이 어렵고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동시에 장악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모빌아이는 우리가 보통 ADAS라고 줄여서 부르는 운전 보조 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이다. ADAS는 고속도로에서 일정한 속도와 차간거리를 유지해주는 크루즈 콘트롤이나, 차선이탈 경보, 전후방 경보, 사각지대 경보, 자동주차와 같은 형태로 이미 현실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자동차 기술이다.

 

모빌아이는 카메라로 찍은 영상에서 물체의 특징과 거리를 식별하는 기술을 가진 기업으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ADAS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카메라와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과 델파이, 컨티넨탈 같은 굴지의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모빌아이의 카메라/반도체/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각자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구글, 우버, 테슬라 같이 독자적 자율주행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업체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는 다 모빌아이와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텔은 모빌아이 인수로 적어도 Atom의 최대 실패 요인 중 하나는 제거한 셈이다. 이미 다수의 사용자를 확보한 ARM에 Atom은 무력했지만, 인텔은 이제 모빌아이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90%를 고객으로 확보한 상태에서 자사의 프로세서와 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 투자한 정밀지도 업체 히어(HERE)와 자사의 클라우드/AI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결합하면서 자율주행차 시장의 수직통합(One-stop shop)을 지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쓸데없는 걸 비싸게 샀다'는 비판들

 

Atom의 실패요인을 확실하게 극복한 모빌아이 인수는 출발선에서부터 시장의 90%를 장악한 채 잠재시장을 타겟팅하는 멋진 전략이다. 그러나 전략적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인수 금액은 과도하고 인수 효과는 의문스럽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인텔/모빌아이 : 과도한 지출
Intel/Mobileye: driven to overpay | Financial Times (2017.3.14)

인텔은 모빌아이를 매출액의 40배에 가까운 가치로 비싸게 매수했다.

스마트폰 시장을 놓친 인텔은 새롭게 떠오르는 자율주행차 시장에 진출하는데 갈급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모범생이었던 인텔이 새로운 시장 진출을 위해 모빌아이 인수와 같은 대규모 현금 지출을 지속한다면 주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는 터무니없다
Intel Buying Mobileye Is Ludicrous | Seeking Alpha (2017.3.13)

인텔은 자동차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했다.

인텔과 모빌아이는 사업적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고, 모빌아이의 기술적 리더쉽은 자율주행 기술 발전 과정에서 계속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비판은 주가의 흐름에서도 드러난다. 모빌아이 인수를 발표하던 당시, 인텔이 30%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지불했기 때문에 모빌아이의 주가는 급등했지만 인텔의 주가는 당일 오히려 2% 가량 하락했고 이후로도 주가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텔-모빌아이 주가 차트 ⓒ강대권 (source: Bloomberg)

 

인텔이 모빌아이 인수를 잘 한건지 잘 못한건지, 싸게 산건지 비싸게 산건지 현재로선 판단할 수 없다. 앞으로 자율주행차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가늠하기는 어렵고, 그 시장에서 인텔-모빌아이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현 시점에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너무 비싸게 샀다'라는 비판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근거들도 있는데, 그 중 특히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접근 방식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슈를 소개하고 싶다.

 

 

자율주행(Autonomous Driving)과 무인운전(Self-Driving)의 차이
 

모빌아이가 자율주행 기술에 접근하는 방식은 점진적이다. 기존 자동차 모델들에 이미 적용하고 있던 ADAS 기술을 순차적으로 고도화시키면서 완전한 자율주행이 이뤄질 때까지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기 이전에도 꾸준히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전략이며 무엇보다 자동차 업체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진적 접근방식으로는 완전한 자율주행을 구현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크리스 엄슨(Chris Urmson) 전 구글 자율주행차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015년 TED 강연에서 ADAS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것을 "점프를 열심히 연습하면 하늘을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라며 ADAS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폄하했다.

 

무인차는 길을 어떻게 보는가
How a driverless car sees the road | TED

구글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의 크리스 엄슨은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설명하며, 운전자를 보조하는 것이 아닌 운전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자율주행차 기술의 상용화가 4~5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모빌아이나 구글이나 자율주행을 위해 추구하는 기술 발전의 방향은 비슷하다. 차량이 스스로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를 붙이고, 도로/지형 등에 대한 정밀지도를 제공하며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것은 모빌아이나 구글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목표의 차이는 존재한다

모빌아이의 목표가 문자 그대로 자율주행차(Autonomous car)라면 구글은 자율주행을 넘어 운전자와 운전석 자체가 없는 완전 무인운전(Self-driving)을 지향하고 있다. 자율주행(Autonomous driving)과 무인운전의 차이는 모호하고, 특히 한글로 번역하면 둘 다 같은 뜻으로 보여지기 십상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이 둘은 다르다.

 

자율주행차와 무인차는 어떻게 다른가
Why autonomous and self-driving cars are not the same | The Economist (2015.7.2)

자율주행차는 운전석과 핸들이 그대로 있는데 핸들과 페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즉, 기존의 자동차가 더 똑똑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무인차(Self-driving car)는 우리가 자동차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르다. 운전석과 핸들이 아예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움직이는 차다.

무인차는 카 쉐어링과 연계되어, 자동차를 소유에서 서비스 이용의 대상으로 완전히 바꿔버릴 것이다. 무인차와 카 쉐어링이 도입되면 자동차 시장이 4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래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무인차를 싫어한다.

반대로 자율주행차는 기존의 자동차를 업그레이드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당장의 자동차 판매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차 가격을 올릴 수 있으므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선호하는 개념이다.

 

위의 개념 차이를 보면, 모빌아이와 구글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모빌아이가 자동차 업체들과 어떻게 폭넓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GM, 포드, 현대차 같은 자동차 업체들은 운전석이 사라지고 자동차의 소유 욕구를 감퇴시킬 수 있는 완전한 무인차의 조기 도입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장 자율주행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므로 앞다투어 모빌아이와 제휴를 맺고 점진적인 자율주행 기술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구글이 현재 선보인 자율주행차는 완전한 무인차를 추구하며 비싼 센서, 카메라는 물론이고 초음파 센서와 한 대당 몇 천만 원한다는 레이저 레이더까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구글의 자율주행을 위한 지도 데이터는 시험운행 대상이 되는 지역 전체를 3차원으로 정밀스캔 한 초대용량 데이터이다.

 

구글의 인공지능은 광학, 초음파, 레이더 등 다중 센서로 인지되는 주변 모든 사물의 속성과 향후 이동 방향을 예측하며, 이러한 예측 과정은 IT 인프라의 엄청난 부담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이런 기술이 경제성을 가진 수준까지 상용화되려면 최소 10년은 필요하다고 논평가들은 이야기하고, 전 세계 모든 지역을 3차원 정밀스캔 한다는 건 미친 짓이라고 비관론자들은 이야기한다.

 

반대로 모빌아이는 전면 카메라 한 대와 반도체 칩 하나면 어느 정도 수준의 자율주행을 구현할 수 있다. 지도 데이터 역시 단일 사업자가 전 지역을 스캔하는 것이 아니라 모빌아이가 탑재된 수만 대의 자동차로부터 데이터를 십시일반 모아서 전체 지도를 개선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모두 당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모빌아이의 점진적인 접근방식과 구글의 문샷(Moon shot) 프로젝트* 중 무엇이 성공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가 과거  Atom의 반면교사가 아니라, StrongARM의 동어반복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 느낌이 현실이 된다면, 구글의 성공 여부는 가늠하기 어렵더라도 인텔의 실패와 모빌아이 인수 금액이 과도하다는 것은 꽤 개연성 높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인류의 달 착륙에 빗댈 정도로 큰 목표를 가진 프로젝트 - PUBLY

 

 

플랫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앞에서 Atom의 실패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이미 결판난 상황에서 하드웨어적 우위만으로는 시장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이야기했다. 인텔-모빌아이 연합은 인텔의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모빌아이의 기존 제품 및 마케팅을 연계하면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제공하는 방식으로 Atom의 시행착오를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언급도 했다. 그런데 이를 조금 바꾸면 Atom이 아니라 StrongARM의 재판으로 보이기도 한다.

 

StrongARM은 원래 미국 DEC가 운영하던 사업이었고, 인텔은 이 사업을 1997년에 인수했다. StrongARM은 2000년 초반 PDA라고 부르던 모바일 기기 시장을 지배했고 컴팩, HP, Palm 등 업계 대부분의 회사들과 거래했다. 모빌아이가 현재 세계 ADAS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상황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StrongARM의 상황과 유사하다.

 

2000년대 초반의 PDA와 2007년의 아이폰은 개념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손 안의 컴퓨터'라는 컨셉으로 앱을 설치해 기능을 확장하는 개념은 사실상 똑같다. 아이폰은 완전히 새로운 기기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기능을 미려하게 다듬고 데스크톱 PC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던 모바일 기기의 개념을 모바일 우선으로 바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00년 초반 PDA를 만들던 컴팩, HP 같은 회사들은 어찌보면 기존의 자동차에 기능을 덧대는 방식으로 자율주행에 접근하는 지금의 자동차 회사들과 닮았다.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면서 인텔에 프로세서 납품을 타진했다. 하지만 애플의 요구는 괴팍했고 인텔은 기존의 아키텍쳐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자율주행차의 미래는 가깝지만, 여전히 미래 기술이다. 어떤 형식의 플랫폼이 자율주행의 표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직전에 엉뚱한 아키텍쳐에 대한 요구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인텔은 일단 모빌아이를 인수했기 때문에, 말단의 카메라와 클라우드 상의 지도 데이터 그리고 이 둘 사이를 대조하는 대용량 서버를 두는 기존의 아키텍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폰이 패러다임을 바꾼 것처럼 막상 자율주행차가 현실화됐을 때 어떤 형태의 기술이 세상을 바꿀지는 알 수 없고, 그것이 인텔-모빌아이의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직 기술 표준이 구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직통합으로 A to Z One-stop Shop을 구현하려는 인텔의 전략은 장기적으로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인공지능의 총아인 엔비디아는 서버와 연결할 필요 없이 자동차 스스로 자율주행 역량을 향상시키는 머신러닝 기반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StrongARM이 HP, 컴팩과 함께 10년 먼저 고생하다가 막상 시장 성장의 수혜를 못 본 것처럼, 인텔-모빌아이 또한 GM, BMW와 10년을 고생하더라도 정작 미래 자율주행차의 주도권은 엉뚱한 기술에 뺏길 수도 있는 것이다.

 

플랫폼은 보통 여러 가지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플랫폼은 작은 영역일지라도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서비스 하나를 바탕으로 세상의 병목을 장악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야금야금 주변으로 확장해 나간다.

 

구글은 결국 압도적인 검색 결과에서, 페이스북은 결국 초기 시장 선점에 의한 네트워크 효과에서 출발했다. 인텔-모빌아이는 저전력 프로세서 시장에선 ARM과, 머신러닝 시장에선 엔비디아와, 통신/보안에서는 퀄컴-NXP와 자율주행 알고리즘에선 구글, 테슬라, 애플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그 어느 분야도 아직 완전한 경쟁우위를 갖추지는 못했다.

 

물론 모빌아이는 ADAS 분야의 지배적 플레이어지만, 모빌아이의 자율주행 프로젝트는 협력 업체인 기존의 자동차 및 부품 업체들이 얼마나 동참해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결국 완전한 우위를 구축한 영역 없이, 여러 요소들을 통합한 것만으로 인텔은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어렵다면, 모빌아이에 지급한 17조 원이라는 인수 대금은 과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AI/Automation 투자 확대 본격화될 듯

 

위와 같이 인텔과 모빌아이의 미래를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 결국 인텔이 앞으로 어떤 전략을 쓰느냐, 모빌아이가 추가로 어떤 혁신을 해내느냐에 모든 것은 달려 있다. 

 

현 시점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 기술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가 향후 수 년간 엄청난 속도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제 막 시작된 분야에서 아직 뚜렷한 우위를 가진 플레이어가 없다면, 그 안에서는 참여자들 모두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각축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및 관련 자동화 기술의 대대적인 투자 확대 추세가 지속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흥망성쇠를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DEEP INSIGHT - 강대권의 글로벌 경제 읽기]

이 글은 '딥 인사이트' 유료 리포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유료 글은 이와 같은 구성으로 4월 20일부터 2주에 한번씩 총 6회 발행됩니다. 강대권 펀드매니저의 관점과 통찰이 담긴 글로벌 경제 이슈 & 트렌드 리포트를 계속 읽고 싶다면, 지금 바로 리포트를 구매해주세요. (4월 19일까지 예약 판매 할인)